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호] 마지막주, 하랑소년 : 아빠가 걸어온 글

겨울호 마지막 주제 : 인터뷰

by 어느 저자

나는 엄마와 아빠의 대학 시절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한다. 그때의 엄마와 그때의 아빠. 마치 어렸을 적 할머니께 옛날이야기를 해달라며 조르듯, 나는 몇 번이고 엄마에게 물어보곤 했다. 엄마는 아빠의 첫인상이 참 특이했다고 하셨다. 키가 아주 크고 말랐으며 구릿빛 피부에 꼬불꼬불 거리는 머리카락을 가진, 잠자리 안경을 쓴 그때의 아빠. 함께 이야기하다 보니 아빠는 참 좋은 사람이었으며, 똑똑했고, 편안했다고 회상했다. 둘은 문학에 관한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사랑에 빠졌다고 했다. 정호승의 작품이 어떻고, 이문열의 작품이 어떻고. 엄마는 아빠의 편지에 적혀있던 곽재구 시인의 ‘사평역에서’가 그렇게나 기억에 남았다고 한다.


언니마저 문학을 좋아하여, 공학을 하고 싶던 나는 가끔 돌연변이처럼 여겨지곤 했다. 그 글에 대한 어떤 작은 불꽃이 대학에 와서야 발견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참 신기한 일이다. ‘어느저자’를 시작하기 전에도 아빠에게 달려가 조언을 구했었다. 그때 나는 아빠의 소년 때의 얼굴을 엿보았다. 두 눈이 반짝거리고, 꿈을 꾸는 색깔이 입꼬리를 비집고 나왔으며, 목소리가 한껏 들떠있었다. 그래서 문득 궁금했다. 한 시즌이 끝나고 있는 지금, 아빠의 인생에서 글은 무엇인지, 아빠와 같이 젊은 날에 작게 기록을 하는 나는 어떤지 묻고 싶었다. 아버지 인생의 이야기가 조금 긴 듯하지만, 한 사람의 전부였던 글과 그의 인생을 같이 흘러가며 즐겨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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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글을 쓴다고 말씀드렸었잖아요. 사실 글을 쓰게 된 거는 아빠가 과거에 글을 쓰셨다는 사실에서 영향을 받았고, 또 엄마 아빠가 글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서로 사랑하게 됐다는 얘기도 들었어요.

Q1. 아빠의 인생에 글이 들어와서 어떻게 흘러갔는지 알려주세요.


#1 아빠의 고등학교 시절


고등학교 1학년 때 문예반이라고 하는 동아리 활동을 했어. ‘저기 가면 책을 좀 많이 볼 수 있겠네’, 하는 생각이었지. 그런데 문예반에서 활동이 뭐였느냐 하면, 가을에 한 번씩 학교 신문을 만들고, 시화전을 열고, 겨울에는 교지 편집을 해야 했어. 그러니까 매일 수업이 끝나면 문예부실에 가서 활동을 했어. 학교 밖에선 취재도 해야 하고 간간이 대학에서 여는 백일장에 나가기도 하고.


대학 백일장이요?


응. 아빠는 인하대 백일장에서 장원을 받았고, 성균관대에서는 2등을 했지. 전국에서 모여든 고등학생들에게 그 자리에서 주제 발표를 하면, 학생마다 시, 산문, 시조 등 다양한 글을 냈어. 그렇게 정해진 시간에 제출하면 그 자리에서 심사해서 당일에 뽑아 상을 주는 거야.


우와….


아빠가 그렇게 글을 쓰겠다고 하는 친구들 중에서는 꽤 이름을 날렸었지. 그렇게 문예부 활동을 하면서 법학이나 경제학을 전공하겠다는 진로가 다른 방향으로 점점 바뀌었던 거야.


그러면 아빠가 맨 처음엔 그냥 책 읽으러 갔는데 점점 그걸 열심히 하면서 진로가 글을 쓰겠다는 쪽으로 바뀐 거네요.


그렇지. 그렇게 고등학교 3학년이 되고 어느 과를 가야 할까 고민을 하게 됐어. 아빠의 작은 아빠, 그러니까 너에게 작은할아버지가 유명한 소설가셨는데 용기를 내서 작은할아버지에게 딱 찾아갔지.


"저도 작은아버지처럼 글을 쓰고 싶습니다."


나는 혼이 날 줄 알았어. 네가 무슨 글을 쓰겠다는 거야, 네가 뭐 얼마나 글을 쓴다고, 이렇게 말씀하실 줄 알았는데 되게 좋아하시는 거야! 창의적인 일을 한다는 것이 대단히 좋은 거다, 라고 말을 하셨어. 또 아빠는 거기에 자신이 있었고. 그랬는데,


"아, 그래서 저는 국문과를 가려고 합니다." 했더니 "국문과 가지마."

"그러면 문예창작과를 가야 하나요?" 했더니 "거기도 아니야." 하시는 거야.


왜요?


할아버지께서 물어보셨어.


"너는 글을 쓰고 싶은 거야, 학문을 하고 싶은 거야?"


"글을 쓰고 싶습니다."


"그러면 국문과나 문창과 보다는 어문학을 하는 게 도움이 될 거다. 네가 정 글을 써야겠다 하면, 문예사조론 이라든지 문예창작론 같은 것들은 청강해도 돼. 오히려 대문호의 글을 직접 읽을 수 있도록 다른 어학을 하는 게 네 문학의 깊이를 더 해줄 수 있을 거다.”


할아버지의 문학청년 시절에는 불문학이나 러시아문학 같은 대문호의 글들이 번역해서 들어와 다시 우리말로 번역하다 보니 많은 부분이 잘못 번역이 되거나 왜곡되는 경우가 많았다는 거야. 할아버지 말씀은 문학을 넓고 깊게 이해하려면 해외 문학을 많이 봐야 한다, 정확히 그 작가의 의도라던가 그런 부분을 정확하게 느끼려면 그 나라의 언어를 해야 한다고 하신 거야. 그래서 중문과에 갔지.


저는 아빠가 진학할 때부터 현실과 고민을 하는 중에 어학을 택한 줄 알았어요. 오히려 꿈을 위한 발판이었다고 볼 수 있겠네요.


그런 셈이지.


#2 아빠의 대학교 시절과 연애


그렇게 대학교에 가서 `이제 앞으로 글을 써야지, 그래서 이 암울하고 억눌린 세상을 바꿔야지.’ 생각했어. 아빠 대학생 시절은 군사독재 정권이었거든. 수업하는 날보다 데모하는 날이 더 많았을 시절이지. 1, 2학년을 보내고 군대를 다녀왔던 그때도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은 변하지 않았어. 작은할아버지가 말씀하신 국문과 수업을 듣기 위해 국문과 수강신청을 하려고 줄을 서 있었어.


그때는 수강신청을 줄을 서서 했어요?


응. 학과별로 줄을 서서 신청을 했어. 그래서 국문과 앞에 서 있었어. 국문과 3~4학년 전공과목인 현대시인론을 신청하려고 서 있었지. 그런데 그 줄에 아빠 친구가 어떤 여학생과 같이 있었고, 그 친구가 나랑 인사를 시켜줬는데 그 사람이 나중에 너의 엄마가 된 거지.


오~ 낭만적이야!


(웃음) 엄마는 영어교육과잖아. 현대시인론을 들으러 국문과에서 수강신청 하는 타과 사람들이 얼마나 있겠어? 거의 없었지. 그러니 각자 다른 학과에 있는 두 사람이 친해진 거지.


현대시인론에는 월북한 시인들과 잘 알려지지 않았던 시들이 많았어. 그런 문학사적인 차원에서 가려져 있었던 시인들을 강의하는 시간이었던 거야. 그런데 이 여드름투성이의 여인네가 너무너무 열심히 하는 거야! 반면 아빠는 남한의 시인들에 대해서 잘 알고 공부를 하고 있었거든. 자연스럽게 호기심이 발동하면서 관심을 두게 됐지. (웃음) 이후 엄마와 아빠는 남북 시인들의 작품을 비교하기도 하고 소설 같은 문학작품에 대해 의견을 나누면서 급속도로 친해지기 시작했어.


엄마는 왜 그렇게 열심히 했대요?


엄마는 원래 영어 선생님이 아니라 국어 선생님이 되고 싶었거든. 글을 좋아했고. 저기 책방에 잘 찾아보면 엄마가 쓴 습작 시집이 두어 권 있을걸~


정말요? 그렇구나. 그래서 결국 그런 글 얘기를 하면서 친해진 거네요.


그렇지. 커피숍보다는 막걸릿집에 앉아서 문학 토론을 많이 했는데 누군가의 소설을 이야기하고 시를 얘기하고, 격렬한 토론을 하기도 했어. 엄마한테 아빠가 쓴 소설을 보여주기도 하고 말이야. 아빠 역시 문학 토론에 갈증을 느끼고 있을 때였으니까. 그렇게 둘이 잘 지내게 되고, 서로 이야기가 잘 통하는 편안한 느낌을 처음 느꼈던 거지. `아, 이 사람과 결혼을 한다면 문학에 대해 얘기하며 살겠구나!` 하는 행복한 생각을 하다 보니 졸업을 할 때가 온 거야.


#3 아빠의 취업준비생 시절


원래 문학을 계속하고 싶었는데, 그 당시에 유명한 출판사에서 문학을 하는 사람들의 직업을 조사했어. 한국 문인협회에 등록이 되어있는 시인들 중 100%가 먹고 살기 위한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었고, 또 등단한 소설가 중 70%가 다른 직업이 있었어. 그런데 아빠는 등단도 못 하고, 여자친구도 생겼고, 하니 큰일이 난거지.


그때, 아빠가 활동하는 `문학동인`이라는 모임이 있었어. 다들 글을 쓰는 사람이었는데, 언젠가 그중 한 친구가 술에 취해서는, "형이 아무리 글을 잘 쓴다고 해도 고독을 감미롭게 할 수 있어?!" 라는 거야!


엥?


그게 나중에 알고 보니, 그때 당시 가나 초콜릿의 광고 문구였어.


‘고독마저도 감미롭다, 가나 초콜릿’


그런 걸 전문적으로 쓰는 사람이 있다는 거야. 그게 뭐냐, 물으니 카피라이터래. 아, 이런 게 있구나. 진짜 숨어서 글을 쓰는 사람들이 이런 사람들이구나. 광고회사에 다니면 글을 쓰면서 돈을 벌 수 있다니, 관심이 생겼지. 그렇게 아빠는 카피라이터를 하면서 광고 일을 하게 되었고, 지금은 마케팅을 하고 있지.



Q2. 그렇다면 아빠의 인생에서 글이란 무엇인가요?


음, 이런 것 같아. 그 `글`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것은 문학이잖아. 그 문학의 길을 가다가 응용 문학을 하게 된 거지. 그래, 세상과 타협을 한 거야. 상업문을 쓰게 된 거지. 그런데 그 글에는 내 이름이 붙어있지 않잖아. 광고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다른 사람의 의견이 반영되기도 하고 수정이 되기도 하고. 그러니 내 작품이 아닌 거지. 그래서 혼자 고민도 많이 했어. 새롭게 내가 이뤄내야 할, 내 얘기를 써야 할 이런 부분이라고 생각을 하는 거지. 아직 못 이룬 꿈! 그 이후로도 글을 쓰기 위한 많은 노력을 했어. 잡지에 콩트도 썼었고, 신문사에서는 아빠의 코너를 만들어서 쓰기도 했고. 어느 날 상황이 된다면 나의 이야기를 쓰겠지? 그날이 곧 올 거다.


또, 나의 글, 나의 작품이라는 것은 나의 자식이라고 할 수 있는 것 같아. 글을 쓰는 것도 산고의 고통이라고 얘기를 한단 말이야. 밤새워서 200자 원고지를 한 100장을 쓰면 해가 떠올라. 그럼 자. 그러고는 다시 일어나서 읽어보면 별로야. 그럼 또 좌악 찢어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써. 그렇게 탈고의 과정을 겪고 겪다 보면 어떤 한 작품이 되는 거야. 살이 붙여지고, 커지고, 완성되고. 그러니 어디 내놓을 때 내가 출산을 했다, 탄생을 지켜냈다는 느낌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아. 그럼 저희도 어떤 작품이네요. 그런 고통을 겪으면서 세포분열을 해서 커지고, 그렇게 태어나고. 그렇지. 너희도 탄생부터 작품이었지.


Q3. 저를 얼마나 사랑하시나요?


음…. 그래. 분신이야 분신. 부모는 자식이 장점을 닮아있을 때 기분이 참 좋고, 내 자식이구나, 하는 느낌이 있어. 단점을 닮았을 때는 참 슬프고 화도 나고. 내 분신이기 때문이지. 나 스스로가 자랑스러울 때도 있고 미울 때도 있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거야. 그러니 내 목숨이야. 어느 날 신이 "너의 딸을 살리기 위해서는 너의 목숨이 필요하다." 라고 했을 때 기꺼이 "네"라고 대답할 만큼.


오~ 감 동 ~! 그러게요,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걸 보니 제가 아빠를 닮았네요. 글을 쓴다고 한 지 벌써 두 달이 지났어요. 그때 이 글을 쓰는 모임을 만들었다고 하면서, 제 글을 아빠한테 보여주고 아빠가 글을 다 읽으실 때까지 얼굴을 붉히면서 내 방구석에 숨어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고는 어떻게 해야 좋은 글을 쓸 수 있는지 여쭤봤었죠.

Q4. 제가 글을 쓴다고 했을 때 아빠의 공통점을 보셨나요? 기분이 어떠셨어요?


음…. 아빠가 아빠의 작은 아버지께서 해주신 말씀이 이제 이해가 되는 것 같아. ‘창조적인 작업을 한다는 데 대해 기쁘고 응원한다’는 말. 거기에 덧붙이자면,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운다는 것은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인데, 스스로 그 일을 찾아 한다는 데에 대해 박수치고싶다. 사실 놀랍고 많이 기뻤지.


그래도, 조금 더 많이 읽고 써보면 좋겠어. 밤새워 글을 쓰고 괴로워하다 다시 쓰고, 매일매일 글을 읽으며 또다시 글을 만들고. 누군가에게 보여주면 여러 날카로운 말들에 상처를 받게 되어 또 다르게 괴롭기도 해. 그렇지만 그런 말들이 너와 너의 글을 성장하게 할 거야. 그땐 정말 제대로 글을 쓰게 되는 거지. 아빠가 그랬던 것처럼.


오~ 맞아요. 글을 쓰다 보니까 생각보다 그렇게 쉽지 않고 많은 사랑과 관심을 내 글에 쏟아야 한다는 걸 알았어요. 또 여러 피드백이 내 글에 대해 지적하면 마음은 아프지만 내가 내 글을 바라보는 게 마치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느낌이라 세심하게 노력해서 고치게 되더라고요.


아빠가 아주 꼼꼼하게 피드백해줄 테니, 아빠한테 보내봐. 하얀 백지를 빨간 표시로 가득하게 해 주지!


으악! 무섭고 부끄럽군! (웃음) 그러면 마지막 질문!

Q5. 저와의 추억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추억은 무엇인가요?


아빠가 떠올리는 가장 기억에 남는 추억은 작년에 네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임진각을 갔다 온 일. 자식이 세상에 태어나서 아빠를 기쁘게 하는 일은 여러 가지가 있는 것 같아. 예컨대 아빠를 알아보고 방긋방긋 웃는다거나 첫발을 떼며 아장아장 걷는다거나 유치원 재롱잔치, 초등학교에 들어가던 날, 자전거를 뒤에서 밀어주다 혼자 페달을 밟고 달리던 날, 중학교, 고등학교 신입생 때 교복을 입고 첫 등교하던 날, 대학 합격 통지를 받고 환호성을 치던 날. 이런 게 모두 감격스럽고 기쁜 추억들이야. 그러고 보니 모두 새로 시작하는 것에 대한 기쁨이었나 보다. 그 새로운 시작 중에는 네가 아빠를 조수석에 태우고 임진각까지 시속 120킬로를 달렸던 기억? 운전면허를 따고 처음 하는 운전이었는데 말이야. 아마 이건 엄마도 언니도 못 느꼈던 아빠만의 기억일걸. 아마도 네가 가장 신나게, 가장 빠른 속도로 달리던 날일 거고 그 역사적 순간을 함께했던 추억이 가장 기억에 남는 것 같네.


인터뷰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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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도 보지 못한 자연의 꼬불꼬불 머리에 키는 엄청 큰 까무잡잡 우리아빠. 나에게 아빠는 참 커다란 사람이다. 아빠가 앉아있는 곳 어디든 졸졸 쫓아가 그 옆에 두 다리를 모아 쪼그리고 앉아 이것저것 물으면 그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찬찬히 대답해주셨고, 나는 주억주억 고개를 끄덕였다. 만들기도, 청소도, 공부도 뚝딱뚝딱 잘하는 척척박사 아빠. 꼭 매일 아침 다리미를 잡고 당신의 셔츠를 다 다린 다음에 자식들의 교복셔츠를 다려주시던 아빠. 머리가 조금 큰 요즘에도 아빠 앞에 가면 10살 언저리의 아이가 되어 두 다리를 모아 아빠의 커다랗고 폭신한 배에 기대고 앉아 실없는 질문을 하곤 한다.


엄마와 반주를 걸치며 이런저런 수다를 떨다보면 아빠와의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엄마는 아빠가 이렇게 깊은 사람인지 몰랐어. 너희가 어떻게 하고 있는지는 엄마보다 훨씬 꼼꼼하게 보고 있더라고. 엄마가 한 수 앞을 보려고 해도 아빠는 두 수, 세 수 앞을 보는 것 같아. 매일 밤에 둘이 누워서 너희 이야기를 하다 보면 얼마나 놀라운지 몰라. 자기 고민을 하기도 바쁠 텐데, 그 생각이 어디에 다 들어가 있는지!


그 깊고 낮은 목소리에 무게가 실려있는 것인지, 아니면 커다란 배에 가득가득 들어가 있는지, 너무 힘을 주다 보니 아빠의 머리카락이 꼬불꼬불하게 오그라든 것일 지도 모른다. 확실한 것은, 나의 아버지는 내 생각보다 훨씬 더 큰 사람이었다.


그러나 아빠도 아주 작을 때가 있었고, 꿈을 먹으며 덩치가 커졌을 것이다. 아빠의 젊은 날이 있었고, 젊은 꿈이 있었으며, 젊은 사랑을 하였다. 책을 사랑했고, 글을 사랑했으며,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사랑했고, 여드름투성이의 문학을 좋아하는 아름다운 여성을 사랑했다. 지금까지도 당신의 꿈을 포기하고 절필한 적은 없었으며, 방향을 틀더라도 돌아가는 길을 자신의 마음에 되뇌이고 또 되뇌이었던 것이다. 내일은 나만의 글을 쓸 것이라고.


일단 지금은 사랑하는 그 여성과 함께 만든 그들만의 두 걸작품을 감상하기에 여념이 없는 듯하다.



이 글을 커다란 나의 아버지, 김영채 님께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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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하랑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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