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하나의 투쟁이 끝나면 새로운 투쟁이 시작된다.

by 현장감수성

조선태형령과 식민지 근대화론

2025년에 이런 영화를 이런 감독이 내놓을 수 있다니. 하지만 지금 미국의 상황을 보면 이 영화는 정말 예고편에 불과했음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다. 실제 미국의 이민자 단속국(ICE)은 영장 없이 가택수색을 하는 등 무소불위의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 그리고 정말 말도 안 되는 비극이 2026년, 미국의 미네소타에서 벌어졌다. 심지어 이 죽음에 대해 책임을 지고 잘못을 사과하며 반성해도 모자랄 정부가 오히려 거짓과 가짜뉴스의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하고 있다. 100년 전 일제강점기 조선태형령과 식민지 근대화론이 떠오른다.


디카프리오의 출연작을 좋아한다. 길버트 그레이프, 타이타닉, 디파티드, 장고, 갱스 오브 뉴욕 등. 그중에서 내가 첫 손으로 꼽는 작품은 ‘블러드 다이아몬드’였다. PTA감독의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를 보기 전까지.

그린 에이커스, 베벌리 힐빌리스, 후터빌 정션

감독 이야기, 배우 이야기 모두 건너뛰고 작품과 현실만 이야기해 보자. 이 작품의 줄거리는 대략 다음과 같다. 이민자 단속국에 저항하는 (자칭) 혁명조직 프렌치 75 소속의 퍼피디아(테야나 테일러)와 팻(디카프리오)은 이민자 수용 시설을 급습해서 지휘관 록조(숀 펜)을 비롯한 병사를 가두고, 갇혀있던 수용자들을 해방시킨다. 둘은 딸 윌라(체이스 인피니티)를 낳고 조용히(?) 살지만, 퍼피디아에 집착하는 록조에게 협박당한 퍼피디아가 홀로 멕시코로 도망간다. 이후 팻은 프렌치 75로부터 벗어나 밥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윌라를 키우며 살아간다. 자신의 과거 때문에 언제 혹시 모를 일이 닥칠까 대비하면서. 한편 록조는 현대판 KKK단인 크리스마스 모험가 클럽에 가입 제안을 받는 영광스러운 순간, 유색인종과 성관계를 맺은 적이 있냐는 입단 검증을 받게 된다. 그래서 자기 인생의 오점을 증명할 유일한 증거인 윌라를 납치하고, 밥은 다시 팻으로 돌아가 과거 동료들의 도움을 받으며 하나뿐인 딸을 되찾으러 간다. 하지만 지난 16년간 술에 찌든 팻은 ‘암호’ 하나 기억 못 하는 수준이 되어버렸고, 결국 윌라는 스스로 도왔기에 하늘의 도움을 받아 탈출에 성공. 그 과정에서 부모님의 과거와 마주하며 스스로 활동가의 영역에 발을 내딛는다.


국가 단위 스탠퍼드 감옥실험

혹시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라는 책을 읽어보셨는지? 이 책에는 충격적인 심리 실험을 여럿 소개하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스탠퍼드 감옥 실험’이다. 평범한 대학생을 둘로 나눠 너는 재소자, 너는 교도관 역할을 맡겼더니 모두가 그 역할에 충실한 나머지 재소자는 교도관에게 대들고 소동을 일으키고 교도관들은 이들을 점점 엄격하게 통제하며 학대로 이어졌다는 그 실험. 40년 가까이 지난 2018년 실험의 참가자가 인터뷰를 통해 당시 실험은 거짓과 조작이었음을 밝혀 더 큰 충격을 주었다. 지금 미국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마치 국가 단위로 이 실험을 진행하는 건 아닐까 의심이 드는 수준이다.

자유란 무엇인가

이 영화의 마지막을 특히 좋아한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다크나이트> 이후 이렇게 심쿵(?)한 엔딩은 처음이다. 무사히(?) 탈출한 윌라는 무전으로 다른 지역의 시위와 도움이 필요하다는 소식에 아빠의 걱정과 만류에도 지체 없이 차를 타고 떠난다. 차가 출발하며 동시에 등장하는 검은 화면에 영화의 제목을 한 단어씩 박아 넣으며 팻의 투쟁은 끝났지만 동시에 윌라의 투쟁이 시작됨을 강렬히 알리며 영화는 끝이 난다. 영화에서 팻을 돕는 인물 중 윌라의 사부인 세르지오(베니치오 델 토르)는 이렇게 말한다. “You know what freedom is? No fear.” 과연 미국인들은 두려워하며 자유를 포기할 것인가? 아니면 자유를 위해 두려움에 맞서 싸울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