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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블로 에스코바르의 지워지지 않는 낙인

영화 속 도시이야기 '에스코바르: 파라다이스 로스트"

by 신천옹

스티그마(Stigma) 효과.


빨갛게 달군 인두를 가축의 몸에 찍어 소유권을 표시하는 낙인이란 의미의 스티그마처럼 한번 부정적으로 낙인이 찍히고 나면 그 대상에 대해 부정적 인식이 지속되는 걸 말한다.


낙인이 찍히면 그 이미지를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쳐도 쉽지 않다.


낙인이 찍히는 건 한 순간이다. 2025년 6월 초. 미국 대통령 트럼프가 전 세계 12개 국가의 미국 입국을 불허했다.


오랜 단골인 이란을 위시해 아프가니스탄, 아이티, 콩고공화국, 미얀마 등이다. 이들 국가는 시쳇말로 ‘의문의 1패’를 당한 셈이다.


상황이 변하면 봉쇄도 풀릴 수 있겠지만 일단 ‘낙인’이 찍혔다.

L1060863.JPG 라파엘 우리베 우리베 문화궁전

이처럼 드러내놓고 낙인이 찍힌 곳도 있지만 암암리에 이미지가 좋지 않게 굳어진 곳도 있다.


할리우드 영화나 드라마의 영향도 크지만 콜롬비아도 그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콜롬비아 도시 중에도 진한 스티그마가 찍힌 곳이 있다.


바로 제2의 도시 메데진(Medellin)이다.


메데인이라고도 하고 영어식으로 메델린이라고 읽기도 하지만 정확한 발음은 메데진에 가깝다.

L1060779.JPG 메데진 야경

메데진의 낙인은 한 인물에 의해 찍혔다. 바로 파블로 에스코바르(Pablo Escobar).


마약왕, 카르텔의 대표 주자, 시카리오 창설 등으로 악명이 높은 그의 이야기는 미드 ‘나르코스’를 비롯해 영화 ‘에스코바르: 파라다이스 로스트’, ‘러빙 파블로’ 등에서 많이 소개됐다.


그 배경 도시가 바로 에스코바르의 고향인 메데진이다.


물론 영화의 로케는 '나르코스'가 유일하게 콜롬비아(보고타)에서 했고 나머지 '에스코바르: 파라다이스 로스트는 파나마에서, 러빙 파블로는 불가리아에서 각각 슈팅됐다.

화면 캡처 2025-06-12 161507.png '에스코바르: 파라다이스 로스트' 장면(IMDb)

곰곰이 생각해 보면 파나마시티 도심 모습이 메데진과 많이 닮아있기는 하다.


하지만 '러빙 파블로'에 나오는 메데진 빈민가인 꼬무나 13(San Javier)에서 내려다본 도심의 붉은 지붕 모습은 너무나 메데진 같아서 불가리아를 떠올리기 쉽지 않았다.


어쨌든 실제 로케가 어디에서 이뤄졌던 영화의 배경으로 등장한 메데진은 남미를 위에서부터 아래로 여행하거나 그 반대로 하거나 간에 휴식이 필요할 때쯤 만나게 되는 도시다.

L1060886.JPG 보테로공원

여름 일부 우기를 제외하면(우기라고 할지라도 비가 하루 종일 내리지는 않는다) 창을 열어놓고 낮잠을 자면 이 세상 어느 곳보다 잠이 잘 오는 산들바람이 부는 곳이다.


여행객들의 블랙홀이란 말이 괜히 생겨난 게 아니라는 걸 깨닫는다.


그래서 두 번째 메데진을 찾았을 때는 한 달가량 머물렀다.


메데진 중심가인 엘포블라도 근처의 고층 아파트에서 생활했는데 간간히 에어컨을 틀 때도 있었지만 나무 그늘에만 들어가도 서늘함이 바로 느껴지는 날씨여서 산책하기 좋았다.


사실 에스코바르 투어도 산책의 일환으로 참가했다. 에스코바르의 이야기가 남아 있는 곳들을 둘러보는 소위 다크투어다.

L1060946.JPG 메데진의 중심인 엘포블라도

'살아서는 마약으로, 죽어서는 이야기로 돈을 벌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씁쓸한 생각도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범죄자의 스토리텔링이 큰돈은 아니지만 산 자의 돈벌이로 승화(?)될 수 있다는 게 재미있기도 했다.


에스코바르에 대한 이야기는 워낙에 많이 알려져서 새삼스럽게 할 이야기는 많지 않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은 장소는 시카리오들이 암살에 나서기 앞서 기도하던 로사마리아상이었다.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와 후속작 '시카리오 데이 오브 솔다도'로 잘 알려진 시카리오는 암살자들이다.

L1060953.JPG 로사 마리아상

제대로 규모화된 시카리오를 만든 이가 바로 에스코바르이다. 그는 주로 고아들이나 죽어도 슬퍼할 이들이 많이 없는 10대 아이들을 시카리오로 교육시켜서 오토바이를 이용해 암살을 시켰다.


시카리오에 대한 훈련은 스카우트한 소련 KGB 교관들이 맡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들 시카리오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10대 시카리오에 대한 공포로 한때 메데진에서는 오토바이 금지령이 내려지기도 했다.


에스코바르는 ‘은 아니면 납(Plata o Plomo)’ 즉 돈 아니면 총알이 모토였다. 돈을 받고 협조할 건지 아니면 총알세례를 받든 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게 그의 방침이었다.

L1060975.JPG 에스코바르 소재를 알고도 모른 척해준다면 더 많은 돈을 주겠다는 전단

드럭(Drug) 비즈니스로 세계 10대 부자 반열에 올랐으며 1982년에는 국회의원까지 등극했다. 지역주민들에게 운동장, 병원, 아파트 등을 지어줘 로빈 후드라는 별명까지 얻기도 했다.


하지만 에스코바르 카르텔 소탕을 시도했다는 이유로 1989년 유력 대선후보를 암살한 데 이어 같은 해 정보원 2명을 죽이기 위해 아비앙카 203편을 폭파시키는 천인공노할 범죄를 저지른다.


이 테러는 결국 에스코바르의 명을 앞당기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107명 탑승객 전원이 사망했는데 그중 2명이 미국 시민권자였다.

L1060961.JPG 폭탄 80kg으로 쑥대밭이 된 경찰서

그전부터 손보려고 기회만 노리던 미국은 네이비씰까지 동원해 에스코바르 추적에 나선다.


1990년부터 그가 죽을 때까지 칼리카르텔, 콜롬비아경찰, 네이비씰 등이 합세해 천문학적 비용을 쏟아가며 그를 추적하고 마침내 1993년 12월 2일 아들과의 통화를 도청해 위치를 찾아낸 DEA(미국마약단속국)와 콜롬비아 특수부대가 도망치던 그를 쏴 죽인다.


오랜 시간 추적으로 욕을 먹었던 미국에게는 이때의 추적이 부담이기도 했지만 소중한 경험이기도 했다.


20여 년이 지난 2011년 파키스탄에 은신해 있던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하는데 이 경험이 바탕이 됐기 때문이다.

L1060962.JPG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마지막 거주지

그 주인공이 바로 메데진에 투입됐던 네이비씰 6팀이었다.


참고로 DEA는 전 세계에서 마약소비량이 가장 많은 미국이 마약 수출을 가장 많이 하는 나라 중 하나인 콜롬비아에 여러 가지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지부를 두고 있다.


2010년 1월 페루 마추픽추 홍수로 철길이 끊어진 후 아구아스 칼리엔테스 마을에 고립된 여행객들 중 가장 먼저 소리소문 없이 헬리콥터로 안전지대로 소거시킨 임무를 수행한 것도 보고타에 있던 DEA지부였다.


DEA가 마약단속만 하지 않고 '라이언 일병들 구하기'까지 하는 것이다.


당시 일본은 페루 정부와 발 빠른 협상으로 고립 이튿날 페루정부 헬기를 타고 영사가 현장에 와서 자국민을 안심시켰다.


한국은 고립 일주일이 지난 뒤 각자도생 방식으로 마추픽추의 악몽에서 벗어났다. 그중 한 명이 나였다.


이야기가 너무 멀리 나갔다.

L1060991.JPG 파블로 에스코바르 묘비

다시 메데진으로 돌아오자.


메데진의 '낙인'은 에스코바르의 죽음 이후 얼마나 지워졌을까.


결론적으로 많이 지워졌지만 여전히 지워지는 중이라고 보는 게 맞는다.


2000년대 초반에만 해도 메데진 사람들의 해외여행은 쉽지 않았다. 에스코바르 사망 후 한때 혼란으로 인해 에스코바르 시절이 나았다는 말이 돌기는 했지만 메데진 시민들은 지금 어느 누구도 그 당시로 돌아가고 싶어 하지도 않고 그 시절이 좋았다는 소리를 하지 않는다.


있어서는 안 되는 시절이라고 모두 생각한다는 것이다.


아쉬운 점은 도심에 폭탄이 터지는 일은 볼 수 없지만 범죄 자체는 여전하다는 것이다.

L1060921.JPG 메데진 전경

최근 메데진에 살고 있는 친한 동생에게서 연락이 왔다. 가게에 도둑이 들었다고. 셔터를 내리고 도저히 풀 수 없는 자물쇠를 채웠는데도 오랜 시간 공들여서 자물쇠를 자르고 도둑질을 해갔다고 한다.


새벽 시간이라고는 하지만 그 모습을 본 사람들도 있을 텐데 신고하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이전처럼 사람을 죽이는 일은 많지 않지만 도둑들은 여전히 활개를 치고 있다. 벌써 두 번째 그런 일을 당했지만 거기서 사는 이상 감내해야 할 현실이라고 할밖에.

L1060615.JPG 보고타 구도심 볼리바르광장

이런 와중에 2025년 6월 7일 콜롬비아 수도 보고타에서 보수파 대통령 후보인 미겔 우리베가 15세 시카리오에게 머리에 총을 맞아 중태에 빠졌다.


유명한 방송 뉴스 앵커였던 그의 어머니 디아나 투르바이 역시 1991년 에스코바르의 지시에 의해 납치, 살해당했다.


대를 이은 암살 시도는 범죄에 대한 둔감성과 유전성은 에스코바르가 남긴 가장 악질적인 낙인임이 또 한 번 입증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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