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구의 고독인가?
"소설의 종말에 대하여 말하는 것은 서구작가들의 기우에 지나지 않는다. 책꽂이에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 년 동안의 고독>을 꽂아놓고 어떻게 소설의 죽음을 말할 수 있단 말인가"라는 밀란 쿤데라의 말처럼, 이 소설은 재미있고 기묘하며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소설 속 망자들은 산 사람 앞에 끊임없이 모습을 드러내며 심지어 대화도 한다. 그러다가 자신을 기억하는 이들이 사라져 갈 때 망자들은 비로소 영원히 떠나간다. 또한, 미녀 레메디오스는 침대시트와 함께 승천하고, 흙을 먹으며 토하는 레베카, 남편이 있는 옆방에서 간통을 저지르는 아마란타 우르슬라의 이야기는 독자의 흥미를 유발하기에 이미 충분한 소재인 것 같다.
작품의 시대적 배경
198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콜롬비아의 G. 마르케스(1927-2014)의 대표작 <백 년 동안의 고독>은 역사적, 시대적 상황을 반영한 작품이기에, 콜롬비아의 역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라틴아메리카 대부분의 나라들처럼 오랫동안 스페인의 지배를 받았던 콜롬비아는 16세기 중엽부터 스페인 식민지의 주요 부분이었고, 19세기 초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스페인으로부터 해방되어 독립국가가 될 수 있었다.
1927년 콜롬비아에서 출생한 G. 마르케스는 대학에서 법학과 저널리즘을 공부하다가 정치적 혼란으로 대학을 중퇴한 뒤, 제2차 세계대전 후인 19세부터 기자로 활동하면서 소설집필을 시작한다. 1958년 쿠바혁명이 일어났고, 라틴아메리카의 대다수 지식인들이 그러했듯이 그도 혁명을 지지하며 중남미 독재정권과 미국에 반대하는 저널리스트이자 정치운동가로 활동한다. 따라서, 이 이야기는 G. 마르케스가 겪었던 시대, 즉 폭력으로 점철된 중남미의 정치 사회적 현실이 반영된 작품이기도 하다.
부엔디아 가문의 이야기
<백 년 동안의 고독>은 마콘도라는 가공의 땅을 배경으로 하는 부엔디아 가문의 시작과 몰락의 이야기이다.
부엔디아 가문의 선조인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는 마콘도 마을을 건설하는데, 어느 누구도 사망한 적이 없는 낙원 같은 마콘도가 집시들이 전해준 자석, 확대경, 사진기와 같은 문명의 발명품이 들어오면서부터 점차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는 이후 문명의 도구에 빠져버린 나머지 족장으로서의 의무와 책임을 포기한 채 실험실에 박혀 오직 연구에만 몰두하다가 끝내 고립되어 미치광이가 되고 나무에 묶여 살다 생을 마감한다. 그의 아들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은 혁명을 위해 정부군과 20년간 싸우지만 혁명이 실패하자 그 역시 골방에 들어앉는다. 이 외에도, 17명의 배다른 아우렐리아노들이나, 이모와 조카가 낳은 돼지꼬리 달린 아이 등은 부엔디아 가문의 몰락을 예고하는 듯하다.
부엔디아 집안의 가계도를 보면, 특이하게도 각 세대마다 '아르카디오'와 '아우렐리아노'라는 이름이 반복되는데, 이들의 고독과 운명, 그리고 반복되는 비극을 암시하고 있다. 또한, 되풀이되는 운명은 4대손 '호세 아르카디오 세군도'와 그의 증조모 '우르슬라'가 나누는 대화에서도 엿보인다.
(호세 아르카디아 세군도) "세월은 흐르게 마련입니다."
(우르슬라 이구아란) "그렇긴 하지. 하지만 별로 흐르지도 않아."
(중략) '시간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 커다란 원을 그리며 빙빙 돌고 있다는 생각에 몸을 떨었다.'
서구 제국주의에 대한 고발과 폭로
한편, <백 년 동안의 고독>은 서구 제국주의가 자행한 폭력과 수탈에 대한 고발과 폭로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들은 꼼짝없이 가운데 갇혀서 거대한 회오리바람처럼 빙글빙글 돌면서, 기관총이라는 기계가위로 끊임없이 조직적으로 벗겨내는 양파처럼, 가장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떨어져 나갔으며, 군중은 점점 안으로 오그라들면서 줄어들었다."
미국이 평화롭던 마콘도에 바나나 농장을 건설하고 원주민 노동자를 고용하여 낮은 임금과 열악한 환경으로 착취하던 중, 노동자들이 파업을 일으키자 정부는 3,000명이 넘는 파업노동자들을 대량학살한다. 역 광장에서 기관총으로 무참히 학살된 노동자들의 시체를 한밤중에 화물차로 실어 나르고 바닷물속에 던져버린다. 엄청난 사건은 진상이 은폐되고 조작되지만 사실을 말하는 '호세 아르카디오 세군도'에게 돌아온 건 사람들의 '미친 사람취급'이었다.
"그는 형의 얘기를 듣고도 학살사건이라던가 시체더미에 묻혀서 기차에 실려 바다로 갔다는 악몽 같은 여행 이야기를 믿지 않았다" 동생인 '아우렐리아노 세군도' 역시 믿지 않았다.
'100년 동안의 고독에 시달린 종족은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날 수 없다'는 마지막 문장과 함께 가문의 마지막 자손인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가 가문의 이야기가 적힌 양피지의 글을 해석하는 순간 마콘도는 회오리바람에 휩싸여 사라져 간다.
누구의 고독인가?
이 작품은, 부엔디아 가문의 고립과 반복되는 비극의 역사를 통해 '고독'속으로 침잠하는 한 집안의 이야기이며, 오랜 세월 제국주의 침략의 대상이었던 라틴아메리카의 역사적 현실구조 속 정체되고 고립되어 버린 남미대륙의 운명을 다룬 이야기이다. 세상 어디라도, 또 그 누구라도, 고립과 폭력이 반복된다면, 절망에 이어 영원한 고독에 이르고 말 것이다. <백 년 동안의 고독>은 독자에게 재미를 주는 소설이면서 동시에 인간의 고립과 정체, 절망에 대하여 다시 생각하게 해주는 길잡이 같은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