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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한장 Oct 15. 2023

차를 멈추다.

나를 멈추게 만든 오늘의 하루한장

  글을 쓰기로 마음먹은지는 오조오억년이 지났다.

그동안 각종 바쁨을 핑계로 미루고 또 미루고.

아마 이 글을 마지막으로 또 한동안 미룰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옛말은 늘 틀린 것이 하나도 없으니까,

시작이 반이라는 옛말을 믿고 오지 않는 잠을 핑계로 오늘의 하루한장과 글을 써내려가본다.


  오늘은 스튜디오 우당탕탕 채아람대표님의 강의가 있는 날이었다. 예보와 다르게 맑은 날씨의 유혹에 넘어가 사진을 찍으러 가고 싶었지만 이미 나는 '노트북 들고 참석가능'이라고 말했고, 또한 약속을 잘 지키는 여자이므로(그러나 지각했다) 영암청년들의 공간(이름은 잊어버렸다)으로 차를 몰았다.

 

  출장 때마다 지나던 이 길, 늘 보던 이 예쁜 풍경, 언젠가 차를 멈추고 찍어야지 하고 몇년이 흘렀는데 그 날이 오늘이 되었다. 시골에 사는 나에겐 익숙한 풍경인데 도시 사람들에겐 생소하고 아름다운 풍경일 수 있겠다고 생각하니 웬지 담아두고 싶었다.

  파란 하늘, 우뚝 솟은 월출산, 황금처럼 빛나는 벼, 바람에 한들거리는 이름모를 꽃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져있는 모습이라니!

  내가 차를 멈추고 한참 사진을 찍고 있는데, 차 두 대가 연이어 내 차 뒤에 차를 세웠다. 그리고는 어른들과 아이들이 우르르 내려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이 드라이브길은 논이 아주아주 많아서 내가 찍는 곳 바로 옆에서도 똑같은 풍경이 찍히는데 굳이 내 카메라 앞의 자리에서 포즈를 취하시는 모습이 귀여우셨다.(카메라를 들고 다니면 종종 이런 일이 발생한다. 가끔 핫플에서는 내게 폰을 주시며 찍어달라고 부탁하시는 분들도 계신데 한 자리에서 10팀 넘게 찍어본 적도 있다. 그리고 돌아서시며 역시 사진이 달라! 하면서 감탄해주시면 정말 뿌듯 그 잡채!!)

  풍경사진으로 시작한 글이 내 자랑으로 끝나다니, 생각의 연결고리가 이렇게 무섭다.

 

  어쨌든 나는 사진을 찍었고, 강의에는 지각했으나 아무에게도 지각한 이유를 말하지 않았다. 아니, 이제 말한 셈이 되었다. 그렇지만 사진을 찍었던 카메라는 아직도 차에 있고, 저 사진은 핸드폰으로 찍은 거다. 허나 무엇이 중요하겠는가.


그저 저 사진 한 장이 한 사람의 시선도 멈추게 했으면 좋겠을 뿐.

그저 저 사진 한 장이  잠시나마 그 사람을 가을로 데려다줬으면 좋겠을 뿐.

그저, 그 뿐.


추신. 채아람 대표님(스튜디오 우당탕탕)의 D.I.T.(함께 시공) 공간 조성 사례 및 방법론 강의는 아주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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