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기고글
현직 교사로서, 대한민국 교육은 창의성을 죽인다는 말을 들으면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인터넷 댓글이나 게시글 제목을 보면 사람들의 창의력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인터넷 공간에서 누군가 재미 삼아 만든 말은 영향력이나 파급력이 큰 경우가 있다. 웃프다, 뽀시래기, 꽃길, 심쿵, 딸바보 등과 같은 말은 국어학자들이 인정한 신조어다. 기존 표준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어감을 절묘하게 전달하는 점을 높이 샀다. 이런 말은 인터넷 공간을 넘어 우리 생활과 방송에서도 볼 수 있다. 6학년인 우리 반 학생들도 많이 쓴다. 그런데 이런 말 가운데 방송에 나와서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말들도 있다.
요즘 특히 불편한 말이 ‘댕댕이’다. 그냥 멍멍이나 강아지라고 하면 될 일이다. 왜 굳이 방송에서까지 댕댕이라 하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3월에 우리 반 학생들에게 물어봤다. 댕댕이가 멍멍이에서 왔다(비슷한 모양의 자음·모음으로 바꿨다)는 사실을 아는 학생은 한 명도 없었다. ‘그냥 그렇게 부르는 줄 알았어요’, ‘귀여워서 그렇게 부르는 줄 알았어요’하는 대답만 들었다. 마찬가지로 명곡을 모양이 비슷한 ‘띵곡’이라 쓰는 것도, 대머리를 머머리라 자막에 넣는 것도 매우 불편하다. ‘머선129’나 ‘킹받네’라는 희한한 말도 있다. ‘뉴비’나 ‘잼민이’와 같은 말도 마찬가지다. ‘인싸’나 ‘아싸’라는 말도 어느샌가 모두 익숙하게 쓴다. 방송의 힘이다.
이런 말들을 공영방송에 등장시키는 사람은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일까. 그냥 유행하는 말이니 써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걸까. 방송계의 관행을 깨부수는 신선한 시도나 과감한 도전을 하고 싶은 걸까. 아쉽게도 이건 괜찮은 일도 아니고 신선한 시도도 아니다. 오히려 우리 말을 오염시키는 일이다.
불편함을 넘어서 반드시 고쳐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은 말도 있다. 가장 먼저 ‘텐션’이다. 이 말은 본래 영어 Tension이다. 뜻은 긴장, 불안, 팽팽함 등이다. 그런데 요즘 방송에서는 이 말을 마치 ‘열정’이나 ‘최선을 다하는 태도’와 같은 뜻으로 쓴다. 툭하면 텐션을 높이거나 끌어올리라고 한다. 긴장이나 불안을 높여서 어쩌자는 것인가. 완전히 잘못 쓰고 있다. 덩달아 우리 반 학생들도 그랬다.
다음으로 ‘도어스테핑’이다. 이 말도 본래 영어다. 문을 뜻하는 door와 걸음을 뜻하는 step을 더하고, 현재 진행중이라는 ~ing를 붙인 말이다. 도어스테핑은 문을 닫고 들어가려는 사람과 그 문 안으로 발을 집어넣고 집요하게 취재하는 방식을 나타내는 용어다. 해외에서는 긍정의 뜻보다는 부정의 뜻으로 더 많이 쓴다. 그런데 이 말이 언제부턴가 소통의 대명사가 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언론에서 소통의 대명사로 만들었다. 본래 뜻이나 쓰임과 전혀 다른 용어를 온 나라에 퍼뜨리는 셈이다. 방송의 힘이다.
‘디테일’도 있다. 이 말을 참 여러 군데에 다양한 용도로 쓴다. 본디 미술작품의 어느 한 부분을 뜻하던 용어는 어느새 모든 분야로 진출했다. 디테일을 놓치지 마라, 디테일하게 작업해라, 경복궁의 디테일 등등. 작은 것 하나도 놓치지 마라, 꼼꼼하게(섬세하게) 작업해라, 경복궁의 숨은 세밀함(세심함) 정도면 충분하다.
4차 산업혁명 시대, 인공지능의 시대는 너무나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 자본주의 세상에서는 돈이 알파요 오메가다. 자본은 광고를 낳고 광고가 수익을 낳는다. 거기에 맞춰 방송계도 변화를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티비 방송은 인터넷 영상과는 달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막말과 욕설을 거침없이 내뱉는 인터넷 영상도 재밌을 때가 있다. 하지만 결코 익숙해지기는 어렵다. 그래서 가끔 출연자들이 말을 잘못해도 자막으로 친절하게 바로잡는 방송을 보면 반갑다. 거기에 담긴 뜻과 수고로움을 알기 때문이다.
김영하 작가는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소설 쓰기를 가르치면서 학생들에게 ‘짜증 난다’를 쓰지 못하게 했다고 말했다. ‘짜증 난다’는 다른 말을 잡아먹는다. 섭섭함이나 서운함, 울분과 분노, 억울함과 후회 등. 이런 말들을 두고 ‘짜증’ 하나만 쓰는 일은 개인의 언어에도 감정에도 좋지 않다. 언어는 사고력 발달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인이다. 학생들과 글쓰기를 함께하며 점점 좁아지는 언어의 폭과 얕아지는 생각의 깊이를 체감한다. 소통과 독서보다 카톡과 영상에 익숙한 학생들에게, 적어도 공영방송이라면 지금보다 조금만 더 바르고 고운 말을 써주면 얼마나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