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늦게 알아차린 진심
"그만할래요. 이제 그만하고 싶어요." 정기승진과 인사발령이 끝난 직후, 팀원 J가 느닷없이 울먹이며 말했다. J는 7월 1일 자로 승진했다. 시간선택근무자여서 조기퇴근하는 것 말고도 Y 등 다른 직원과 종종 감정대립이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근래 들어 밝게 웃으며 지내길래 별일 없는 줄 알았던 것이,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 터진 것이다. 사유에 대해 재차 물으니, '계속 그만두고 싶었다', '그만두는 마당에 다른 사람에 대해 말하고 싶지 않다', '프레임을 씌운다' 등의 말로써 이유를 짐작하게 했다.
아마도 복합적인 이유겠지. 안 그래도 6개월 전 우리 팀으로 왔을 때 오자마자 수술 때문에 1개월 넘게 병가를 냈던 J를 팀원들은 차갑게 대하는 것 같았다. 대직자도 다른 직원들도 힘들었으니까. 그래서, 팀장인 나라도 따뜻하게 대해주어야 할 것 같았고, 말이라도 '고생했다. 건강은 회복된 건가?'라는 위로의 말을 건넸었다. 그가 잘 극복하고 적응해 주길 바랐으니까. 근무평가 때도 나름의 관심과 응원을 보냈고, 다행히 늦었지만 승진을 했다. 누군가는 그의 돌연한 사직이 준비된 결과라고 말했다. '승진하고 나갈 생각을 했던 게 아닐까요? 퇴직금문제도 있고요.' 그럴 수 있다는 생각과 함께 알 수 없는 게 사람마음이라고, 잘해주면 뭐 하냐는 소리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J와 2번의 상담 끝에 나는 포기했다. 태도가 너무 확고했으니까. 그러면서 Y가 평소 J에 대해 '하려는 자세가 안되어 있다'라고 말하면서 못 마땅해했던 걸 생각했다. Y는 유능하다. 또 열심히 한다. 밤잠도 몇 시간 안 자고 새벽에 일어나 일찍 사무실에 와서 온갖 청소와 정리를 하고, 일찍 가는 직원의 업무도 대신 도맡아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일까? 자기 기준이 확실하고 그 기준에 미달이라고 판단되는 이에게 여지를 주지 않는다.
Y는 우리 부서로 발령받아오기 전부터 유명했다. 사석에서 직접 듣기론, 건축을 전공해서 현장에서 10년 정도 일하다가 우리 회사로 이직했다고 한다. 나이는 45세, 미혼, 가는 부서마다 열일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서 모두들 익히 알 수밖에 없다. 내가 지난 6개월간 지켜본 바로는, 자신보다 나이 어린 여직원들하고 잘 지낸다. 업무파악도 나름 열심히 해서 업무적으로 나무랄 것이 없다. 그런 Y가 처음부터 J를 못마땅해했었다. 나는 '사람 능력이 다 다르다. 나보다 좀 부족한 사람도 있는 법'이라며 얘기했었으나, 아마도 그 이후로도 그들 사이는 지속적으로 별로인 관계였던 것 같다. 최근, 그런 Y가 내 눈밖에 났던 건, 그가 J와 잘 못 지내서가 아니다. 다른 팀에서 우리 팀으로 옮겨오는 남직원에 대해 반대했고, 반대이유는 '다른 팀에서 적응 못하는 직원을 왜 우리가 받느냐'는 것이었다. 팀배치가 거의 확정되었을 때에, '만약에 저 사람이 오면, 전 고충 쓸 겁니다' 했다. 난 기가 막혔다. 맘속으론, '지가 팀장하지. 협박하는 건가' 했지만 그날은 아무 말 없이 지나갔다. 하루이틀 지나면서 괘씸한 마음이 차오르면서 '고충을 쓰던가'이렇게 말하고 싶은 걸 참으며, 어느 날 점심시간에 '식사했느냐'로 말을 걸었다. Y의 성실함이 내 마음에 자리 잡으려던 그에 대한 부정적 평가를 이겼다. 그리고, 팀을 옮겨 온 남직원은 내 예상대로 자기 몫을 잘했고 Y를 비롯한 다른 팀원들과도 잘 지내주었다.
누가 누굴 오해한 걸까? Y가 J에게 편견을 가졌을 수도, 내가 Y를 오해한 부분이 있었을 수도, 아니면 주변인의 편견으로 J가 힘들었을 수도, 어디에나 모든 가능성은 존재한다.
영국 작가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Pride and Prejudice)>은 한 남자의 오만과 한 여자의 편견으로 시작되는 러브스토리이다. 이야기의 배경은 18~19세기 영국의 한 시골 마을 롱본, 이곳에 사는 베넷부부는 다섯 명의 딸들과 함께 살고 있는데, 새로 이사 오는 이웃으로 인해 마을이 발칵 뒤집힌다. 이사 온다는 이웃의 이름은'빙리'이고 '사두마차'를 타며, 연수입이 4~5천 파운드인 젊은 청년이다. '사두마차'는 재력의 상징이며, 연수입 4~5천 파운드는 현재의 수억 원의 가치를 지닌, 이른바 상위 1프로의 부유층을 상징한다. 돈 많은 미혼남자인 새 이웃 빙리에게 아내가 필요하고, 베넷부부 역시 빙리에게 딸들 중 누구라도 시집보내고 싶어 안달이 난다. 18~19세기의 유럽은 돈 많은 부자에게 딸을 시집보내는 것이,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팔자를 고치는 것'이었다. "결혼이 행복을 가져다줄지는 알 수 없지만 가난을 막아줄 최선의 예방책이었다"에서 당시의 이러한 사회적 통념을 짐작할 수 있었다. 빙리가 이사 온 뒤, 빙리와 함께 무도회장에 등장한 사람이 '다아시'였는데, 이 신사가 바로 '오만'의 주인공이다. 이 사람의 연수입은 '1만 파운드'로 빙리보다 수입이 2배나 되는 부자이다. 빙리는 베넷 가문의 첫째 딸 제인에게 푹 빠져있었는데, 다아시에게 '엘리자베스'를 가리키며 잘 좀 해보라는 말을 한다. 이 때 다아시는 돌아보다가 '엘리자베스'와 눈이 마주치지만 "봐줄 만은 하네. 하지만 내킬 정도는 아니야. 난 다른 남자들이 무시한 아가씨의 기를 살려줄 기분이 아닌걸. 넌 파트너한테 돌아가서 그녀의 미소나 즐기라고. 여기서 나와 시간 낭비하지 말고." 이런 말을 하고 만다. 이 말을 엘리자베스가 들었다. "그 사람이 나를 모욕하지만 않았더라면 나도 그 사람의 오만함은 쉽게 용서할 수 있었을 거야."라고 말하는 그녀에게 다아시는 이미 '오만한 부자'였다.
"하지만 그가 그녀의 얼굴에서 예쁜 구석을 찾아볼 수 없다고 생각하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그런 생각을 분명히 밝히자마자, 바로 그녀의 검은 두 눈에 아른대는 매혹적인 표정에 흔치 않은 지성이 드러난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다아시가 엘리자베스의 매력에 반해 사랑에 빠지는 순간이다.
"엘리자베스는 피아노 위에 놓인 음악책을 넘기는 자신에게로 줄곧 향하는 다아시의 시선을 모를 수가 없었다. 그녀는 저렇게 대단한 남자가 자신에게 감탄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엘리자베스의 다아시에 대한 편견과 오해는 멈추지 않는다. 게다가, 다아시를 '오만한 부자'라고 단정해버린 엘리자베스에게 '위컴'이라는 인물이 나타나 다아시와의 인연을 털어놓으며 다아시에 대한 거짓된 이야기를 함으로써, 그녀의 편견은 더욱 굳어지게 된다. 반면, 그녀에 대한 마음에 확신이 생긴 다아시는 편견과 오해로 가득한 엘리자베스를 찾아가 고백한다. 사랑한다고. 물론 거절당한다. 이후, 다아시는 긴 편지를 써서 엘리자베스에게 건네는데 솔직하고 담담하게 써 내려간 편지를 읽고 엘리자베스의 오해와 편견이 사라진다.
사실, 200년 전의 유럽이나 우리나라나 여성의 지위를 생각하면, 경제력도 없고, 주체적인 삶을 살기도 어려웠다는 점에서 비슷한 상황이지 않았을까? 영국인에게, <오만과 편견>은 18~19세기 역사를 떠올리게 하는 거울 같은 작품이라고 한다. 시대를 소환하는 작품. 이야기 속 엘리자베스는 오해를 했으나 스스로 오해를 풀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주체적인 여성으로, 남성위주였던 사회에서 주체적 여성상을 보여줌으로써, 작품에 그 가치와 의미를 더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오해와 편견을 가지고 타인을 보게 된다. 그것이 오해이고 편견이었음을 시간이 지나 봐야 알 것이고, 어떤 건 풀리기도 하지만, 어떤 건 아무도 모르게 묻혀버린다. 나 역시 편견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함을 안다. 다만, 잦은 오해와 편견이 가져올 비뚤어진 진실을 피해보고자 생각이란 걸 해야 한다는 것도 안다. 편견은 고정관념을 낳고 고정관념을 지니게 되면, 그가 개인이든, 대중이든 거기에 갇혀버리는 위험한 상태가 올 수 있을 것이다. 엘리자베스는 다아시가 오만하다는 편견을 가지는 바람에 그의 진심을 늦게 알아버렸다. 다행히 늦게라도 알게 되긴 했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 과거에 놓쳐버린 시간과 사람과 돌이킬 수 없는 기회들, 편견이 아니었으면 지나치지 않았을 진심에 대해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