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소원은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독립이오
이봉창의사(1900-1932)와 윤봉길의사(1908-1932)의 의거는 1932년 1월과 4월에 각기 일본과 중국 상해에서 일어났으며 이로 인해 한인애국단원 다수가 체포되었고 백범 역시 상해에서 탈출하여 이후 한동안 광동인 장진구로 행세하며 도피생활을 이어간다.
"그는 말에 절반은 일어이고, 동작 또한 일본인과 흡사하였다"
백범을 찾아온 이봉창의사에 대한 서술이다.
나는 문득, 일제강점기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에 대해 생각했다. 2025년의 '2030' 젊은 세대는 입시에 연이은 취업, 그리고 결혼 등 장래에 대한 고민으로 가득 차있는데, 하물며 나라가 없던 암울한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무슨 꿈이 있고 희망이 있었을까?' 하는 생각. 이봉창의사의 절반은 일어인 말투를 보고 우선 의심부터 들었다는 백범의 이야기에서 '이 또한 서글픈 현실이었구나' 하는 생각. 일제하에서 일본인 선생이 일본어로 가르치는 교육을 받으며 성장했을 그 시절의 청소년과 젊은이들에게 끝도 없이 밀려들었을 절망에 대하여...
"제 나이가 31세입니다. 앞으로 다시 31년을 더 산다 해도 과거 인생에서 맛본 방랑생활에 비한다면 늙은 생활에 무슨 취미가 있겠습니까? 인생의 목적이 쾌락이라면 31년 동안 인생의 쾌락은 대강 맛보았습니다. 그런 까닭에 이제는 영원한 쾌락을 얻기 위하여 우리 독립사업에 헌신하고자 상해에 왔습니다."
백범은 이봉창의사의 위대한 인생관에 감동의 눈물이 벅차올랐다고 했다. 당시 중국 국민당 기관지는 "한인 이봉창이 일본 천황을 저격하였으나 불행히도 명중하지 않았다"라고 보도했다.
또한, 1932년 4월 29일 홍구공원 행사에 앞서 일본 상해 영사관은 신문에 다음과 같이 포고하였다.
"4월 29일 홍구공원에서 천장절 축하식을 거행한다. 그날 식장에 참석하는 자는 물병하나와 점심으로 도시락, 일본 국기 하나씩을 가지고 입장하라"
도시락 폭탄을 투척한 윤봉길의사의 상해 홍구공원 쾌거는 신문 호외로 터져 나왔다.
1932년의 의거직후 상해를 탈출한 백범은 1933년(58세), 장개석과 면담하여 한인훈련반 설치에 합의하고 1934년(59세), 한인특무독립군을 조직하여 독립운동에 매진한다. 1937년(62세), 백범은 한국국민당, 한국독립당, 조선혁명당, 한인애국단 및 미주 5개 단체를 통합하여 '한국광복운동단체연합회'를 결성한다. 1940년(65세)에 3개당을 통합한 '한국독립당'을 결성하고 임시정부 중경시대가 열리면서 광복군이 창설되었으며 백범은 주석으로 선출된다. 이후 1941년(66세)에는 미 루스벨트에게, 1942년(67세)에는 미영소에 각기 임시정부 승인을 요청한다. 1945년(70세) 12월에 비로소 귀국하지만, 미군정의 반대로 임시정부의 정부자격입국은 실현되지 못한다. 1945년 12월의 모스크바 3상회의 신탁통치결정에 반대하여 '신탁통치반대총동원위원회'를 조직, 신탁통치 반대운동을 전국적으로 전개해 나간다.
1948년(73세) 1월에 UN한국위원단에 통일정부수립요구 의견서를 보냈으며 남한총선거 불참을 표명하고 북한 단정수립에도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으나 5.10 총선거로 제헌국회 개원, 7월에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결정, 8월에 초대 대통령을 이승만으로 하는 대한민국정부가 수립된다. 그리고 정부수립 이듬해인 1949년(74세) 6월, 경교장에서 총에 맞아 운명함으로써 백범의 일생은 막을 내린다.
지금까지, 독립운동가이며 계몽운동가이자 민족주의자인 백범 김구의 파란만장한 생애를 짧은 글로 적어보았다. 백범의 일생에는 동학운동의 팔봉접주가 있었고, 1895년의 을미사변(민비시해사건)이 있었고, 1905년의 을사늑약과 1909년의 안중근의사 이토 히로부미 저격사건, 1911년의 105인 사건(신민회 사건), 1919년 3.1 운동과 상해임시정부 수립, 1932년 이봉창의사와 윤봉길의사의 의거, 1940년 중경임시정부와 광복군 창설, 1945년 미군정과 모스크바 3상회의, 신탁통치와 1948년 대한민국정부수립에 이르기까지, 백범의 생애는 바로 우리가 배우고 가르쳐야 할 우리의 역사교과서이다.
"나의 소원은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독립이오."
"독립이 없는 백성으로 70 평생에 설움과 부끄러움과 애탐을 받은 나에게는 세상에 가장 좋은 것이 완전하게 자주독립한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보다가 죽는 일이다."
백범이 '나의 소원'에서 밝힌 것처럼, '대한의 완전한 자주독립'을 이루는 것이 그의 평생의 소원이었다.
그렇다면, 백범이 소원하는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독립'은 과연 무엇인가?
백범은 신탁통치반대운동에 이어 남한총선거와 북한단정수립을 반대하였으며 조국의 통일정부수립을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오늘날, 2025년에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우리들에게 어쩌면 '통일정부'란 요원한 단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역사를 돌아봄으로써 미래를 꿈꿀 수 있다. 백범이 살았던 서글프고 고단한 시기에 목숨을 걸만큼 소중한 무언가가, 뜨거운 무언가가 있었기에 우리의 현재는 가치 있는 것이고 대한민국은 미래의 꿈을 가져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