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떼 교사의 인권침해(?) 이야기
급한 불 끄고 보자는 식의 똥덩어리
'극단의 상황'이 터지면 여론이 들끓고 당장의 소나기를 피하기 위한 포장에만 집중한 똥덩어리.
내가 정의한 대한민국 정부의 교육정책이다.
백번 양보하여 내용물이 똥덩어리가 아닌 흙덩어리라도 되려면 최소 둘 중 하나는 해야 한다.
1. 포장하기 전에 이게 똥인지 흙인지 된장인지 밀가루인지 '현장교사'에게 의견을 구할것.
2. 여론의 압박에 밀려 뭐라도 해야겠으니 일단 지르고 본다는 심정으로 현장에 똥덩어리를 보냈으면, 나중이라도 이걸 덮을 흙을 계속해서 보내줄 것.
하지만 교육부는 둘 중 하나도 하지 않는다. 심지어 (본인들은 흙이나 밀가루쯤 된다고 판단했는지 모르지만) 똥을 추가로 보낸다. 저글링하며 마라톤하던 교사들이 열심히 똥을 치워 놓으면 지하철 빈자리라도 발견한 사람마냥 어느순간 또 뭔가가 떨어지고 있다.
학교폭력(나는 이 용어에 동의하지 않는다. 학생폭력 혹은 청소년폭력 혹은 학생분쟁 정도의 용어가 맞다고 생각한다.)관련해서도 그렇다. 2011년 12월 대구 중학생 자살사건이 온 나라를 휩쓸자 교육부는 갑자기 대책을 쏟아내고 국회는 급히 법안을 개정한다. 2023년 정순신, 이동관 자녀 학폭 문제가 입시와 연결되어 크게 불거지자 또다시 부랴부랴 급한 불 끄고 보자는 식의 똥덩어리 교육정책이 학교에 떨어진다.
당장 어제(2025년 2월 19일)도 학교로 공문이 하나 왔다.
[긴급]국회 요구자료 제출(학교 CCTV설치 관련)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학교 복도와 계단, 돌봄교실 주변에 CCTV 추가설치를 희망하면 2월 20일 오전 10시까지 회신하라는 공문이다. 이 공문은 교육부에서 2월 18일에 시행했다. 교육부-교육청-학교를 거쳐 내려오면, 학교에서는 관련 업무 담당자(최소 교감, 생활부장, 행정실장)가 모여 협의를 해야 한다. 협의한 내용을 교직원에게 공유하고 추가설치를 희망하면 공문으로 회신해야 한다. 아마도 누군가 2025학년도 시작하기 전에 '안전한 학교'를 만들었다는 생색을 내고 싶었는지. 그 누군가는 하루만에 이게 정말 가능하리라 생각하는건지 웃음도 나오지 않는다.
이런 똥덩어리 교육정책의 가장 큰 문제는 2가지다.
하나는 '극단의 상황'을 일반화한다. 학생사이에서 발생하는 여러 갈등이나 분쟁 혹은 싸움은 그 유형이 매우 다양하고 정도의 차이도 크다. 초등학교 1학년이 저지른 행위와 고등학교 3학년이 저지른 행위를 같은 잣대로 판단하는게 현행 학폭법이다. 그렇게 따지면 나는 지난 해 수백 수천건의 학교폭력 사안을 은폐한 셈이다. 20명이 함께 지내는 초등학교 1학년 교실에서 학폭법이 정의하는 학폭 사안은 하루에도 수십건씩 발생하니까. 현장에 있는 교사들이 아무리 유형의 다양성과 정도의 층위를 소리쳐도,
"그 중에 하나라도 이번에 발생한 사안처럼 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느냐? 너희가 책임질 수 있느냐?"
는 질문은 모든 물음과 의견과 요구를 한 방에 잠재운다.
두번째는 사후 관리가 전혀 없다는 점이다. 앞서 말한 대구 중학생 사건의 경우, 교육부에서 매우 적극 대응했다. 각 지역별로 교육부 직원(꽤 높았던 걸로 기억한다. 이 연수 관련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다룰 예정.)이 직접 마이크를 잡고 관련 부서를 구성하여 가동하고 장기 대응 방안을 마련하여 운영할 것이라 호언장담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2012년 당시 생활부장 업무를 맡고 있던 나는 2013년부터 관련 연수나 안내를 전혀 받지 못하였다. 결국 현장 교사들은 목소리를 모으기도 어렵고, 모은 목소리를 전달하기도 어렵다. 교육부에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이 있어야 뭔가 시작이라도 가능할텐데.
이쯤되면 이럴 때라도(?) 교육현장에 관심을 가지고 정책이 바뀌는 것에 감사해야 하나 자괴감이 들 정도다. 떨어지는 똥을 맞아가며 치워내는 일은 익숙해졌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