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n't look up!!>

모든 국민은 그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고? 그럼 국민의 수준은?

by 현장감수성

이 영화는 두 가지 웃음을 준다. 한 달치 어처구니가 모두 사라져 나오는 헛웃음과 '정말 이렇게 진행되는 거 아닐까.' 하는 쓴웃음. 영화를 더 재밌게 즐기기 위해 미리 알면 좋을 내용 몇 가지만 꼽아보자.

인간은 합리적 동물이 아니라 합리화하는 동물이다.
사람은 보고 싶은 사실을 보고 진실이라 믿는다.
민주주의는 영어로 Democracy다. 보통 00주의라고 하면 ~~ism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지만(자본주의, 이상주의 등) 민주주의는 다르다. 민주주의는 추구하는 사상이나 신념이 아닌 '사실'로서 존재한다.
민주주의는 그 구성원 한 명 한 명이 민주주의자가 되어야 작동하고 유지할 수 있다.


17년 차 초등교사 중 한 사람이자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시민 중 1인으로, 이 영화만큼 민주주의에 대해 다양한 관점과 서로 다른 깊이로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작품이 또 있을까 싶다.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어떤 이유에선지 알 수 없지만 에베레스트만 한 소행성이 지구와 만나고 싶어 한다. 6600만 년 전에 한 번 만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만남이 꽤 인상 깊게 남은 듯. 이번에 또 만나면 지구는 파괴되고 인류는 멸종한다. 그리고 천문학과 교수와 대학원생으로 이뤄진 2명의 주인공이 당연히(?) 이 사실을 가장 먼저 발견하게 된다. 인류에게 남은 시간은 6개월뿐이라는 사실과 함께. 호모 사피엔스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소식을 알게 된 주인공들은 자연스럽게(?) 대통령에게 자신들의 발견을 보고한다. 보고를 받은 대통령의 대답은 "일단 기다려보자." 이 너무나도 어처구니없고 무섭도록 현실적인 반응이 황당한 주인공들은 방송에 나가서 이를 대중에게 알리기로 결심. 가장 잘 나가는 토크쇼에 나가서 이 소식을 전하지만 더 잘 나가는 연예인의 결별과 재결합 소식에 묻히고 만다. 하지만 결국 국면 전환이 필요했던 대통령이 다시 인류 멸종에 관심을 가지고 주인공 이야기를 귀담아들으며 날아오는 에베레스트를 수천 개의 동네 뒷산으로 만들기 위해 미사일을 발사하는데, 잘 날아가던 미사일이 방향을 틀며 자폭하며 영화의 스토리도 굉음과 함께 절정으로 치닫는다. 어째서 대통령은 작전을 취소했을까? 인류 멸종보다 더 중요한 일이라도 생겼단 말일까?? 이후 국민은 두 패로 갈라진다. 위를 보라는 사람들과 위를 보지 말라는 사람들. 긴 꼬리를 끌고 밤하늘을 질러오는 혜성을 맨 눈으로 본 사람들은 이 사실을 어떤 진실로 받아들일까? 결국 인류는 우리가 영화-아마겟돈이나 딥 임팩트-처럼 위기를 극복했을까???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참 많은 물음과 이야깃거리가 생길 것이다.

1. 내가 주인공이라면 대통령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2. 대통령의 수준이 저 모양이면 우리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3. 자전거 사고와 문명의 붕괴를 구별하지 못하고, 이토록 중요하고 중대한 사안을 웃음거리 중 하나로 취급하는 언론을 보라. 이런 상황에서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을까? 아니라면 어떻게 이를 바로잡을 수 있을까? 대중매체 소비자 인식개선?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강화? 방송 관련 심의위원회 구성과 운영? 관련 법률 개정과 제정?

4. 투표로 권력을 위임받은 대표자는 자신의 권한이 어디까지인지 스스로 정할 수 있는가? 해석의 여지가 없도록 법률과 규정을 세세하고 완벽하게 만드는 건 불가능하다. 이 해석의 주체는 누구인가? 법원인가? 대통령인가? 아니면 국민들인가? 영화처럼 국민 절대 다수가 반대하는 해석을 대표자가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5. 대표자는 시민이 투표로 뽑는다. 시민의 수준이 대표의 수준을 결정한다. 시민의 수준은 교육의 질과 언론의 수준이 결정한다. 영화 속 사람들이 "에베레스트만 한 혜성이 지구를 파괴한다는 사실."을 정치 문제나 정쟁으로 보지 않고, 개인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인류 전체의 문제임을 명확히 인식하기 위해 어떤 교육이 필요한가? 이게 단지 공교육의 변화나 강화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인가?

6. 인류를 구할 기회를 날려버리는 권한이 대표자에게 있는가? 그리고 (단지) 돈이 많다는 이유로 그 대표자에게 이토록 막강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도록 대표자 스스로 허락해 줄 수 있는가?

7. 사실을 왜곡하고 진실을 부정하는 표현의 자유가 성립할 수 있는가? 민주주의를 왜곡하고 부정하는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야 하는가? 표현의 자유를 없애자는 표현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인가?


개인의 죽음이건 국가의 멸망이건 인류의 멸종이건 결국 한 사람 한 사람의 사고와 판단에서 비롯한다. 영화 속 혜성은 미국과 중국, 러시아와 일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날아왔다. 우리나라로 날아온 혜성을 언론은 어떻게 다뤘고, 다루고 있는가. 이를 바라보는 시민들은 어떤 생각과 판단을 하고 있는가. SNL작가 출신 감독이 던지는 이 가벼운(?) 블랙코미디는 12월 3일을 앞두고 우리에게 더욱 무겁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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