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

콜럼버스보다 미국 사회에 더 큰 충격을 준 사람

by 현장감수성

'윌 헌팅'이 추천하는 하워드 진

'미국민중사'의 그 하워드 진이다. 영화 '굿 윌 헌팅'에서 맷 데이먼이 로빈 윌리엄스와 처음 만난 상담실에서 책장에 꽂힌 책들을 보며 '이 책들은 다 쓰레기예요. 진짜를 알고 싶거든 하워드 진을 읽어야지.' 라고 말할 때 등장하는 그 하워드 진이다.


하워드 진이 이 책을 통해 우리에게 말하고 싶은 주제는 지극히 단순하다.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

원제를 다시 한 번 친절하게 번역하여 말하면

"달리는 기차위에 올라탄 당신은 중립을 선택할 수 없습니다." 정도가 되겠다.

흔히 말하는 정치적 중립은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닥터 스트레인지에게서 타임스톤을 빼앗아 시간을 멈추고 토론하지 않는 이상.


일단 멈추거나 계속 달리거나

여기 달리는 기차가 있다. 당신은 그 승객 중 한 명이다. 그런데 누군가 물음을 제기한다.

"이 기차가 과연 똑바로 가고 있는가? 이대로 계속 가는 게 맞는 길인가?"

토론을 하는 동안, 기차는 계속 달리고 있다. 토론의 시간을 극도로 줄이기 위해 10분 뒤 바로 투표해서 결정한다고 치자. 이 때 선택지는 무엇이 있을 수 있을까?

1. 일단 멈춘다.

2. 계속 달린다.

이 2개가 전부다. (명심하자, 기차는 지금 이 순간에도 달리는 중이다.)

여기서 당신이 '중립'(혹은 기권)을 선언한다고 해보자. 투표 결과 계속 달리기로 했다면 당신은 결국 계속 달린다에 투표한 셈이다. 투표 결과 일단 멈추기로 했다면 당신은 결국 일단 멈춘다에 투표한 셈이다. 결국 '중립'이란 허상에 불과하다. "이기는 편 우리 편"에 지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오해는 하지 말자. 결국 흑백논리로 귀결되거나, 니 편 아니면 내 편 식으로 모든 사안이 이분법으로 나뉜다는 뜻이 아니다. 현실에선 토론할 시간이 10분 이상 있다. 이 책을 읽고 가장 크게 느끼는 점은 토론에 참여하지 않는 것, 눈앞의 사안을 외면하는 것이 곧 중립이 아니라는 것이다. 생각하기 귀찮고 참여하기 싫은 사람들에게 정치 혐오와 양비론은 가장 쉽게 빠질 수 있는 (심지어 그럴듯해 보이는)함정이다. 잊지 말자. 민주주의는 민주시민의 연합체다. 구성원 한 명 한 명이 민주시민일 때 민주주의를 유지하고 작동시킬 수 있다.


대한민국에서 달리는 기차들

이 책에서 등장하는 기차는 바로 인종차별 철폐다. 미국에서 인종차별이란 기차는 끊임없이 달리고 있다. 이 기차에서 '멈춰라'고 말하지 않는다면 결국 인종차별에 동조하는 셈이 된다. 하워드 진은 특유의 자신의 경험을 통찰과 서사를 통해 우리에게 이야기해준다.


지금 대한민국에도 여러 기차가 달리고 있다. 그리고 좋든 싫든 우리는 그 기차에 전부 혹은 일부(?)를 탑승한 셈이다. 선택은 일부가 하지만 결과는 모두가 받아들여여 한다. (오징어 게임2에서 황동혁 감독은 이를 매우 직설적으로 보여준다.) 나는 토론에 참여하지 않았으나 토론의 결과가 나의 선택과 일치한다면 당신은 최고의 가성비를 획득한 셈(이라 착각할 수 있다)이다. 이런 당신을 위해 아테네의 정치가이자 시인이었던 솔론(기원전 638년생으로 소크라테스, 싯다르타보다 먼저 태어남)은 일명 '중립금지법'을 발의했다. “도시에 내란이 일어났을 때 어느 편에도 가담하지 않고 중립을 지킨 사람은 시민권을 박탈한다.”는 것이다. 공동체(민주주의)가 파괴당할 위험이 닥쳤는데도 (하다못해 담벼락에 욕이라도 해야지) 아무것도 하지않거나, 이기는 편 우리편을 시전하는 자는 시민의 자격이 없다(노예와 다름없다)는 뜻이다. 민주시민이냐 노예냐, 선택은 언제나 당신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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