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수염

2026년 1월 3일 화요일

by 손영호

산책을 마치고 카페에서 차를 마시던 중, 아내가 “수염이 희네”라고 말한다. 저녁 식사를 하는데 아내가 “수염이 자라니 느낌이 다르네”라고 말한다. 그제야 퇴직 후 처음으로 며칠간 면도를 하지 않은 것을 알게 되었다.


전혀 의도한 바는 없었다.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되었다. 게을러진 것도 아니다. 퇴직 전보다 열심히 살고 있다.


그렇다면 왜 수염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토록 자란 것인가?


사실 퇴직과 동시에 면도의 필요성은 이미 사라졌다. 그저 오래된 습관이 이어져 온 것이며, 수염이 없는 깔끔함에 익숙해져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환경에 따라 모든 것은 서서히 변화하기 마련이다. 인식되는 변화도 있고, 인식되지 않고 서서히 진행되는 변화도 있다. 문제는 그 변화의 흐름과 내용이다.


퇴직 4년 차에 접어든 현재, 나는 얼마나 어떻게 변했을까?


세부적이고 명확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나는 내 삶의 흐름에 만족하고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면 된 것이다. 삶에 있어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겠는가?


거울 앞에 서서 나를 바라본다. 흰 수염이 자란 내 모습이 나름 색다르고 괜찮다. 그러나 흰 수염은 오늘까지이다. 인지하지 못했던 선물과 같은 변화도 좋지만, 나는 여전히 깔끔함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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