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호] 마지막주, 시언 : 라이프 오브 장춘자

겨울호 마지막 주제 : 인터뷰

by 어느 저자

나의 기억의 시초를 되돌아보자면 늘 떠오르는 존재는 할머니였다. 엄마가 없는 나와 동생을 대신 품어 안았던 할머니는 우리가 살아온 삶 모든 곳에서 항상 존재했다. 마치 공기와 뿌리 깊은 나무와 물의 흐름처럼. 머리가 크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할머니가 당연한 존재가 아님을 알게 되었고, 언제 어디서부터 왔는지도 모르게 늘 곁에서 가족만 바라보는 할머니의 삶의 비밀을 파헤쳐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뷰를 하겠다고 하자 할머니는 그 전날부터 긴장이 된다고 하셨다.
“뭐 때매 할라고하노 할매를!” 하고 소리 지르면서도 가장 예쁜 옷을 꺼내 입고, 화장을 하는 할머니를 보면서 웃음이 나왔다. 모든 걸 가족을 위해서, 가족만을 우선순위로 두고 살아왔을 할머니지만 본인이 주인공이 되는 순간을 마냥 싫어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오로지 가족만을 위해 살았을 할머니의 ‘장춘자’로서의 인생은 어땠는지. 이 짧은 대화가 팔십여 년의 모든 인생을 대변할 순 없겠지만, 할머니의 인생을 되돌아볼 수 있는 작은 쉼터가 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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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언: 인터뷰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춘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생각을 좀 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어요.

시언: 질문도 모르는데?

춘자: 질문도 모르니까. 준비가 필요한 데 갑자기 인터뷰를 한다 하니 한 번도 안 해본 인터뷰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좀 됐습니다.

시언: (웃음) 그럼 본격적으로 질문 물어볼게요. 할머니의 삶에서 가장 빛났던 시기는 언제라고 생각하시나요?

춘자: 우리 애들이 어려서 공부를 너~무 잘해가지고 전부 다 상장을 받아왔거든요? 자녀 넷이서 온 벽에다가 상장이 벽 반면을 차지했어요. 그때 제일 기분이 흐뭇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구경을 하고 부러워했어요.

시언: 에이 자식들 때문에 말고. 할머니 스스로의 삶에서 가장 빛났던 시기 말이에요.

춘자; 그거는 참 힘들어요. 안 빛났어요. 우리 집 애기아빠. 그러니까, 할아버지가 맨날 사업한다고 가정은 안 돌보고 계속 밖으로만 돌봤거든요. 그것들 너 이를 내가 기른다고... 눈물 나올 것 같아. (울먹) 그래서 애들한테 잘 못 해준 게 너무너무 미안해요.

시언: 아빠랑 고모들, 삼촌한테요?

춘자: 너무 미안해요. 근데 애들이 전부 다 잘 됐습니다. 감사하게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요. 그 나머지 애들한테서 태어난 애들은요. 더 잘됐어요. 좋은 대학교에 갔고. 머리도 좋고. 우리 자식들만 생각하면요. 너무너무 기분이 좋아서 날로 내가 젊어지는 것 같아요. 여한이 없어요, 이젠.

시언: 지금 삶에서 가장 기뻤던 순간이 다 자식들의 성공과 관련되어 있잖아요. 그렇다면 할머니도 꿈이 있으셨나요?

춘자; 내가 제법 뭐라 그럴까. 일기도 좀 잘 썼고요. 문학에 관심이 조금 있었거든요? 책도 조금 읽었거든요? 근데요. 그런 꿈을 하나도 못 이뤘어요.

시언: 와 할머니가 문학에 관심이 있었어요? 처음 알게 된 사실이네요. 근데 왜 이루지 못하셨던 것 같아요?

춘자: 내 마음속으로 계속 바빴어요. 공부할 기회가 없었고, 계속 삶에 대한 힘든 구석이 있었어요. 내가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 번도 못 해봤어요. 지금에서야 생각해보니 그런 꿈이 있었던 것 같아요. 한 번도 느껴보진 못했지만, 지금 이 나이가 되니까 한 번쯤 시도를 해봤으면 어땠을까 하는 그런 생각도 드는 것 같아요.

시언: 아쉽진 않으신가요?

춘자: 이제 나이가 다 되어서 아무런 여한이 없어요. 뒤돌아볼 후회가 하나도 없어요.

시언: 어떻게 보면 요즘의 젊은 사람들이 매번 하는 고민도 하고 싶은 것과 현실과의 타협, ‘내가 할 수 있을까?’ 하는 도전에 대한 두려움들인데 어떻게 보면 할머니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네요.

춘자: 그랬죠. 그러니까 지금 사람들은 안 그랬으면 좋겠어요. 우리 나이 때도 한 우물만 파던 사람은 성공했거든요? 하고 싶은 것을 계속 놓치지 않고 했으면 좋겠어요.

시언: 문학이 되게 좋다고 하셨는데, 당시 꿈을 가지던 시절에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춘자: <태백산맥> 고것이 제일로 감명 깊었어요. 그거 하나뿐인 것 같은데...

(웃음)

시언: 그 책의 어떤 부분이 그렇게 감명 깊었나요?

춘자: 그쪽이 우리 그쪽인데, 지리산 쪽에서 전쟁이 일어난 거. 내가 사건을 겪어서 ‘아 이때는 이랬구나’하고 그걸 느껴서 그래요.

시언: 아, 할머니가 살던 순천이 배경이 되나요?

춘자: 그쵸. 벌교, 소아 다리, 꼬막 그런 데가 전부 다 나와 태백산맥에. 그래서 내가 진짜 재밌게 읽었어.

시언: 저도 그럴 때가 있죠.. 제가 아는 장소가 나오면 나도 모르게 반가워서 기억에 더 남게 되는 것 같아요. 순천의 모습이 생생했겠어요.

춘자: 벌교 학교도 다니고, 그 지리를 아니까 너무 반갑더라고. 엄청 긴 책이야. 7권인가 8권까지 있는데, 근데 기억이 지금도 뚜렷하게 기억해.

시언: 마침 지역 얘기가 나와서 그런데, 할머니는 순천에서 살다가 결혼과 동시에 부산에서 살 게 되었잖아요. 그때 아무도 모르는 타지에서 생활하게 됐을 텐데, 그런 어려움은 없었나요?

춘자: 있었죠. 물도 없어서 산북도로에 물을 길러먹는데, 물 있는 위치도 몰라가지고 그랬는데, 물을 양철 바가지 위에 엎어야 물이 안 넘치니까 그걸 엎어서 이고 가면 다른 사람들이 보기가….(웃음) 새댁이 옷은 이쁘게 입고 물 찰랑찰랑 거리면서 옷 다 적시면서 물 가지고 오는 거 그것도 참 많이 힘들었어요. 나는 높은 산 같은 것도 안 올라다녔는데, 산에 많이 올라가서. 비탈도 엄청 심한데, 올라갈 때마다 이거를 하루에 몇 번씩 날마다 해야 한다는 게 힘들었죠.

시언: 부산은 다 산이니까?

춘자: 그렇지. 그 올라가는 게 너무너무 힘들었죠. 애기 업고 시장 밥 먹고 충무동에서 장 봐가지고 올라가고. 그 생활도 너무 기억에 뚜렷이 나고, 수시로 이사 다니는 것도 힘들었어요. 그때부터 결혼과 동시에 힘들었지. 그러니까 인생이라는 거는 결혼과 동시에 바뀌어져.

시언: 갑자기?

춘자: 그래도 나는 애들이 있으니까 그걸 극복하고 살아야 해. 내가 내 딸린 자식들을 책임져야 하니까. 하나도 아니고 넷씩이나. 옆에 돌아볼 틈도 없이 안아야 해.

시언: 그런 생각은 안 해보셨나요? 순천에 가족이 있는 곳으로 확 가버리고 싶다.

춘자: 아니. 그런 생각은 안 해봤지. 혹시라도 친정에서 내가 부산에서 궁색하게 사는 걸 알까 싶어서. 부산에서 나를 알까 싶어서. 그래도 우리 오빠는 선생이었잖아. 근데 장 선생님 동생이 부산에서 고생을 무지하게 한다는 소리가 친정에 들어가면 우리 엄마가 속이 얼마나 상할까 싶어서 말도 안 했지. 내가 지금까지 말 안 해서 아무도 몰라.

시언: 그러니까. 더 부산에 온 걸 후회할 수 있는 거 아닌가요?

춘자: 내가 극복을 해야지. 어차피 인생살이라는 게. 이게 다 결혼을 해야 하니까 안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안가도 큰일 나니까. 부모가 가라는 데 가야 하니까. 나머지 애들 때문에 열심히 사는 수밖에 없어.

시언: 와 우리 할머니 대단하다. 이런 부분도 물어보고 싶었어요. 어머니가 되면서, 할머니가 되면서 ‘장춘자’보다는 누군가의 어머니 혹은 할머니로 불리는 삶이 더 많았을 텐데, 그런 삶이 밉거나 싫진 않으셨나요?

춘자: 싫었던 적은 없고. 잘 못 해준 게 미안할 뿐이지. 잘 못 먹이고. 잘 못 가르치고. 예쁜 옷 못 사 입히고. 그런 게 걸려.

시언: 요즘 사람들은 자기 삶을 더 중요시하면서 가정을 잘 안 이루려고 하기도 하잖아요.

춘자: 그거는 자기가 능력이 있으면, 그런 얽매이는 삶을 살고 싶지 않아 하는 세상이 왔어요. 그건 나름대로 세상이 그러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이에요.

시언: 그래서 더 그게 궁금해지는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본인의 삶보다는 늘 가족을 위한 삶을 산거잖아요. 결혼을 스물넷에 하고, 첫 아이를 낳고 계속해서 엄마, 할머니로 거의 60년 동안 산거잖아요. 그러면서 나라는 존재에 대해 더 어필하고 싶은 순간들은 없었나요?

춘자: 싫진 않았는데, 다시 그런 때로 돌아간다면 좀 더 열심히 나를 찾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시언: 스스로를 찾는 삶이요?

춘자: 아니, 스스로보다는 애들을 안으면서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싶어요. 그게 후회스러워요. 더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애들한테 돈도 좀 많이 남겨주고. 장사도 좀 해서. 풍요롭게 해 줄 수 있는 능력 있는 엄마가 되고 싶었는데, 그걸 못 해준 게 제일로 후회스러워요.

시언: 결국에는 ‘장춘자’의 삶보단 자식들을 위한 삶이네?

춘자: 그렇죠.

시언: (웃음) 그러면 저와의 추억 중 가장 생각나는 것은 무엇인가요?

춘자: 음. 저기 울산에 그 손 이래가지고 있는 곳 어디야?

시언: 포항에 호미곶?

춘자: 그래 호미곶에 가서. 그 쪼깐한거. 너 그때 중학생이었어. 근데, 나를 업고 차에까지 갔어. 내가 상당히 무게가 나가는데, 한참을 갔어. 그 등에서 내리지도 못하고 눈물이 나가지고... 그 쪼깐한 것이. 맘이 안 편해서 좀 내려줬으면 좋겠는데, 끝까지 차에까지 갔어. 그게 제일 기억에 남아요.

시언: 할머니에게 저는 어떤 존재인가요?

춘자: 저의 힘이죠. 태양이고. 기쁨이고. 든든하고. 안아만 봐도 힘이 되고. 그 많은 표현을 어디다 붙여야 할까. 사랑합니다.

시언: 저도 사랑해요. 타이밍이 조금 이상한 거 같은데, 저를 얼마만큼 사랑하시나요?

춘자: 그거는 말해서 뭐 합니까. 하늘 땅. 딱 그렇게만 표현 하렵니다. 하늘 땅. 진짜.

시언: 그거 말고 다른 표현은 없나요?

춘자: 눈에다 넣어도 하나도 아프지 않을걸요. 하늘 땅 그것도 비교를 못해가지고 내가 할 수 있는 최대 표현이에요. 어떻게 눈에 한번 들어와 볼랍니까?

(웃음)

시언: 이제 마지막 질문이에요. 할머니, ‘장춘자’의 삶이 어떻게 기억되었으면 하나요?

춘자: 그래도 괜찮게 살다가. 주위 사람들에게 인정도 받고. 내가 생각해도 딴사람이 날 싫어하지 않았고, 우리 손자, 손녀들도 나를 괜찮게 생각했고, 만족스러운 삶이었어요. 열심히 못 살아서 풍요로운 생활은 못 했지만, 인생이 이 정도면 복 받은 인생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괜찮은 삶이었으니 기억이 무슨 소용이겠어요. 상식 없는 할머니로 기억되지만, 않는다면 그것밖에 바랄 게 없습니다. 우리 할머니가 그래도 멋지게 살다 가셨구나. 그거면 됩니다.



그 누구보다 멋지게 살았던 춘자씨의 삶이 앞으로도 함께, 멋지게 오랫동안 지속되기를 바라면서,

싸랑을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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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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