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느냐 참느냐 화장실 전쟁>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by 현장감수성


‘이 다큐, 대한민국 모든 중고등학교에서 보고 이야기 나눠야 마땅하다.’

교사를 하다보면 욕심나는 영상자료가 있다. ‘이 영화는 우리 반 아이들이랑 꼭 같이 보고 이야기를 나눠봐야지.’와 같은 욕심. 2025년 12월 17일 EBS다큐프라임 <싸느냐, 참느냐 화장실 전쟁>은 아주 큰 욕심을 동하게 만든 다큐였다.


이탈리아 전설의 골키퍼 잔루이지 부폰을 기억하는가? 그가 시합 중 배에 아주 강력한 신호를 느끼고 교체 후 급하게 화장실에 간 사건(?)도 많은 사람들이 아직 기억하고 있다. (스포츠 경기 중 발생하는 이런 돌발상황이 낳은 에피소드는 많다. 안타깝게도 화장실까지 도달하지 못한 이야기들까지......) 한문철 블랙박스에도 휴지를 들고 질주하는 운전자들이 종종 나오지 않던가? 이런 사례들을 볼 때마다 나는 동병상련을 느끼며 한없이 너그러워졌다.

나도 장건강에 예민하다. 장이 건강하지 못하기 때문. 과민성대장증후군까지는 아니더라도, 신호가 오면 오랜 시간 참지 못한다. 덕분에 행사나 이동 중에 낭패를 볼 뻔 한 적도 여러 번이다. 그런 나에게 초등학교 근무는 사실 쉽지 않았다. 수업 시간은 길고, 쉬는 시간은 짧으며, 교사인 내가 갈 수 있는 화장실은 멀기에. 하지만 웬걸. 나정도면 화장실 천국(화장실의 환경과 이용 가능성 둘 다에서 말이다.)에서 근무하는 것 일 줄이야.


어떤 화장실까지 보고 오셨어요?

내가 좋아하는 영화 중 ‘히든 피겨스’라는 영화가 있다. 주인공 중 한 명은 인종차별 때문에 화장실 한 번 가려면 1500미터를 왕복해야 한다. 상사는 직원이 자꾸 일 안하고 농땡이 친다고 혼낸다. 영화의 배경은 1960년대 미국. 60년이 지난 2025년 대한민국 일터는 어떨까?


하루 평균 700~1000호를 방문해야 하는 가스검침원, 계속 도로 위를 달려야 하는 배달원, 종착역에 가서 7분 안에 화장실에 다녀와야 하는 기관사, 작업현장 300m안에 화장실이 있기만 하면 되던 건설노동자(2023년 관련 기준 강화로 남성은 30명당 1개, 여성은 20명당 1개 기준 추가), 유독가스 누출로 사망사고가 발생하던 조선소 화장실을 이용해야 하는 노동자(특히 여성노동자).

참느냐 싸느냐 고민 속 밀려오는 자괴감

60년 전보다 전반적으로 많이 나아졌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겠으나, 덕분에(?) 아직도 이렇게 열악한 화장실 환경에 처한 노동자가 많다는 사실은 당사자 외엔 잘 모르는 것 같다. 화장실 이용은 인간이 통제하기 어려운 매우 기초적인 욕구 중 하나다. 그리고 호모 사피엔스는 수십만년의 역사 속에서 이를 목숨걸고 통제해본 적이 많지 않다. 그래서 현대를 살아가는 호모 사피엔스 중 참다가 여러 질병-변비나 방광염 등-에 걸리는 것이다. 거기에 더해 참아야 한다는 정신적 압박과 스트레스에 더불어 기본적 인권을 침해받으며 밀려오는 자괴감은 인간으로서 가지는 최소한의 존엄성마저 의심하게 만든다.

사실 놀랍게도 우리나라는 화장실 선진국이다. 경기도 수원에 가면 세계화장실협회 건물(변기가 아니다)이 있는 정도니까. 화장실 보급과 개선은 한 개인의 일이 아닌 공동체의 일이다. 인류가 전염병의 위협에서 벗어난 큰 이유 중 하나가 상하수도와 화장실에 있으니. 어느 직종이건, 어떤 성별이건 내가 일하는 일터에서 화징실을 편히 갈 수 없어 고통받고 좌절하는 일은 이제 없으면 좋겠다. 관련 법령이나 규정을 바꿔나가는 분들의 목소리에 작게나마 힘을 보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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