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친코>

100년 전 대한민국

by 현장감수성

의외로 일제강점기를 다룬 소설을 찾기도 쉽지 않고, 찾아도 읽기가 쉽지 않다. 조정래 작가의 아리랑, 박경리 작가의 토지처럼. 파친코는 그래서 신선했다. 이야기의 무대가 일본이라는 점도. 나는 아직 드라마는 보지 못했다. 소설을 읽었다. 두 권을 다 읽는데 일주일이면 충분했다. 작가는 우리가 막연히 상상하던 100여 년 전의 삶, 그중에서도 조선에서 일본으로 넘어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재일조선인의 기가 막힌 사연을 흥미롭게 풀어놓는다.


선자와 한수의 관계에서 비롯하는 모든 사건들은 선자와 한수 사이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의 삶을 뒤흔든다. 모자수는 파친코에서 일하며 먹고살고, 노아도 결국 대학을 버리고 나와 파친코에 취직한다. '인생이란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불확실성에 기대하는 파친코 게임과 같다.'는 말처럼 작가는 타국에 자리 잡으려 발버둥 치는 빼앗긴 백성의 삶을 정말이지 예측하기 어렵게 우리에게 풀어놓는다. 그리고 파친코 게임의 불확실성과 인생을 말하면서 동시에 매일 아침 파친코장 문을 열기 전 기계 속 못을 미세하게 조정해서 돈을 버는 인생을 그려낸다. 많은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에 선자는 사진첩을 함께 묻는다. 드디어 혹은 결국 자기도 해방을 맞이했다는 듯이. 작가는 여자 혹은 여성의 삶음 고난과 역경이고 운명이라 받아들인 선자를 통해, 이제는 남편과 정인과 아들에 얽매이지 않는 선자를 통해, 지금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부산에서 태어나 한수의 아이를 가지고 이삭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와 노아와 모자수를 키워내며 살아가는 선자의 삶. 선자의 삶은 내가 함께하기에 충분한 삶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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