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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느 저자 Jan 09. 2024

[물결표] 두 번째, 김라면 : 차도로 뛰어든 노인

선생님, 흥미로운 일이 있었습니다.


저는 도무지 이해하지 못할 일이었죠. 아니, 대다수의 사람들이 저와 비슷한 반응을 보일 거라 확신합니다. 미쳤다고 이야기를 하거나 농담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문하겠죠.


사건이 일어난 것은, 7일 오후였습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평범하기 그지없는 사건을 마주했습니다. 무수한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평일 오후, 한 노인이 달려오는 차에 몸을 던졌습니다. 왕복 사차로의 넓지 않은 도로인 데다 횡단보도 근처였기에 다행히 노인은 목숨은 건졌습니다. 다만, 사람들의 비난을 피하기는 어려웠죠. 노망이 났나, 혼자 죽지 운전자는 무슨 죄냐. 노인은 며칠을 병원 신세를 져야만 했습니다. 경위를 묻는 경찰의 말에 입을 꾹 닫고 있다가, 겨우 한 마디를 했을 뿐입니다. ‘사마귀가,’라고.


선생님, 정말로 경탄스러운 이야기입니다.


평일 낮.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거리에 여느 때와 다름없이 노인은 앉아있었습니다. 차도와 인접한 가로수 아래, 눈을 반쯤 감은 듯이 뜬 채로 보도블록 타일의 선을 따라 시선을 두고 있었죠.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한 마리의 낙엽 같은 사마귀였습니다. 낡고 바랜 종이 같은 갈색의 사마귀요. 설핏 보면 보도블록과 구분이 되지 않을, 아주 연한 색감의 그것을, 노인은 한참이나 바라봤습니다. 동상이라고 생각될 만큼 한참을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는 그것과, 노인. 어쩌면 서로가 서로를 바라봤을지도 모릅니다. 수많은 걸음이 쌓이고 낙엽이 쌓이는 많은 순간 동안을.


선생님, 노인은 차도로 뛰어들었습니다. 사람들은 비명을 내뱉었고, 노인은 피를 흘렸습니다.


노인은 죄를 달게 받겠다고 말했습니다. 그의 앞에 놓인 병원비와 갖은 합의금, 비용들이 쌓여있지만 어떻게든 갚아 보이겠다고.


노인이 그 길바닥에 앉기 시작한 것은 은퇴 이후입니다. 반려가 곁을 떠나자 다시금 바깥을 걸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몸에 밴 시간에 맞춰 지하철을 타고 몸에 밴 거리를 걸으면 잠시 숨통이 트였다가, 어느새 피로도 높은 단어들을 몸 안에 품기 시작했습니다. 버려지기 위해 입 밖으로 나온 단어. 짜증과 분노, 피곤함으로 점철된 단어들. 직접 귀로 들은 것은 아닙니다. 어쩌면 노인이 만들어낸 허상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젊은 날의 그의 귀에, 혹은 지금의 시선에 닿는 피곤의 언어들. 그 단어들이 차츰 폐에 쌓여 숨을 몰아쉬게 만들고 그의 걸음을 멈춰 세우기에 이르렀습니다.


날아오는 사마귀에 놀라 차도로 ‘뛰어든’ 노인을 상상하셨다면 땡, 틀렸습니다.


매일 노인은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럼에도 노인은 같은 자리에서 멈춰 섰습니다. 회사와 지하철역의 중간 지점. 몇 번을 더 같은 자리에 멈춰 서고서야 노인은 주저앉았습니다. 붐비는 사람들의 걸음에 치이고 채이고 가시 박힌 단어를 기어코 귀를 듣고서야 일어섰습니다. 돌아가고 다음 날 같은 걸음을 반복했죠. 그 일대에서 노인은 유명했습니다. 늘 같은 나무께에 앉아 발에 차이는 불편한 사람. 출퇴근 시간, 가장 밀집도가 높은 지하철 일반 좌석에 앉는 사람. 수식어도 필요 없었죠. 어느새 한 마디로 정의되어 있었죠. 노숙자.


노인이 차도로 뛰어든 이유는,

사마귀를 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자리에서 노인은 사마귀를 만났습니다. 떨어지는 낙엽 사이에서, 사마귀를. 며칠이고 사마귀는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행여나 사마귀가 다칠까 봐, 지켜보았습니다. 누군가의 걸음에 밟힐지도 모르는, 어느 순간 꺼질지 알 수 없는 생명.

생각보다 사람들은 걸음을 잘 내디뎠고, 사마귀는 긴 기간 동안 그 자리에서 꼼짝없이 있었습니다. 노인의 시선도 움직일 필요가 없이 한 곳에 고정해 둘 수 있었죠. 그러기를 며칠, 사마귀는 걸음을 떼었습니다. 이제 날아드는 발걸음을 움직이지 않고서는 피할 수가 없어서, 분주히 걸음을 옮겼습니다. 노인 역시 시선을 움직였습니다. 언제 사그라들지 모르는 불꽃이나마 바라봐주는 것이 도리라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잠시 닿아있는 시선은 닿고 닳아 떨어졌다가 다시 닿았습니다. 그렇게 또, 며칠.


경찰에 사마귀를 보았느냐고 물었을 때, 여느 사람들이 뱉을 ‘당연한’ 반응이 돌아왔습니다.

사마귀요?


보통의 시골, 농노에서도 사마귀는 멀쩡하게 발견되지 않습니다. 간혹 가다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콘크리트 농노 위에 길을 잃고 얼어붙은, 밟힐 날을 기다리고만 있던 사마귀였죠. 한차례 몸을 꼿꼿이 세우고 있다가도, 한 순간만 지나가면 어느새 진득하게 달라붙어있거나, 혹은 그 잔해조차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망가져있으니까요.


노인이 바라본 것은 보도블록을 넘어 차도로 뛰어드는 사마귀였습니다. 그의 시선이 닿는 곳에서 벗어나, 어떤 도약을 하려고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노인은 그 순간 망설임 없이 몸을 날렸습니다. 주변을 바라볼 것도 없이, 귓전을 때리는 시끄러운 무게의 말에 상관없이. 그리고 그렇게 병원 신세를 지게 되었죠.


선생님, 저는 이 이야기가 정말 흥미롭습니다.

저는 사건 현장에서 사마귀를 발견했거든요. 바로 노인이 쓰러졌던 도로 위 그 자리에서.

이미 무수히 지나간 바퀴에 흔적을 알아보기 힘들어졌지만, 그건 사마귀였습니다. 노인은 자신이 사마귀를 구하기 위해 몸을 던졌다고 말했지만, 어느 누구도 믿지 않고 있습니다. 저 역시도.


선생님은 이 이야기를 어떻게 들으셨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답변을 듣고 싶네요.

답장 부탁드리며, 오늘은 이만 줄이겠습니다.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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