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호] 마지막주, 은희 : She is

겨울호 마지막 주제 : 인터뷰

by 어느 저자

바르셀로나 한인 민박에서 스텝으로 일했을 때였다. 다음 체크인까지 시간도 많이 남았고, 할 일도 없어서 책장에 자리 잡혀있던 책 하나를 꺼내 읽었다. 신경숙 작가님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 였다. 책을 읽다 중간에 한참을 멈춰 섰던 부분이 있었다.

그런데 우리까지도 어떻게 엄마를 처음부터 엄마인 사람으로 여기며 지냈을까. 내가 엄마로 살면서도 이렇게 내 꿈이 많은데 내가 이렇게 나의 어린 시절을, 나의 소녀 시절을, 나의 처녀 시절을 하나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는데 왜 엄마는 처음부터 엄마인 것으로만 알고 있었을까. 엄마는 꿈을 펼쳐볼 기회도 없고 시대가 엄마 손에 쥐여준 가난하고 슬프고 혼자서 모든 것과 맞서고, 그리고 꼭 이겨나갈밖에 다른 길이 없는 아주 나쁜 패를 들고서도 어떻게든 최선을 다해서 몸과 마음을 바친 일생이었는데, 난 어떻게 엄마의 꿈에 대해서는 아무런 생각도 해본 적이 없었을까.

- 신경숙 <엄마를 부탁해> 중에서

나에게 엄마는 안타까운 사람이었다. 엄마가 나를 낳았던 나이를 지나, 동생이 태어났던 나이를 지나, 이제는 언니의 초등학교 입학을 지켜볼 엄마의 나이가 되고 그 안타까움은 깊이를 더해갈 뿐이었다. 세상 곳곳 여행을 다니던 그때에도 제일 생각이 많이 났던 건 집 안 컴퓨터 책상에 앉아있는 엄마의 뒷모습이었다. 누구보다도 현명하고 아름다운 사람이지만, 한 번도 한없이 날아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서. 자신의 상처만 생각하던 이기적인 딸은 혼자 힘껏 날아올라 버려서, 그런 딸을 엄마는 여전히 좁디좁은 네모상자 안에서 바라만 보고 있을 뿐이라서. 수도 없이 다짐했던 것이 있었다.

여행이 끝나면 엄마에게 달려가야지. 게임뿐 아니라 세상에는 이리 재미있는 게 넘쳐난다는 걸 알려줘야지. 둘도 없는 친구가 되어야지. 하루하루 살아갈 의미를 만들어줘야지. 엄마에게 엄마도 이리 힘껏 날아다닐 수 있다는 걸 알려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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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음기도 켰고, 그럼 이제 시작해보겠습니다.

Q. 저와의 추억 중 가장 생각나는 추억은 무엇일까요?

어렸을 때도 상관없고, 완전 아기였을 때도 상관없고

: 그럼 뭐, 태어났을 때가 아닐까?

태어났을 때 어땠는데?

: 흠, 언니를 낳고 6개월도 안 돼서 너를 가진 거잖아. 엄마 몸이 정상적인 몸은 아니었어. 임신기간에도 힘들었고, 너를 낳자마자 바로 기절을 했거든. 기절하자마자 깨어나서 너를 봤는데 머리가 새까만 거야. 진짜 머리가 이따만큼 길었다니까? 귀엽기는 대게 귀여웠는데 오밀조밀하게 생겼었어 네가. 근데 머리가...(웃음) 얘가 뱃속에서 머리만 자랐나? 싶었다니까.

하하, 맞아 그래서 내가 어렸을 때 앨범을 보는데 언니와 동생 앨범에는 태아 사진이 있는데, 그 자리에 나는 머리카락이 있는 거야. 그때 그 어린애가 나는 어디 다리 밑에서 주워왔구나 하고 얼마나 슬퍼했는데 말이야.

: 그 머리가 태어나고 거의 바로 자른 머리야. 보는 사람마다 머리 보고 “어휴 머리가...” 이랬다니까.

그래서 내가 어디 목욕탕에 가도 아주머니들의 부러움의 대상이었잖아. “어머~ 머리숱 정말 많다~” 이러면서 말이야. 하하, 아무튼 두 번째 질문으로 넘어가겠습니다.


Q. SNS로 저의 여행을 지켜보았을 텐데, 그중에서 제일 가보고 싶었던 곳이 있었어?

: 사진만 보고서, 어딘지는 모르겠는데 호수 같은 데서? 폭포에서 사진 찍었나?

폭포? 동영상도 찍었던 곳인가? 폭포 쫙 펼쳐진 곳 있었는데.

: 아 거기도 예뻤지. 거기는 어디야?

거긴 이구아수 폭포라고 브라질에 있던 곳이었지.

: 맞아 맞아. 거기가 아니라 다른데도 다 예뻤는데, 근데 엄마는 산은 자신은 없을 거 같더라.

히말라야? 히말라야 힘들지. 근데 히말라야를 올라가기 전 포카라라는 곳에서 머무는데, 거기가 정말 좋다. 큰 호수가 있는데 밤에 그 호수를 따라 걸으면 옆쪽에는 반딧불이들이 날아다니고, 다른 옆쪽에는 식당들이 있는데 거기서 대부분 라이브가 나와. 매일 밤 식당에서 들려오는 노래 들으며 산책하면 정말 좋아. 나중에 코로나가 끝나면 한번 도전해보죠!


Q. 여행하니까 궁금했는데, 내가 여행을 했던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을 했어?

: 여행이야 좋게 생각했는데, 그런 거야. 부모들의 잘못된 선입견이긴 한데 대리만족이었어. 엄마는 아무것도 못 해봤잖아. 외국을 나가본 것도 아니고. 엄마 같은 경우는 사회생활을 많이 안 해보고 사람들도 많이 안 만나봐서, 그러다 보니 가끔 가다 엄마 생각이 정말 짧다는 생각을 하곤 해. 그래서 여러 사람을 만나보고 여행하던 네가 좋았어. 근데 너무 오래 있긴 했었지. (웃음) 나중엔 걱정되기 시작하더라. 한 6개월 정도 갔다가 중간에 들어오고 그러면 모르겠는데..

맞아, 나도 이제 그렇게 오래는 못 있겠더라. 엄마 말처럼 6개월 정도까지는 괜찮을 거 같은데 그 이상은... 어후. 그럼 다시 원래 질문으로 넘어가서,


Q. 만약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언제로 되돌아가고 싶어?

: 글쎄, 뒤늦은 후회야. 바보같이 뒤늦은 후회인데, 학교 다닐 때 엄마가 배다른 형제랑 같은 학교에 다녔잖아. 하필 같은 학년이었지. 그걸 핑계 삼아 많이 방황했던 거 같아. 다시 돌아간다 해도 잘 살 자신은 없는데 그래도 돌아간다면 괜찮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는 거지.

학창 시절로 돌아가면 조금은 더 엄마를...

: 그렇지, 엄마 자신을 생각하며 살았겠지. 아유 별것도 아니었던 건데 말이야.

에이, 그래도 그때에는 별것 아닌 게 아니었지. 그때의 엄마에게는 가장 중요하고 슬펐던 문제였을 테니까.

: 네 이모가 정말 고생했지. 엄마 때문에 학교 선생님도 만나고 그랬었지.

이모한테 잘해야겠네. 이모가 다육식물 분양을 해줬으니, 조만간 예쁜 식물들 잘 키워서 분양을 보내야겠군요. (웃음) 그럼 다음은,


Q. 어렸을 때, 엄마의 꿈은 뭐였어?

: 어렸을 때, 시골에서는 다들 꿈들은 딱히... 비슷했어. 다들 선생님, 유치원 교사 이런 거. 엄마는 유치원 교사가 되고 싶었어. 유치원을 안 나와서 부러웠던 거 같아. 근데 유치원 교사였다가 선생님이었다가, 어떨 땐 도서관 사서가 되고 싶었던 거 같아. 아, 그러고 보니 피아노 선생님이 정말 예뻤어. 시골에 있을 만한 사람이 아니라 정말 예쁜 선생님이었거든. 그 선생님 때문에 음악 선생님도 되고 싶었던 거 같기도 해.

아, 근데 우리 때도 그랬던 거 같아. 지금 생각해보면 어렸을 때는 엄마아빠를 제외하고 볼 수 있는 어른이 한정되어 있었잖아. 그중에서 선생님은 가장 멋졌던 사람이었던 거 같아. 그래서 나도 어렸을 때는 장래 희망이 선생님이었고 말이야. 엄마 때나 나 때나, 만약에 조금 더 시야가 넓었더라면 조금은 달랐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말이야. 지금은 어떨까?

: 지금은 유튜버지.

맞아 맞아 유튜버지 하하.


Q. 그러면, 지금은 꿈이 뭐야?

: 지금?

꿈도 좋고, 다르게 말하면 앞으로 남은 생을 어떻게 살고 싶다, 이런 거?

:흠... 엄마는 무기력증이 있는 거 같아. 예전에 많이 돌아다닌다면 돌아다녔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되면 부부 싸움을 했어야 했으니까. 그게 싫었던 거 같아. 할 수 있는 게 컴퓨터뿐이었고 그러다 보니 무기력증에 항상 노출되어 있는 기분이랄까. 쉽게 고쳐지지도 않고. 그냥 이제는... 뭐라 해야 할까. 아프지 말고 죽기? (웃음) 꿈이라기보다 소원이지. 모르겠다. 여유가 된다면 가까운데 여행도 다니고 싶긴 한데, 그것도 딱히 뭐... 잘 모르겠어.

왜 여유가 안 되나요? 우리에겐 돈 잘 버는 언니가 있잖습니까! (웃음) 나름 여행 경력이 쌓인 작은 딸도 있겠다 이곳저곳 많이 놀러 다니자. 바닷가 있는 곳으로 가서 스쿠버다이빙도 해보고 말이야. 다음도 비슷한 질문 일 수 있는데


Q. 만약에 예전보다는 큰 제약이 없는 이 시대에 태어났다면, 어떻게 살았을 거 같아?

: 만약 이 시대에 태어났다면 난 스트리머가 되고 싶었을 거 같아. 엄마가 게임도 좋아하고, 스트리머들도 많이 접하다 보니 그냥 요즘 시대에 태어나서 스트리머 했다면 재미있기도 했겠다는 그런 생각을 가끔 하는 거지. 지금은 접었는데, 엄마가 좋아하는 스트리머가 한 명 있었어. 얼굴은 안 보여주고 목소리로만 방송을 했는데 목소리가 정말 예뻤거든. 나도 목소리 예쁜 사람으로 태어나서 목소리로만 하는 스트리머가 돼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지.

엄마 목소리도 나쁘지 않아.

: 그렇지, 엄마도 목소리 예쁘다는 소리 많이 듣긴 했었어. (웃음)


아하~ 네네 그렇군요. (웃음) 이번엔 저에 대한 질문입니다.



Q. 내가 이제 어떤 사람이 되었으면 하나요?

: 흠, 나는 딱히 너희들의 결혼이나 그런 거는 생각 안 해봤는데. 모든 부모의 꿈일 텐데, 결혼한다면 사람 인성도 좋아야 하고, 너희한테도 잘해야 하고, 돈도 잘 벌어야 하고. (웃음) 그런 걸 떠나서 사람이 모두 자신의 생을 만족할 수는 없을 거야. 엄마가 후회가 많아서 그런지, 나중에 너희들이 엄마 나이가 되었을 때 “아, 나 그래도 잘살고 있구나.” 그런 거 있잖아. 남들한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한테 만족하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어.

그게 쉽지가 않죠, 그래도 저도 그런 삶을 살고 싶습니다. 엄마도 아직 늦지 않았다고 생각해.

: 어후, 엄마 나이 이제 50이야.

엄마, 그거 알아? 이 100세 시대에서 엄마 이제 고작 반을 살았습니다. 나는 뭔가 항상 아쉬웠어. 나이가 들어가면서... 아쉬운 거지. 엄마가 살았던 시대와 내가 살았던 시대가 달랐다는 것만으로 엄마는 이 나이 때 자식들 키우며 고생했는데 나는 여행을 하며 돌아다녔다는 게. 그렇지, 시대라는 게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엄마는 그 시대도 살았지만 지금 이 순간 이 시대도 살고 있는 거잖아? 나도 나중에 돼서는 똑같을 거야. 나중에 엄마 나이가 돼서 현실에 뿌리내리고 자식들 다 키우고 나서 자식들이 “엄마 왜 집에만 있어! 나가 놀아야지” 하면 노는 방법도 모르는데! 이러면서 말이야. 그래도 욕심이지. 엄마가 앞으로라도 엄마의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는 거지. 그래서 여행 끝나면 엄마 데리고 이곳저곳 놀러 가려고 했는데, 이놈의 코로나가 아주 그냥...! (웃음) 자, 마지막 질문입니다.


Q. 저를 얼마만큼 사랑하시나요?

: 얼마만큼이라니 딱히 잣대를 댈 수가 없잖아, 자식들인데 말이야. 너희는 그냥... 엄마의 분신이잖아. 얼마만큼이라는 게 없는 거 같아. 그냥... 그냥 가슴이 아픈 거지. 너희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픈 거야. 가끔 그런 생각을 할 때는 있어. 한 명만 낳았으면 조금 더 풍족하게 키우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 풍족하게 키우지 못해서 미안한 거지. 너희는 그냥 너희들인 거야.

그래도 혼자였으면 외로웠을걸? (웃음) 어렸을 때는 언니랑도 동생이랑도 정말 많이 싸웠잖아. 그래도 지금 생각해보면 편해, 형제가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 하하, 아무튼 좋습니다. 김선미 님의 인생을 잠시 들여다볼 수 있어서 무척이나 좋았고요 이렇게 인터뷰를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 근데 로또 되면 뭐 하고 싶어?

: 로또 되면 건물부터 하나 사야지.

하하, 나랑 똑같네. 역시 건물을 사야지. 그리고 돈이 남는다면 난 마당 있는 예쁜 주택 하나 지어서 살고 싶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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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김선미 님에게 이 글을 전합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from.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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