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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욱 Nov 19. 2024

라떼 우리 학교는-1

국민학교 다니다 초등학교 졸업한 현직 초등교사가 말하는 학교 이야기

  2002년 대한민국이 월드컵 4강 진출 신화를 써 내려가기 약 4개월 전, 나는 교대에 들어갔다.

  2006년 독일월드컵을 4개월 앞두고 졸업, 전역 후 2009년 첫 발령을 받음. 당연히(?) 막내였고, 게다가 보기 드문 남자였기 때문에 나는 여러 분야에서 재능을 인정받아 곧바로 학교에서 '인재'로 불렸다. 그래서 생긴 이야기, 바로 공개수업이다.

  공개수업은 참관자에 따라 다르다. 교장-교감-장학사가 참관하는 수업, 학부모가 참관하는 수업, 동료 교사가 참관하는 수업이 있다. 내가 한 공개수업은 장학사가 참관하는 수업이었다. 학교에 꼭 1명은 해야 했기에. 게다가 주위에서 볼 때 내가 특히 수업을 잘했나 보다. 문제는 3가지가 있었다.

  하나, 공개수업은 수업만 하고 마치는 게 아니다. 수업 후 협의시간이 진짜임. 수업 도중 모은 원기옥을 협의회 시간에 수업자에게 던진다. 드래곤 볼 속 원기옥은 악의 기를 찾아가지만 이 원기옥은 악의 기를 응축해 선량한(?) 피해자를 찾아간다.

  둘, 당시 내 수업에 들어올 장학사가 해당 지역에서 뭐라 그래야 하나...... 아주 유명한 그 XXX?! (훗날 이 장학사는 전 교직원을 리어카 뒤에 이끌고 학교 안에 꽃을 심고 잡초를 뽑는 교장이 됨. 학교신문을 1주일마다 발행하기로 감행. 해당 업무 담당 교사는 교장실에 누가 올 때마다 내려가 사진을 찍고 기사를 작성, 금요일 아침만 되면 퇴근 전까지 기사 보내달라는 독촉을 하도 많이 해서 편집국장으로 불리게 된다.) 물론, 나는 그런 사실을 전혀 몰랐다.

  셋, 나는 내가 진짜로 수업을 잘하는 줄 알았다. 불 조절 안 해서 겉은 타고 속은 덜 익은 데다 간도 안 맞는 요리를 자신있게 들이미는 요리사 같다고나 할까? 탑건 1에서 톰형의 눈빛(자기 신념에 의심이 1%도 없는, 확신의 그 눈빛)을 보고 진짜 광기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는, 대체로 이런 녀석들이 위험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하나도 모르던 당시의 나는 나름 열심히 수업 준비를 했고(수학으로 기억함) 내가 생각하고 계획한 수업은 시작도 하기 전에 박살나기 시작한다. 공개수업 참관자는 당연히 수업 시작 전에 교실로 들어온다. 보통 교실을 한 번 둘러보거나 수업자와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교실 뒤편에 마련한 의자로 가서 앉는다. 호기심이 좀 많은 참관자는 학생한테 뭘 물어보기도 하고 농담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호기심 많은 참관자는 대부분 협의회에서 선한 원기옥을 발사, 수업자의 기를 살려준다. 하지만 당연히, 우리 지역 No.1 그분은 달랐다. 단언하건대 나는 지금까지 이런 참관자는 보지도 듣지도 못했다. 

  No.1 그분은 처음에 평범한 참관자 인양 교실을 둘러보고 학생 몇몇에게 무언가를 물어보았다. 그리고 수업을 시작하자마자, 나에게 질문을 했다. "왜 학생들 책상 서랍에 30cm 자가 없습니까?" 생각지도 못한 인물이 생전 처음 듣는 질문을 했지만 광기의 톰형과 같았던 나는 순수하게 대답했다. "오늘 수업에 자는 쓰지 않습니다." 그러자 일장연설을 늘어놓는 No1 그분. 그 말씀을 대략 옮기면 이렇다. 평소 학생들이 책상에 앉아 책을 읽거나 교과서를 볼 텐데, 이때 책과 눈동자 사이의 거리는 무릇 30cm가 되어야 한다. 헌데 자네 교실에는 그게 없으니 어찌 30cm를 맞출 수 있겠느냐? 이런 기본도 안 되어 있는......(이하 생략) 

그래서(혹은 덕분에) 어떻게 수업을 했는지 전혀 기억이 없다. 

  협의회에서는 새로운 원기옥이 날아왔다. 판서를 할 때 ㅂ을 쓰는 획순이 틀렸다는 것이다. 위에서 아래로 두 줄, 좌에서 우로 두 줄 순서대로 써야 하지만 무엄한 나는 2~4단계를 한 번에 해치운 것이었다(6을 좌우 반전한 그 모양으로). 이 획순 하나로 학생들의 국어교육과 기본생활습관부터 시작하여 잠재적 교육과정(덕분에 아직도 못 잊음)까지 등장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많은 기를 담은 원기옥이었다. 아마도 그분 눈에 내가 마인부우로 보였나 보다. 그래서 마인부우를 해치우기 위해 지구인 모두에게 부탁했다보다. (원기옥을 맞은 나는 협의회의 나머지 기억도 잃고 말았다. 아니면 나도 모르는 어느 날 외계인과 접촉, 맨 인 블랙의 뉴럴라이저를 맞았거나.)

  나처럼 공개수업 후 기억을 잃는 피해자가 계속해서 나오자, 언제부턴가 협의회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마녀사냥과 조리돌림의 화려한 협공은 사라지고 시사회 초대받은 동료 배우들의 카메라 앞 후기를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이게, 편승효과(밴드왜건)의 힘인가 싶을 정도로. 시사회 후기 모드로 협의회를 하는 사람이 생겨나고 그 뒤를 따르는 자가 하나 둘 늘어가자 순식간에 대세로 굳히기에 들어가 더 이상 악의 원기옥을 쏘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었다고 한다. 코로나 때문에 가장 최근에 한 공개수업(교감과 교수가 참관한)이 2016년인데 수업의 핵심을 학생에게 맡기는 모험을 감행. 정말 다행스럽게도 원하는 깨달음이 일어났고, 협의회에서도 좋은 말만 들었다.(참 행복한 기억이다.)

  사실 시사회 분위기 협의회가 더 힘들다. 인간이란 무릇 단점을 쉽게 잘 찾아내지만 장점은 상상력을 발휘해야 겨우 알아채는 존재가 아니던가. 그래도 우린 그런 협의회를 해야 한다. 그것이 쉬워서가 아니라 어렵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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