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떼 교사의 인권침해(?) 이야기
"얘들아, 영화 진짜 재밌지 않았니?"
영화는 내 몇 안 되는 취미 중 하나다. 어제는 최근 개봉한 미키17을 보러 갔다. 15세 관람가였지만 초등학생 (4~6학년정도 되어 보이는)자녀를 둘이나 데리고 온 보호자와 옆에 나란히 앉아서 영화를 봤다. 툭하면 주인공이 죽어대고 f-word도 자주 출몰하는데 성행위를 묘사하는 장면까지 더해지자 괜스레 옆자리 학생들이 마음에 걸리며 보호자도 조금 걱정되었다. 하지만 영화가 끝난 뒤 보호자의 입에서 나온 첫 질문과 표정은 내 에예상과 매우 달랐다.
"얘들아, 영화 진짜 재밌지 않았니?"
눈빛과 표정에서 진심이 묻어나고 있었다. 아이들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내 뒤를 따라 묵묵히 영화관을 빠져나왔다. 교사가 학생들에게 이 영화를 보여주고 같은 질문을 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하는 상상이 뒤따랐다.
나는 6학년 학생들과 학교에서 타이타닉을 보고 민원을 받은 적이 있다. 문제(?)가 될만한 부분은 사전에 검열(?)해서 건너뛰었다. 영화를 다 본 뒤에는 증기기관과 산업혁명, 그리고 타이타닉호의 침몰이 1차 세계대전에 끼친 영향을 함께 이야기하며 학습지를 채웠다. 그래도 일단 민원이 들어왔기에 나는 충실한 해명을 하였다. 그럼에도 민원인은 교장-교육지원청-도교육청에 차례로 민원을 넣었다. 내 근무지가 서울이었다면 청와대 앞에서 1인시위도 불사할 기세였다. 정작 영화를 보고 수업을 들은 학생은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보호자는 이것도 건수랍시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나중에는 안쓰러울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 영화가 타이타닉이 아니고 미키17이었다면? 게다가 아무런 검열(?)없이 보여줬다면? 내가 아무리 영화에서 다루는 철학과 사회비평을 놓고 심도있게 토론과 학습을 전개하였다해도 이 민원의 끝에서 안쓰러움은 오롯이 나의 몫이었을 것이다.
교사들, 특히 유아학교(유치원)과 초등학교 교사들의 문제의식은 여기서 출발한다.
왜 같은 행동을 두고 교사는 도덕적-사회적-법적 책임과 지탄을 받아야 하는가?
사회는 교사에게 이렇게 답해왔다.
그게 바로 보호자와 교사의 차이다. 교사는 공무원이자 교육자로서 지켜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
맞는 말이다. 그리고 오해는 말자. 보호자나 양육자가 책임지지 않는 모든 일을 교사도 면책권을 달라는 말이 아니다. 교사라서 감당해야 하는 의무와 책임이 몽땅 잘못되었다는 부정도 아니다. 오히려 저 대답이 옳다고 생각하는 교사들이 훨씬 많을 것이다. 다만 저 대답이 옳다는 가정하에 반드시 되물어야 하는 질문이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사회는 교사에게 부모의 역할을 요구하는가? 게다가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각종 민원과 문제제기, 아동학대로 신고마저 당해야 하는가?
교사들은 2023년 여름, 대한민국 사회에 이런 물음을 던진 것이다. 이제 사회가 교사들의 물음에 답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