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기로운 세계사>

술맛 따라 바뀐 역사

by 현장감수성

제목이 무척 마음에 드는 책이다. '술'기로운 세계사라니. 제목만 보면 술에 얽힌 여러 일화들을 모은 책이라 짐작할 수 있지만 아니다. 제우스와 길가메시 서사시, 성경에서 시작하여 십자군 전쟁, 백년전쟁, 30년 전쟁, 미국의 남북전쟁과 세계대전에 이르기까지 말 그대로 '세계사'를 다루는 책이다.


러시아가 이슬람 국가?!

지금으로부터 약 1000년 전, 블라디미르 대공이 키예프 지역에 나라를 세운다. 국교를 정해야 하는데 후보는 셋.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 유대교는 유대민족을 위한 종교이고, 나라 없는 떠돌이 신세라 아웃. 기독교와 이슬람교를 놓고 고민인데 이게 요즘으로 치면 밸런스 게임이랑 비슷하다. 술은 허용하지만 이혼이 까다로운 기독교와 술을 금지하지만 일부다처제와 이혼이 쉬운 이슬람교 중 러시아 답게(?) 술을 택한다. 그래서 탄생한 게 바로 러시아 정교(정통기독교의 줄임말, 참고로 '정교'를 영어로 오소독스라고 한다. 복싱의 그 오소독스.)

만약 1000년 전 러시아가 술을 포기하고 이슬람교를 택했다면 우리의 역사와 지금의 세계지도는 어떻게 바뀌었을지 상상만으로도 재밌지 않은가? 이처럼 '술'이 세계 역사에 끼친 영향은 생각보다 많은데 의외로 많이들 모른다.


한 잔 하기 전에 기본안주부터

이 책을 읽기 전, 미리 알아두면 좋은, 그러니까 술집에 가면 자리에 앉자마자 주는 기본안주 같은걸 먼저 소개한다. 배경지식이야 많을수록 좋지만, 기본안주가 너무 많으면 나름 또 부담이기에, 딱 두 개만 소개하면 하나는 '썬킴의 프랑스사'이고 다른 하나는 1919년 미국의 금주법이다. '썬킴의 프랑스사'를 추천하는 이유는 이 책의 주요 무대가 유럽이기 때문이다. 프랑크 왕국, 십자군 전쟁, 영국과 프랑스의 백년전쟁이 등장한다. 최초의 세계대전이자 마지막 종교전쟁이라 불리는 30년 전쟁에서 세계대전과 6.25까지. 많은 전쟁이 안주로 등장하니 다양하게 즐기면 된다. 다음은 미국의 금주법인데, 이걸 조금 알면 책을 훨씬 더 재미있게 볼 수 있다.


한 입 털이(원샷)는 바이킹이 시작했다.

그럼 맛있는 술과 안주를 몇 개 소개해보자. 최초의 화이트와인은 어디일까? 놀랍게도 이집트다. 이집트 신왕국 18 왕조의 12대 파라오였던 투탕카멘의 무덤 동쪽에는 화이트와인이 서쪽에는 레드와인이 있었다. 술을 채운 술잔을 부딪히며 건배를 하고 한 입에 털어 넣는 원샷은 누가 시작한 걸까? 바이킹의 문화다. 뿔로 만든 바닥이 뾰족한 잔은 세울 수 없어 원샷을 했고, 혹시나 독이 있을까 서로의 술이 섞이도록 잔을 부딪히며 건배를 했다고 한다. 스코틀랜드 위스키, 러시아의 보드카, 프랑스의 코냑의 공통점은? 셋 다 증류주라는 것이고 십자군 전쟁을 통해 유럽에 들어왔다는 점이다. 당시 아랍 지역은 연금술이 유행이었고 여기서 증류주가 나온 것이다. 유럽의 모든 증류주는 같은 어원을 두는데 이를 번역하면 '생명의 물'이다. 왜냐하면 증류주를 유럽 인구의 1/3을 앗아간 흑사병의 치료제로 썼기 때문이다.


좋은 술은 좋은 나무에서 난다.

길가메시 서사시의 주인공 길가메시가 악행을 저지르자 창조의 여신 아루루는 엔키두를 만들어 그에 대항하게 한다. 문제는 그가 인간이 아닌 짐승에 가까웠다는 점. 이때 샴하트라는 여인이 엔키두와 6박 7일간 함께 하며 술과 빵을 먹인다. 그 덕에(?) 야수성을 벗고 인간의 지혜를 더한 엔키두는 길가메시와 싸워 이기고 둘은 절친이 된다. 역시 술 마시고 친해지기, 싸운 뒤에 친구하기는 인류 전통이었나 보다. 아, 혹시 레바논의 국기를 보신 적이 있는지? 빨간 가로줄 사이에 하얗고 굵은 가로줄이 있는데 그 하얀 바탕 한가운데 웬 나무 한그루가 우뚝 서있다. 길가메시는 신들의 숲을 지키는 괴물 훔바바를 물리치고 백향목이라는 나무를 얻는데 레바논 국기에 있는 나무가 바로 백향목이다. 나무가 술에 끼치는 영향은 매우 큰데 프랑스가 코냑 지방에서 코냑을 발전시킬 수 있었던 이유도 근처에 질 좋은 오크나무를 대량 재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코냑은 와인을 증류하여 얻을 수 있는데 증류는 프랑스에서, 숙성은 영국이, 판매는 네덜란드가 하는 신기한 문화가 탄생한다. 네덜란드는 냉장고를 발명하여 시원한 맥주를 마실 수 있는 엄청난 일을 해내지만 뉴 암스테르담이 뉴욕으로 바뀌듯, 점차 잉글랜드에게 주류사업을 빼앗기게 된다.


전설의 캪틴큐도 등장

이 책에는 이 밖에도 다양한 술과 안주가 등장한다.

독일의 맥주 순수령 이야기.

미국의 금주법이 신선한 우유에 끼친 영향.

위스키를 Whisky라고도 하고 Whiskey라고도 하는 이유.

프랑스 집들의 창문이 점점 작아지듯, 유리잔이 점점 작아진 까닭.

두꺼비로 유명한 진로 소주가 북한의 평안도에서 시작한 사연.

마시고 난 다음 날에 숙취가 없다는 전설의 '캪틴큐' 이야기까지.


소주와 맥주를 구별할 수 있고 와인과 칵테일을 한 번쯤은 마셔봤으며 존 윅의 버번위스키와 제임스 본드의 보드카 마티니 할 때 그 보드카를 들어 본 적 있다면, 마음에 드는 술을 한 잔 하면서 술기로운 세계사를 한 번 읽어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