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페 디엠(오늘을 즐겨라)
"나를 왜 꼼짝 못 하게 하는데?"
고등학교 진학을 앞둔 중3 겨울방학 때 학원시간표를 짜서 내밀던 내게 작은 아이가 이렇게 말했었다.
할 수 있는 수준보다 목표를 조금은 높게 잡아야 실력이 향상될 거라고 설득하던 나는 한두 번의 실랑이 끝에 그만 포기하고 말았다. 본인의 의지 없이 억지로 할 수 있는 건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때 나는 정말로 아쉬웠다. 아이가 내 플랜대로 따라와 주기만 한다면 분명히 한 단계 성장할 거라고 굳게 믿었던 나는, 입시설명회를 쫓아다니던, 그저 보통의 엄마였으니까. 그래도 마지막엔 아이의 의사를 따랐다.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아이와 그맘때의 나를 비교하면서... 나의 중고등학교 학창 시절은 재학생 학원수강 및 과외교습을 금지하는 이른바 '학원금지조치'로 학원을 다닐 수 없었고 몰래하는 과외는 너무 비싸서 받을 수 없었기에, 그래서 작은 아이를 바라보며 '나는 다니고 싶어도 못 다녔는데...'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그때의 나도 작은 아이도 치열한 입시전쟁에서 모두 각자 힘겨운 시절을 보냈으리라. 아니, 당사자인 아이가 더 괴로웠겠지.
'카르페 디엠(Carpe Diem)'으로 기억되는 <죽은 시인의 사회>는 원래 미국 웰튼 아카데미 출신 작가이자 영화감독인 톰 슐만의 영화 <Dead Poets Society>를 소설가 낸시 클레인바움이 각색한 소설이다.
소설을 보면, 미국의 대학입시 또한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웰튼 아카데미는 미국의 유명 사립대학들인 소위 '아이비리그' 진학률이 해마다 70% 이상이 되는 사립고등학교이다. 학생들은 모두 기숙사생활을 하며 오로지 아이비리그 진학이라는 목표아래 철저하게 교육받는다. 학교와 학부모, 학생이 삼위일체가 되어야 원하는 목표를 이룰 수 있다고, 예전에 어느 입시설명회에서 내가 들었던 것처럼, 웰튼 아카데미의 학부모들도, 학생들도 오로지 진학만을 위해 공부한다.
어느 날, 웰튼 아카데미 졸업생이며 옥스퍼드 대학 졸업생인 존키팅이 국어교사로 부임해 오면서 학교가 변화하기 시작하는데, 이야기 속 '죽은 시인의 사회'는 키팅이 웰튼의 학생일 때 조직했던 비밀모임이다.
"그 모임은 삶의 참맛을 보기 위한 조직이었지. '죽은 시인의 사회'는 소로의 시에서 따온 거야. 우린 모일 때마다 그의 시를 읽곤 했었지." 키팅선생이 학생일 당시 동굴에서 모임을 가지면서 시작되었던 '죽은 시인의 사회'에 대해 학생들에게 소개하면서 이 모임은 다시 시작된다.
잔디밭 수업에서
"잔디밭으로 오라고 적혀 있는데?"
"여러분이 발표했던 시에는..."
"획일성이라는 아주 위험한 요소가 숨어있었다."
잔디밭 수업에서 키팅선생이 학생들의 자작시에 대한 평을 하는 장면이다, 그리고 이어서 네 명의 학생을 불러내 네모진 잔디밭을 돌게 한다.
"네 명의 학생들이 리듬에 맞추어 잔디밭을 행진하고 있었다. 그들은 다리를 높게 쳐들고 팔까지 흔들면서 리듬감을 살리고 있었다. 나머지 학생들도 한 몸이 되어 친구들의 행진에 손뼉을 치며 박자를 맞춰 주었다."
수업이 끝나기 전, 키팅선생이 얘기한다.
"이 실험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어느 누구든 상대가 존재하는 한,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거나 스스로 믿음을 지켜 나가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사람은 누구나 남들에게 좋게 받아들여지고 싶은 강한 욕구가 있으며, 그래서 개인의 독특한 개성과 신념을 지키기 어렵다는 키팅선생의 이야기는 획일화되어 버리기 쉬운 교육환경에 놓여있는 학생들의 현실을, 그들이 풀어가야 할 미래에 대해 고민하게 해주는 부분이다.
토드와 닐의 이야기
"닐, 어렸을 때 아버지가 나를 뭐라고 불렀는지 아니? 5달러 98센트라고 했어! 사람 몸을 단순히 화학물질로 계산하면 몸의 값어치가 그 정도밖에 안 나간대. 그러면서 날마다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으면 내 값어치는 영원히 5달러 98센트짜리밖에 안 될 거라고 말했어. 고작 5달러 98센트라니 말이야!"
생일날에 부모님으로부터 매년 똑같은 선물만 받는다는 토드가 친구인 닐에게 털어놓은 믿기 어려운 이야기이다.
"닐, 내가 알아보니 너무 많은 과외활동에 참여하는 것 같더구나."
닐의 아버지는 아들의 진학과 공부에 차질이 생길 것을 우려해 닐의 의사와 관계없이 학교연감위원회 편집장이던 닐의 활동을 중지시켰다. 안된다고 말하는 닐에게 말대꾸하는 나쁜 버릇이라며 일축하고 화를 내는 아버지, 닐은 결국 잘못했다고 말하고 입을 다문다.
"그때였다. 흐뭇한 마음으로 객석을 둘러보던 그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굳어졌다. 아버지가 강당 뒤 통로에서 무서운 얼굴로 무대 쪽을 노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닐은 맥박이 빨라지고 호흡이 거칠어지며 다리까지 후들거렸다. 공포에 가까운 두려움으로 얼굴 근육이 마비되는 것 같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버지의 허락 없이 몰래 하고 싶은 연극무대에 서서 멋진 연기를 펼치고 환호하는 관객을 바라보는 것도 잠시였다.
"내일 당장 브레이든 군사학교로 보내겠다. 넌 그곳에서 하버드로 진학해 의사가 되는 거야! 알겠지!"
이번에도 닐은 입을 다물고 포기하고 또 절망한다.
"서명하지 않겠습니다."
닐의 자살사건에 대한 책임을 키팅선생에게 물어 그를 징계하기 위한 거짓서류에 서명하도록 강요받은 학생들 중 토드만은 끝내 서명하지 않음으로써 자아를 찾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죽은 시인의 사회'는 닐의 자살과 키팅선생이 학교를 떠나는 것으로 끝나지만, 학생들이 모두 책상 위로 올라가 키팅선생에게 인사하는 마지막 수업장면은 모두에게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다 너를 위한 일이야
닐의 아버지의 이야기는 가까운 주변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큰아이의 한 친구는 고등학교 때 옥스퍼드대학시험에 붙을 정도로 공부를 잘했는데, 첫 대학입학부터 본인의 의지를 접고 부모의 뜻대로 홍콩대에 입학했다. 영국유학비용을 댈 수 없으니 장학금을 받는 학교로 가야 한다는 타당한 경제적 사유가 있긴 했다. 그런데 얼마 뒤, 역시 부모의 뜻을 받아들여 서울대에 다시 입학했다. 그리고, 마지막엔 또다시 부모가 원하는 대로 공부해서 의대에 들어갔다. 다행히, 그 친구는 의대에 정착해서 잘 지내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큰아이가 전해주던 친구의 소식을 접할 때마다 그 친구가 무척 안쓰러웠다. 입시를 세 번이나 치른 것은 물론, 부모의 권유와 설득으로 매번 괴로워했다는 이야기는, 당사자가 아닌 내가 생각하기에도 감당하기 어려운 일인 것만 같아서이다.
소설 속 닐의 아버지는 말한다. '다 너를 위한 일이야'
하지만, 적어도 자녀가 정말 무엇을 원하는지 물어봐야 한다. 대화가 부족해서 자녀의 마음까지 알아차릴 수는 없어도, 의견이 일치하긴 어려워도.
'다 너를 위한 일이야', '나는 하고 싶어도 못 했는데'
이런 말, 이런 생각은, 자녀를 위태롭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부모는, 길을 제시할 뿐이다.
어느 나라나, 어느 시대나 시험은 있다. 그리고, 시험은 사회의 원활한 순환을 위해 적재적소에 필요한 사람을 배치하기 위한 과정이다. 하지만, 우리가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속 사람들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모두에게 똑같은 능력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입시라는 이름하에 생겨나는, 명문대학진학을 위한 과열경쟁, 그 안에서 아이들이 과연 진정한 미래를 꿈꿀 수 있을지, 그들이 숨은 쉬는지, 어른이라면 마땅히 고민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