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보다 <하얼빈>보다 소설 <하얼빈>
칼의 노래-흑산-남한산성에 이어 하얼빈이다. 김훈이란 이름만으로 이 책을 사서 읽기에 충분하다. 공교롭게도 내가 이 책을 읽는 와중에 영화 [영웅]을 봤고, 책을 읽은 뒤 영화 하얼빈을 봤다. 작품들 모두 같은 인물의 이야기를 하고 있음이 분명한데, 소설과 영화라는 전달방식의 차이에서 비롯한 내용의 차이는 꽤 컸다. 굳이 둘 중 하나를 고르자면 나는 백이면 백 소설이다.
하얼빈을 펼치기 전, 가장 궁금한 점은 이 소설을 어떻게 끝냈을까 보다 이 이야기를 어떻게 시작할까였다. 책장을 펼치고 첫머리를 읽었다. 의외였다. 당연히 안중근이나 이토 둘 중 하나로 시작할 줄 알았는데 작가는 일본의 천황 메이지와 조선의 황태자 이은의 만남을 선보였다. 그렇게 시작한 이야기에 이토와 안중근이 등장한다. 둘은 서로 다른 공간선과 시간선을 타며 하얼빈으로 향한다. 안중근과 이토의 이야기를 전개할 때마다 둘은 점점 가까워졌다.
절반이 조금 지난 지점에서 둘은 만나고 안중근은 이토를 '살'한다. 이 만남이 이뤄지기까지 안중근과 이토가 무엇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누구와 만나고 어디를 가는지 한 장 한 장 그려나가는 작가의 솜씨에 절로 감탄이 나온다. (작가는 말미에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며 청년 안중근을 자신이 다 담을 수 없었음을 안타까워한다. 지나친 겸손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을 소개한다.
이토를 '살'하는 까닭은 이토를 '살'하는 연유를 말하기 위함인데, '살'하지 않고 말하면 아무도 듣지 않을 것이고, '살'한 뒤에 말하면 이토는 그 까닭을 들을 수 없음을 고민하는 안중근의 내면. 이토를 '살'하지 않고 그 작동만 멈출 수 없을까 고민한 끝에 이토를 '살'하기로 결심하는 과정.
안중근은 청년이었다. 처자식이 있었고 포수였으며 참모중장의 지위를 얻은 적도 있다. 황해도 부유한 안씨 문중의 장남으로 태어나 동학군에 맞서 마을을 지켜냈고, 천주교 신자였으며 1909년 10월 26일 아침 9시에 하얼빈에서 이토를 쏴 죽였다. 이후에는 감옥에서 글을 쓰다 이듬해 3월 26일에 사형당한다. 하얼빈에 묻은 뒤 독립한 조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던 그의 소망을 우린 아직 들어주지 못하고 있다.
안중근 이름 석자를 들어본 청소년들이 읽기 좋은 책이 하나 있다. 안중근 재판정 참관기라는 책이다. 어른을 위한 뮤지컬 작품 영웅과 영화 영웅, 2024년에 개봉한 영화 <하얼빈>도 있다. 그 밖에 많은 작품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김훈의 소설 <하얼빈> 만큼 인간 안중근을 그대로 보여주는 작품은 없다. 안중근을 아는 모든 한국인에게, 안중근을 기억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 책을 읽어보라 강하게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