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호 네번째 주제 : free(자유주제)
아무개 : 여보세요? 와 너 한국와서 처음 전화거는 거 아니냐? 여행 어땠어?
하다 : 여행 ? 다시 가고 싶다. 나를 조금 더 알게 된 것 같아. 근데 나 최근에 진짜 소름 돋는 일 있었다 ? 학교 홈페이지에서 어학성적표를 업로드 하고 있었어. 근데 거기에 2018년도에 했던 성격유형검사지가 있는거야. 마치 옛날 일기장이라도 본 듯이 들뜬 마음에 읽어봤지. 마지막 부분에 이르렀을 때 쯤에 자조적인 미소가 나올 수 밖에 없었는데, 거기에 뭐가 있었냐면 “ 본인에게만 엄격한 잣대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라고 상담선생님의 코멘트가 적혀있었어.
최근에 시작한 어느저자 메일링 읽어봤어 ? 거기 두번째 글인 수족관의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나는 자기검열이 꽤 심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었어. 물론 여행 중에 처음 들었고, 그 이후에 신경쓰기 시작했지. 여행 전에는 몰랐던 녀석이라서 여행 중에 혹은 여행 시작 전에 생긴 녀석인가 싶었더니, 나는 꽤나 이 아이를 오래 붙들고 있었지 뭐야. 그거 보고 느낀건데 확실히 나는 내 여행에서 끊임없이 나를 발견했던 순간들로만 이뤄졌던 것 같아 .
하루하루 변화하는 내가 아니라,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유영하게 냅뒀던 나를 잠시나마 붙잡고 계속해서 따져 물은거지. 너 대체 뭐하는 사람이냐고. 그리고 새롭게 발견한 자신을 그저 알아보고, 인정하는 것까지가 내 여행이였던 것 같아. 변하거나 간직하는 것은 그 훗날의 일이지. 뭐 어쨌거나 나는 변하는 쪽을 택했기에, 여행을 통해서 성격이 변한 것은 맞지만 조금 더 세밀하게 들여다 보면 그 시작점에서 얼마 지나지 않은 채 계속 달려가고 있는 것 같아. 그니까 변했다가 아닌 변하고 있는 중인거지.
아직도 나는 누군가에게 화가 나거나, 알 수 없는 거리감을 느낄 때 눅눅하게 글로 담아내서 자기검열을 해. 이 과정에서 그치면 좋겠지만 그 후에 일을 저지르고 나서도 계속해서 그 과정을 반복하지. 괴롭긴 하지만 언젠가 이 또한 익숙해져서, 능숙하게 관리를 할 때가 온다는 것을 믿어. 그래서 나는 이러한 행위들로 인해 지칠 때면 그냥 누워서 내가 마치 저 사해바다에 둥둥 떠있는 상상을 해. 그러면서 머리 속의 잡념들이 머리에서 발 끝까지 서서히 퍼질 때까지 기다리는 거야.
아무개 : 변한 건 없었어 ?
하다 : 음 …. 아 !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건 전에 보지 못했던 ‘여유’가 미약하지만 정확하게 내면 속에서 흐르고 있는 것 같아.(물론 마르지 않도록 꽤나 관리하는 편이긴 해.) 예를 들면 파란불이 깜빡이는 신호에 섣불리 뛰지 않는다거나 버스시간에 늦을 것 같아도 그러려니 하는 요상한 심리가 생겼고, 심적으로 불안해도 “어차피 나중에는 별일 아닌 거 아는데 왜 이렇게 불안해하니 하다야 “ 라는 멘트도 생겼어. 그리고 무엇보다도 안좋게 마무리가 된 관계에 대해 쉽게 수긍할 수 있게 되었지
아무개 : 여행 중에 안좋게 마무리가 된 관계가 있어?
하다 :그럼~ 여행은 삶을 압축한 것과 같아서 수많은 인연들이 밀도 있게 오가는 것 같아. 물론 여행자들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워낙 사람을 좋아하는 나는 무수하게 많은 사람들을 만났어. 오죽하면 내 일기의 95%가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과 내 이야기야. 지금의 나는 여행 중에 만난 관계에 있어서 꽤나 스펙트럼이 넓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데, 이게 넓은 인맥이라는 뜻이 아니라. 아예 여행지의 친구로서 남아서 소식조차 모르는 사람들부터 지금 내 일상에 없어서는 안될만큼 침투한 친구들까지 있어. 물론 그 사이에는 끝이 안좋아서 우연히 만난다면 인사를 할 지 말지 고민을 할 것같은 친구들도 있어.
와 , 근데 그런 친구들도 종종 생각이 나더라. 근데 그렇다고 그 사람들을 만나지 말았어야 했는데, 라는 말은 안해. 아니 오히려 그러면 절대 안된다고 말해. 여행은 참 다채롭게도 그런 사람들을 만나고, 그것을 치유하는 과정에서 무척이나 다정한 사람들을 만났어. 나는 특히 그런 상황들 직후에 만난 사람들이 현재 내 삶에 깊숙하게 침투한 사람들이 되었지. 그랬기에 만약 그 사람들과 그런 끝맺음이 없었다면 내 사람들과 시작도 없었을거야. 그래서 그 말을 꺼낼 수 없어.
결국 모든 것은 필연적이였던 거야.
이럴 때면 지금 우리가 느끼는 행복은 과거의 슬픔에서 온 것이며 반대로 현재 슬픔은 과거의 행복에서 오기도 혹은 미래의 행복까지 이르게 해줄거라는 유치한 생각이 들어. 나는 이런 유치한 것들을 좋아해서 이 말을 통해 괜실히 소탈하게 웃지. 결국 현재 상황이 안좋더라도 이 상황이 지금까지 걸어왔던 행적들과 뭉쳐서 훗날 또 다른 기쁨을 불러주는 거잖아. 그니까 지금 비록 끝이 안좋은 인연이 있더라도 새로운 인연들을 만날 수 있음을 알기에 그냥 ‘떠난 인연’이 아닌 그저 내가 과거에 박아둔 인연이라고 말하면서 싹싹 미련을 덜어내는 거야.
아무개 : 헐 그럼 그 미련이 깔끔하게 덜어져?
하다 : 아니. 그니까 내가 지금 너한테 전화 걸었지. 아주 가끔 그 미련의 잔해가 남았을 때는 내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어서 탈탈 터는 거야. 그리고 그 이야기의 서두는 이렇게 시작하지.
이거 그냥 후일담인데, 진짜 그냥 말하는거야.
from.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