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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어지는 교권에는 날개가 없다-9

라뗴 교사의 인권침해(?) 이야기

by 현장감수성
그냥 궤변이다.


아무리 교사가 현장감수성이 높다 한들, 인권감수성도 필요한거 아닌가? 맞다. 100번 동의한다. 다만 현장 교사 입장에서 제발 실현 가능한 이야기를 해달라는 것이다. 부처님이 환생하고 세종대왕님이 다시 오셔도 도달할 수 없는 인권감수성의 경지를 제시하며 매일 현장에서 갈려나가는 교사들에게 들이대며 완벽하지 않기에 문제의 소지가 있다는 식의 접근은 이제 사양한다. 교사를 믿지 못하겠으니 어쩔 수 없다? 동의하지 않는다.

교사는 법령에 따라 학생을 교육한다. 이 법령은 교사에 대한 신뢰로 가득차있다. 그렇기에 학생을 교육한다는 저 문장 하나로 교사들이 다음과 같은 일을 마땅히 수행하리라 굳게 믿는 것이다.

1. 교실 청소와 정리정돈

2. 쓰레기 치우기

3. 교실 예쁘게(그리고 교육하기에 알맞게) 꾸미기

4. 학생이 바닥에 물이나 우유를 쏟으면 치우기

5. 학생이 책상에 토를 하면 치우기

6. 토한 학생 씻기기

7. 화장실 벽에 똥칠한거 닦기

8. 막힌 변기 뚫기

9. 약 챙겨온 학생 약 먹이기

10. 머리 풀어진 학생 머리 묶어주기

11. 살짝 상처가 난 학생 연고 바르고 밴드 붙여주기

12. 속상해서 울고 있는 학생 달래주기

13. 잃어버린(못찾는 중인) 물건 찾아주기

14. 점심 먹고 이 닦았는지 확인하기

15.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안전하게 노는지 확인하기

16. 학교 안으로 배달 오토바이가 지나가면 업체에 항의전화하기

초등학교 저학년의 경우 학생이 책상에 토하는 사건(?)은 은근히 자주 벌어진다. 먹던 우유 툭쳐서 쏟아지는건 말할 것도 없고. 당연히 교실은 순간 아수라장이 된다. 토한 친구는 눈물을 쏟으며 굳어있고, 교과서와 책상위는 토사물에 뒤덮혔다. 옆자리 학생은 도망가는데 다른 학생들은 구경하겠다며 몰려든다. 토한 학생의 옷과 머리카락은 당장 목욕탕이 아니라 세차장을 가야할 수준이다. 이 토사물 누가 치워야 하는가? 학생 학부모 교사 누구에게 물어도 결국엔 교사가 치워야 할 것이라는 답변이 나올 것이다. 그럼 여기서 상식과 한참 벗어난 질문을 해보자. 교사가 이를 치워야 하는 명확한 근거가 있는가? 그 어느 법령을 뒤져봐도 학생의 토사물을 교사가 치우라는 내용은 없다. 대한민국 교육과 학교 관련 모든 문서를 다 찾아봐도, 챗GPT한테 물어봐도 이런 문서는 없다고 답할 것이다.

실제로 수업 중이던 담임교사가 토사물을 치우지 않고 그냥 수업을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옆반 선생님이건 누구건 교실로 들어올테고, 누군가는 손수 토사물을 치워야 할 것이다. 누군가는 토한 아이를 씻기고 보살피며 보건실로 데려갈 것이다. 담임교사는 꿋꿋이 수업을 마치고 근무시간이 끝나면 퇴근할 것이다. 퇴근하기 전에 교장이나 교감이 불러 질책할 수 있다. 다음 날 출근하면 학부모 민원 전화가 와있을지 모른다. 그래도 신변엔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누군가 아동학대로 신고하기 전까지. 실제로 이런 말을 하는 교사가 있을까? 법적으로 제가 할 일이 아니니 안 치웠다고. 이쯤되면 그건 말이라고 할 수 없다. 그냥 궤변이다.


학생이 수업 중 갑가지 토하면 당연히 교사가 치우고 수습할 것이다. 그게 우리 사회의 상식이다. 안 치우고 꿋꿋이 수업하는 교사가 상식을 초월한 것이라는 말에 현직 교사의 99% 이상이 동의할 것이라 확신한다. 교사의 판단과 행동이 공동체의 상식을 벗어나면 분명 질타를 받을 것이다. 교사에게 요구하는 인권감수성도 마찬가지다. 상식을 초월하면 질타를 받아야 한다. 그리고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아무리 천부인권이라해도 말이다. 가장 먼저 논의 테이블에 올릴 재료는 학생의 학습권 보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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