경계선(GRÄNS, BORDER, 2019)
2021년 6월 13일 일요일, chuls203에서 '경계선'을 관람했다. 제목의 힘을 크게 느낀 작품이고, 이 글도 제목에 초점을 맞춰서 적게 되었다. 그리고 역시나 예고편을 보지 않는 등 사전 지식 없이 영화를 보았다.
※영화를 보지 않은 분들에게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주의 부탁드립니다.
출입국 세관에서 근무하는 티나는 '냄새'로 수상한 사람들을 찾아낸다. 어느 날 티나는 보레에게서도 어떤 냄새를 맡지만, 보레에겐 아무런 혐의가 없어 풀려난다. 외향적으로 인간과는 구분되는 티나는 비슷한 생김새의 보레를 만난 뒤 자신이 '트롤'임을 알게 된다. 티나와 보레는 자연스럽게 서로에게 이끌리게 되지만, 티나는 보레의 인간에 대한 적대적인 태도를 우려한다. 많은 트롤을 희생시킨 인간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보레는 인간의 아이를 훔쳐 다른 곳에 팔아왔음을 알게 된 티나는 그를 제지하려고 한다. 보레가 티나의 주변 인간들에게도 접근한다. 과연 티나는 여러 경계선 중에서 어느 영역으로 들어갈 것인가.
경계, 그것은 어떤 모양인가
Shape of border
우리는 수많은 경계들 속에서 살고 있다. 경계라는 것은 울타리처럼 무언가를 가둬두는 부정적인 의미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인간들은 자연스럽게 그 속에서 자아를 형성하게 된다. 축구장의 골라인처럼 누구나 정확하게 볼 수 있는 경계도 있으며, 눈에 보이진 않지만 넘지 말아야 하는 사람 사이의 선도 있다. 우리는 이 영화 속에서 얼마나 많은 경계들을 발견할 수 있을까?
먼저, 영화는 시각적이면서도 공식적인 경계인 항만에서 시작한다. 티나는 선천적으로 뛰어난 후각으로, 출입국하는 사람들 중 거동수상자를 가려낸다. 적법자만 통과할 수 있는 국경선은 마치 완강한 벽 같다. 특히, 항상 100%의 확신을 갖고 냄새로 사람들을 가려내는 티나에게 이 선은 빈틈없는 직선(↔)이다. 하지만 티나가 보레를 만나는 순간 이후로 티나의 기준은 모호해지기 시작한다. 보레에게서는 '냄새'가 나지만, 입국에는 아무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직선에 구멍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이는 점점 점선(- - -)과 비슷해져 간다.
이후 티나와 보레의 사이가 가까워지자, 티나와 인간들 사이에 경계선이 생긴다. 보레는 티나가 '트롤'이며, 악한 인간들로부터 희생당하고 있는 존재라고 일러준다. 인간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아기들을 훔치는 보레에게 이 선은 넘을 수 없는 굵직한 직선(↔)이며, 그 시작과 마찬가지로 끝 또한 알 수 없다. 반면, 티나에게는 시작점이 보이는 반직선(→)의 형태로 희미하게 그려진다. 인간으로 이루어진 가족 안에서 성장한 티나는 여느 인간처럼 살아왔기 때문에 이전엔 보이지 않던 경계선이 생긴 것이다. 이 선은 티나가 아버지와 트롤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점차 굵어지기 시작한다. 티나의 친부모가 인간들에 의해 고통받다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한편, 티나와 보레, 둘을 아우르는 선도 그려진다. 이는 튼튼하게 매듭(⇔)을 진 것처럼, 둘 사이의 관계를 가깝게 해준다. 티나는 보레와 함께 호수에서 수영을 하고, 동물들과 소통하는 등 자연과도 아주 가깝게 지낸다. 하지만, 보레가 인간들을 해하는 모습을 보자, 매듭으로 보이던 것들이 사실 매듭이 아닌, 마구 엉켜버린 실타래(▩) 임을 깨닫게 된다. 특히 보레의 냉장고 속에서 히시트(무수정 태아 트롤)를 발견하고, 보레가 이 태아들로 인간의 아기들을 몰래 바꿔치기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이 실타래들은 마치 어릴 적 잘려버린 트롤의 꼬리처럼 끊어져 버리고 만다.
우리는 어떤 선을 그어야 하는가
What kind of border should be
"선을 긋지 않으면 되지 않는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우리는 자신을 중심으로 어떤 선이든 불가피하게 그으며 살고 있다. 화목한 가정 속에서도 개인으로서의 요구들이 나타나기 마련인 것도 같은 까닭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느 선을 어떻게 그려야 할 것인가.
종족의 경계에 대해서 생각해 보면, 자연스럽게 인종차별 그리고 더 나아가 난민 문제가 떠오른다. 역사 속에서 영토, 종교 그리고 인종을 이유로 많은 전쟁과 참사가 있었다. 자국민을 보호한다는 목적, 종교의 정통성을 유지한다는 명분 그리고 말도 안 되는 인종 간의 우월성으로 많은 희생들이 자행되어 왔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굵고 튼튼한 벽 같은 경계선이 가장 안전하다.
이와 비슷한 선으로 성별의 경계도 이야기해 볼 수 있다. 영화 속에서 티나와 보레의 성별을 쉽게 구분할 수가 없다. 티나는 유방처럼 보이는 가슴을 갖고 있고, 보레보다 높은 목소리를 갖고 있지만 생식기는 여성의 것이 아니라 남성의 것과 비슷하다. 반대로 보레는 낮은 목소리를 갖고 있지만 생식기는 여성의 것과 비슷하다고 묘사된다. 영화 속에서 티나는 이를 '기형'이라고 말한다. 즉, 정상이 아니라는 의미다. 이는 수적으로 혹은 통상적으로 굳어진 경계선이다. 소수의 경우는 다수의 경우에게 묻혀버렸거나 삭제되어, 지금 우리에겐 꽤나 깊은 고랑 같은 선이 된 것이다.
하지만 이런 선들은 그저 전체를 반으로 나눌 뿐이다. 종족의 경계선은 내부자와 외부자로 사람들을 구분 짓고, 기존의 성별에 대한 경계선은 정상과 기형으로 보는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이다. 우리는 영화 속에서 티나를 둘러싼 선들이 어떻게 변화하는지에 주목해보아야 한다. 새로 그어지는 경계선도 있으며, 희미해지거나 지워져버리는 것도 있다. 끊임없이 변모하는 티나의 기준처럼, 경계선은 유연하게 인식된다. '아직 우리나라의 이야기가 아니야.' 혹은 '아직 내 주변엔 그런 경우가 없어.'라는 회피는 거듭될수록 건널 수 없을 만큼 깊은 강 같은 경계선을 만들어낼지도 모른다. 또한 한 가지 모양의 선을 고집하는 것도 좋지 않다. 누구는 직선만을, 또 다른 누구는 곡선만 주장한다면, 그 두 모습이 동시에 포착되는 파동의 모양을 떠올리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특별함의 의미
Speciality
"나는 어릴 적에 내가 특별한 줄 알았어. 하지만 난 그저 못생겼을 뿐이었어." 이 대사에서 티나가 생각하는 '특별함'의 정의를 엿볼 수 있다. 티나에게 특별함이란, 남들보다 뛰어나면서 좋은 인상을 남기는 것을 말한다. 영화를 보는 우리에게는 티나 분명히 특별한 존재이다. 트롤로서 갖는 뛰어난 후각 그리고 자연과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티나 자신은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지 못한다는 생각 때문에 스스로를 더 이상 특별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티나의 이런 태도는 영화 밖의 우리들도 갖고 있고, 공감할 수 있는 점이다. 특별함이란 곧 긍정적이고 기분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노래를 잘하는 것은 그렇지 않은 것과 달리 특별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당신은 누구인가요?" 티나는 보레의 '냄새'를 맡은 이후, 티나가 갖고 있던 '특별함'의 의미가 흔들린다. 사람들에게 좋은 느낌을 주지 못하는 보레지만, 티나에게 보레는 특별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부정적으로 치부하는 티나에게 보레는 "너에게 다른 이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 점은 그들보다 나은 점일 것이야."라고 말하지만, 티나는 쉽게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
이런 인식의 변화는 티나가 곤충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엿볼 수 있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티나는 곤충을 관찰하다 놓아준다. 이때 티나는 곤충을 보통의 인간처럼 식용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이후 보레는 티나에게 곤충을 먹어보라고, '본능'을 일깨워주듯 권한다. 티나는 거절하지만, 이내 호기심을 느끼며 맛을 본다. 점차 보레로 대표되는 '트롤'의 특성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들은 인간으로서의 집보다는 자연 속에서 시간을 많이 보낸다. 그러면서 티나와 보레는 '트롤'이라는 공유되는 경계선 안에서 특별함을 느낀다.
"나는 누구인가요?" 티나의 질문의 주어가 바뀐다. 보레는 티나로 하여금 트롤처럼 살 수 있도록 돕지만, 티나는 인간으로서의 삶을 완전히 벗어나진 못한다. 이후 보레가 티나를 떠나자, 티나는 인간보다는 트롤의 삶을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것처럼 묘사된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자신의 아이로 보이는 트롤 아기를 안아들었을 때, 티나는 그 아기의 특별함을 한눈에 알아봤을 것이다. 그것은 아기가 트롤이기 때문도, 보레와 자신 사이의 아이이기 때문도 아니다. 티나, 혹은 아기 그 자체가 특별하기 때문이다.
2021년 06월 13일 chuls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