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호] 마지막주, OHMJ : 우주만큼

겨울호 마지막 주제 : 인터뷰

by 어느 저자

인터뷰라고 하기에도 조금 뭐하지만. 인터뷰를 핑계삼아 엄마와 대화 할 수 있어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사심만 채운 글이 아닐까 걱정되지만, 여러분들도 오늘 어머니의 자기소개를 들어보시면 어떨까요? 이미 자기소개를 듣지 않아도 되는 사이에 서로를 소개해보니 신선하고 재밌는 경험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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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자기소개부터 부탁드립니다!

1969년 3월 26일 전북 무주군 무주읍 서면부락에서 태어난 김평순입니다.
무주군에서 태어나 학창시절을 보내고, 직장생활과 결혼을 하고 두 아들을 낳고 두 아들의 교육을 위해 전주시에 자리를 잡고 아들들의 교육에 힘써왔으며
지금은 완주군 용진읍에서 친환경 무농약 농산물 재배를 하여 로컬푸드와 학교급식센터에 납품을 하는 일과
또, 완주군 화산면에 폐기물을 친환경적으로 처리하는 완주 한일 농장을 운영하여, 환경오염을 최소화하여 후손들에게 깨끗한 지구를 물려주기 위해 힘쓰는 CEO 김평순입니다.

뭐야 엄마 준비해왔어?

그럼 인터뷰한다는데 자기소개정도는 준비해야지 니가 무슨질문인지를 통 안 알려줬잖아.

폐기물을 친환경적으로 처리한다는게 무슨말씀인가요??

말하자면 슬러지지. 음식물 가공에서 발생하는 음식물찌꺼기나, 생활하수에서 나온 슬러지 같은 것을 묻어버리거나 막 화학적으로 처리하는게 아니라, 지렁이를 이용해서 친환경적으로 폐기물을 처리하고, 퇴비로 만들어서 자연을 지키는 거지.

엄마, 나는 엄마가 로컬푸드에 '친환경 무농약'(강조하심) 농산물을 재배해서 납품하기 시작하면서
민제 엄마, 우제 엄마가 아니라 당당히 엄마이름으로 불릴때가 좀 좋고 기분이 좋았는데 민제 엄마가 나쁜의미는 아니지만 엄마 스스로는 없는거잖아?
그때 엄마 기분은 어땠어?

이제 로컬푸드에서 내 이름을 찾았지. 이름이 조금 촌시럽긴 해도 시골스런 이름이라고 로컬푸드에 제일 적합한 이름이래 어른들이. 그리고 딱 기억에 남잖아 이름이. 요즘 개명들을 많이 하지만 난 내 이름을 사랑해.
내 이름을 찾았을때도 좋았지. 그렇지만 나는 민제엄마 우제엄마도 좋아. 자랑스런 우리 아들들이니까. 뭐 운전면허도 그렇고 자격증학원에서도 워드 공부할때도 그렇고 바리스타 자격증 때도 그렇고? 그런데서 가끔 내 이름이 불리니까 그래서 엄청 기쁘거나 그러진 않았지.

뭐야 나만 감회가 새로웠던거야?

아냐 좋긴 좋은데 나는 민제엄마, 우제엄마도 좋다는 의미야.

그럼 말 나온 김에 민제, 우제 엄마로써 두 아들에 대해 설명해 주세요

큰 아들 대들보 성민제는 우리집의 중심, 내 삶의 중심, 나를 지탱해주는 아들입니다. 말이 좀 이상한가? 아.. 뭐라고 해야해 그런거 있잖아 엄마 마음을 모르겠냐?
뭐라고 딱 말하기 힘든데 대들보 있잖아 우리 집 뿐만 아니라.. 작게는 우리 가정, 더 나아가 전북, 우리나라의 대들보가 될 거라 생각한다. 그런식으로 써

그런식으로 쓰는게 어딨어 그냥 옮겨적기만 하는거지. 그럼 우제는?

둘째 아들 내 사랑 우제는...

동생: 엄마 인터뷰에 내 사랑 우제는 좀..

그럼 우리집의 귀염둥이지. 엄마의 마음을 잘 이해해주고. 아 뭐라해야하나 암튼 딸이 없어 외로운 나의 마음을 이해해주고 암튼, 친구같은 아들.

동생 : 그게끝이야?

뭐라고 해야해 암튼 그런 아들이여 끝이여 뭐가 더 있어야 하나? 우제야 서운하냐?

동생 : 아니 사랑해

민제는 큰 묵직한, 듬직한 이 나라를 지탱할 수 있는 큰 바위같은 그런 존재, 믿어 의심치 않는


우제는?


인성이 대한민국에 최고 어디에 내놓아도 세계에서 제일 이라고 생각해 인성이(웃음)
말이 너무나 막 저기네 이해가 갔습니까?

요즘 엄마가 공부를 다시 시작했잖아. 공부를 시작하셨는데 감회가 어때?

음.. 학교 다니고 할때는 그냥 의무감에서 학생의 신분 그 본분을 다하려고 했기때문에
그렇게 열심히는 안했지만 지금은 하고싶어서 하니깐? 조금 아쉬운거는 이해력은 되는데 나이가 들어서 기억은 잘 안되는게 좀 아쉽네.
아침마다 가방메고 학원에 다니는게 그렇게 행복할 수 가 없었어.
그래서 아, 지금도 늦지 않았다. 앞으로 내가 공부를 할 수 있는것들을 찾아서 도전을 해보고 싶어. 이 6주간이 너무너무 행복했어. 만약에 이 기분으로 학생신분으로 돌아갔으면 전교 1등은 했을거야.
어떻게 시간이 갔는지.

음 그랬구나.

또 꼬박 아침 아홉시부터 오후 다섯시까지 여덟시간을 앉아있어보니까 아들들한테 공부해라 공부해라 했는데, 아들들의 고통, 얼마나 힘든지도 이해할 수 있었고, 우리 아들들 참 공부하느라 애쓴다 그런생각도 들었지. 또 이번에 자격증을 따고 나면 멈추지않고 다른 공부도 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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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과거로 돌아가면 뭘할지 항상 생각하는 편인데 엄마는 언제로 돌아가서 뭘 하고 싶어?
나는 중학교 쯤으로 돌아가서 비트코인 살거야.

에이 너는 그런 소리좀 하지마 좀.

(웃음) 알겠어 그럼 엄마는?

나는 20대로 돌아가서 멈췄던 꿈있잖아 그걸 끝까지 도전할거야
직장생활할때 꿈을 위해서 도전을 하다가 말았어 시험성적 공개가 창피해서.
두 번의 도전 끝에 멈췄는데 거기에 굴하지 않고 열심히 해서 이루고 싶어
그때당시 엄마는 여성경찰관이 생길때라서 엄마가했으면 1호야 1호

뭐야, 나는 엄마랑 아빠가 경찰서에서 일하다 만났다길래 엄마도 경찰인줄 알았는데? 그러면 엄마는 경찰서에서 뭘 한거야?

학교로 말하자면 행정실처럼 업무에 도움을 주는 일을 하는거지. 이해하기 쉽게 말하자면.
지금으로 말하는 기능직 공무원이야 꿈이 여성 경찰관이라 그것부터 시작한거지.
그 당시에는 창피해서 그만뒀지만, 또 배우자를 통해서 꿈을 이뤘다고 볼 수 있지. 이해갔어?

그 당시에는 어린나이에 시험성적을 공개하니까 창피하잖아. 그래서 그만 뒀어 근데 현재 삶에 만족하니까 뭐.


그럼 그때가 엄마한테 가장 생생한 시절이겠네?

그건 또 아니야. 나는 언제가 제일 저기하냐면 3총사 있잖아 엄마 친구.

길자이모, 남숙이모?

이제 길자는 대전으로 직장생활을 갔지만 남숙이모랑은 여름 휴가를 맞춰서 동,서,남해 돌아다녔지
부산도 가고 울산도가고, 지금도 같은 고향에서 태어나서 50년넘게 한번도 싸운적없는 최고의 베프인 남숙이모랑 직장생활했던 20대에 1년에 한번씩 간게 제일 기억에 남지.
설악산도 갔었고 동해안쪽이 참 좋았어 버스를 타고. 꿈에대한 도전도 하고 여행도 했고 경제적으로 내가 벌어서 할 수 있었던 때.
면허증, 워드자격증, 꽃꽂이 이런것도 많이 따러다니고 한 7-8년 동안을 허송세월 없이 잘 보냈던 것 같아 여행, 자기개발.
그때는 뭐 남친들도 없었고 말야.. (웃음) 나만 생각하면서 즐기던 때가 제일 기억에 남네.

나도 여행때가 생생한데, 엄마도 여행이 제일 기억에 남네?
아 내 친구가 여행 떠날때 친구 어머니가 하셨던 생각을 들은적 있는데 엄마한테도 물어보고 싶더라구. 엄마는 나 여행 떠난다고 집나갔을때 어땠어?

지 하고싶은 것만 한다 생각했지. 해도해도 너무한다고.

뭐야 엄마 (웃음) 그게 끝이야? 섭섭하네.

뭐 니가 알아서 잘하겠지 하는 믿음도 있었겠지? 니가 뭐 말린다고 될 놈도 아니고. 어디가서나 잘 할 것도 알고.

그럼 이번엔 나와의 추억중에 가장 생생한 기억은?

지리산! 지리산 올라갔던거

나 초등학교 3학년때?

아니 더 어렸지. 우제가 유치원때여 엄마랑 아빠랑, 민제, 우제, 재준이 다섯명이서 12시간 산행을 했던것.
근데 니네가 끝까지 올라갔잖아 정상까지. 그게 가장 기억에 남지.
아가씨때 직장 생활할때는 실패를 많이 했잖아 꿈부터 해서. 근데 그건 아침 여섯시반부터 올라가서 끝까지 해냈거든 모두 같이.
여름에. 근데 실패없이 낙오자 없이 다 해냈잖아 비록 갔다와서 쓰러졌지만.
온가족이 다같이 성공했잖아 뭐, 아빠 승진했을때는 아버지 혼자 한일이고, 니들이 대학교 합격했을때는 니들의 혼자 이뤄낸 기쁨이지만 그때는 다 같이 해냈거든.

그때는 니들이 뭐 속 썩일 일도 없고. 그때는 텐트들고 너희들 경험시켜준다고 여러군데 다녔잖아. 물론 승진이나 합격도 기뻤지만.
그때는 또 젊었고 그때는 한 서른 여섯이나 됐겠네.
혼자씩 해서 이룬것보다 온가족이 다같이 성공한게 제일 기억에 남았지. 너 여덟살때.
올라갈때 그 어른들이 애들이 어떻게 이렇게 잘 올라가냐고 응원과 박수와 막 환호 막 응? 부러워 했던거 초등학교 유치원 생이 엄마아빠랑 같이 올라간다고 부러워 했던 것도 한 몫 했을 수 있지.

막 엄마아빠가 어른들한테 인사하라고 했잖아.
그래 어른들한테 인사도 잘해서 귤도 받고. 또 아빠가 곰나온다고 막 장난쳤잖아.
그래 나한테 그랬잖아.
동생 : 곰나온다고 빨리 안올라가면 죽는다고(웃음)
아녀 진짜 지리산 곰 살아
알지 근데 아빠가 막 곰풀어놨다고 그랬잖아.


그러면.. 마지막 질문인데.. 음…저를 얼만큼 사랑하시나요?
우주만큼.
그게끝이야?
사랑하는 마음이 계속 커지고 있다? 그럼 계속 커지고 있다. 한결같지.
오.. 음 알겠어 인터뷰해줘서 고마워 엄마.
나도 고마워


<번외>

엄마, 이 글을 받아보시는 구독자분들 대부분 사회 초년생이거나, 학생이 많으신 것 같더라구 인생 선배로써 엄마가 해줄말은 없어?

살다보면, 내가 아닌 남으로 살아가야하는 순간이 참 많아요. 회사에서는 동료와 상사눈치보며 회사를 위해, 가정을 꾸린후엔 부모노릇, 자식노릇 등등 하지만 제가 여태껏 살아보니 내 자신을 사랑하는게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구독하시는 분들 항상 자신을 돌보면서, 때로는 내 중심으로 날 사랑하며 사세요. 그러면 후회하는 일이 적을 것 같습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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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지아는 엄마의 지난 나날들을 회고케 하리라

사랑을 찾음에 어머니를 생각한 일은 몇 없을 것이다.

가지지 못한것만을 사랑하는 삶
이미 가진 절대적인 어머니의 사랑을
우리는 사랑하지 못할 것이다.

평생 사랑을 찾아 헤메었지만
가진 사랑에는 인색 했으리라


엄마 / OHM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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