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지는 교권에는 날개가 없다.

라떼 교사의 인권침해(?) 이야기

by 현장감수성
"인권을 부정할 권리도 인권일까?"


다원주의(多元主義, Pluralism)는 다양성을 인정하고, 다양한 의견을 존중하겠다는 입장을 말한다. 흥미, 관심, 문화, 신념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것은 현대 민주주의 철칙 중 하나이다. (위키백과)

박구용 교수님의 강연을 들으며 다원주의를 설명하신 내용이 인상 깊게 기억에 남았다. 다원주의는 '당위'가 아닌 '사실'이라는 것이다. 마땅히 그러해야 하기에 다원주의를 추구하고 실천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다원주의는 옳고 그름, 할지 말지를 따질 수 없는 수준 즉, '사실'로서 존재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다원주의를 거부하는 다양성이나 의견은 불가능하다. 아무리 다원주의 사회라고 하더라도 다원주의를 거부하는 의견마저 다양성을 존중하는 차원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말이다. 나는 이 의견에 100% 동의한다.


인권을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기 위해 마땅히 누려야 할 기본 권리라고 할 때, 그리고 그 안에 자유와 평등, 존엄과 책임을 담고 있다고 할 때, 같은 물음을 해보자. 누군가의 인권을 침해하거나 거부 혹은 부정할 '권리'가 있음을 우리 사회가 인정해야 할까? 아니다. 그래서 헌법으로 인권을 보장함과 동시에 법률로 인권을 제한하고 있는 것이다. 술을 먹고 운전할 권리는 없다. 길고양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활로 쏠 권리도 없다. 내 차 내가 운전하겠다는데 늬들이 뭔 상관이냐, 모기도 때려잡는데 고양이한테 화살 몇 발 쏜 게 대수냐, 내 마음이고 내 자유다!!라고 외치는 사람은 매우 곤란하다. 지구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국가에서 이런 권리는 공권력을 발동해 제한하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 교실을 돌아보자. 스무 명이 넘는 아이들이 오전 내내 함께 하는 초등학교 교실은 어떤 상황일까. 하루에도 수백 건의 인권침해가 벌어지고 수십 건의 학교폭력이 발생한다. 법령과 매뉴얼대로 목격한 학교폭력을 전부 신고하여 사안처리 하기 시작하면 학교는 바로 마비될 것이다. 결국 이 모든 억울함과 하소연을 들어주고 풀어주는 건 교사의 몫. 문제는 같은 억울함을 계속해서 호소하고 같은 하소연을 반복해서 늘어놓은 아이들이다. 왜 선생님은 나에게 이런 일이 안 일어나게 막아주지 못하나요? 그러게 말이다. 말로 제지하고 타일러보고, 교실 뒤로 내보내 5분 정도 서있게도 해보고, 따로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불러 이야기도 나눠보고, 훈계나 훈육도 시도하고, 보호자에게 연락도 해봤지만, 아직 어린 1학년 학생들은 다음 날이면 몽땅 잊고 새 출발을 한다. 빠른 아이들은 다음 쉬는 시간에 바로 출발하고.


정말로 궁금해서 물어보는 것이다. 이 아이들의 안전, 인권을 교사가 보호하지 않아도 되는가? 아니면 보호할 책임이 있는가? 책임이 있다면 책임을 다할 수 있게, 책임을 다 했을 때 인정받을 수 있게 뭔가 법률이나 제도가 뒤따라와야 하는 거 아닌가? 지금 대한민국 교사들은 그물도 낚싯대도 없이 강에 들어가 맨손으로 물고기를 잡는 심정이다. 한 마리도 잡지 못하면 페널티가 따라오는. 다른 학생의 인권을 침해하고 부정하는 학생을 제지하고 가르치는 게 교사의 임무이자 의무가 아니었던가? 피해를 호소하는 학생의 인권과 학습권을 지키고 보장하는 게 교사가 마땅히 해야 할 일 아니었던가? '저 선생님 어차피 소리 지르는 거 말고 아무것도 못해.' 이렇게 생각하는 아이가 한 명이라도 있어서, 그 한 명으로 발생하는 예외를 모두가 목격하여, 열흘만 지나면 그 반의 평범했던 아이들마저 이상한 분위기에 휩쓸리는, 하지만 여전히 그 모든 책임은 교사가 짊어지는, 맨몸으로 강의 물고기를 잡아보려 고군분투하다 지쳐 쓰러지는 게 대한민국 교사들이다. 그리고 진정으로 배움을 찾는 아이들은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규칙을 지키며 선생님과 보호자로부터 배운 가르침을 실천하려 노력하는 그런 아이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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