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라보예 지젝(2016)
이 책의 글쓴이 지젝은 ‘철학자는 질문에 답하는 사람이 아니다. 세상에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다.’ 라는 말이 무엇인지 자신의 모든 것으로 잘 보여주는 철학자이다. 라캉-헤겔-마르크스라는 삼총사를 앞세운 그의 사상은 마치 고래 뱃속에 사는 우리에게 고래 밖의 드넓은 바다에 대해 알려주고 있는 듯하다. 고래에 잡아먹혀 그 속에서 나름 잘 먹고 잘 살고 있는 유럽-미국-동아시아 등지의 사람들에게 그는 말한다. “어째서 고래 밖의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 모두가 잘 먹고 잘사는 세상을 만들려 하지 않는가?” 라고.
이 거대한 고래가 등장하기 전부터 계급투쟁은 존재해 왔다. 그 장소는 교실 안이 될 수도 있고 하나의 도시일 수도 있다. 크게는 한 국가 전체를 무대로 한 계급투쟁도 있었다. 하지만 글로벌 자본주의는 투쟁의 장을 지구 전체로 넓히는 효과(?)를 가져왔다. 우리는 지금 원하건 원하지 않건 글로벌 자본주의 시대에 살고 있다. 재밌는 점은 현대인 중 그 누구도 여기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이다. 지젝은 이 점을 이렇게 지적한다. ‘전기-수도-가스가 없는 삶을 생각할 수 있는가?’ 라고. (이 견고하게 짜인 시스템을 벗어날 수 있는 ‘개인’은 있어도 ‘집단’이나 ‘사회’는 없다.)
지젝은 이 책을 통해 읽는 이의 가슴 깊숙이 질문의 창을 던진다. ‘왜 당신은 생각하려 하지 않는가?’ , ‘왜 당신은 지금 시스템의 물결에 몸을 맡긴 채 가만히 있는가?’ 라고. 그리고 우리가 마음 깊숙이 묻어둔 답을 수면으로 끌어올린다. [난 지금이 딱히 불편하지 않아서.] 혹은[지금 이 세상이 편하고 좋아서.] 이에 대해 지젝은 이렇게 답한다. ‘고래 뱃속에서 편하고 좋은 것이 진짜 네가 원하는 것이냐?’ 라고. 스스로의 욕망 앞에서 부끄럼이 없어야 한다고. 고래 뱃속에 갇혀 매일같이 새로운 노예의 삶을 사는 사람을 애써 외면한 채 내 눈에 띄는 불쌍해 보이는 사람에게 도움을 줘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위선이라고. 이 질문과 대답은 너무나 날카로워 읽는 이의 양심에 상처를 줄 정도이다. 그러니 이 책을 읽는 한국인은 약간의 각오(?)가 필요할 것 같다.
지젝은 ‘우리’가 ‘그들’을 도와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의무라고 말한다. 그는 ‘그들’을 무조건 배척하거나 무조건 받아들이자는 주장을 모두 나쁘다고 말한다. 새로운 노예의 탄생에 책임이 없는 단 한명도 없다. 그리고 이렇게 컴퓨터 앞에 앉아서 편하게 자판을 두들기는 우리는 신발공장에서 16시간을 일하는 아이보다 더 많은 책임이 있다. 모든 것은 그 책임감에서 비롯하는 의무에서 시작해야 한다. 테러에 대한 비판도 테러로 생긴 난민에 대한 판단도. 그리고 우리가 모르는 어딘가에서 새로운 노예계급이 되어버린 사람들에 대해서도.
그렇다면 글로벌 자본주의가 가져온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혹은 집단)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 지젝은 정확하게 그 답을 알려준다. ‘우리는 우리가 기다려온 바로 그 사람이다.’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