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어주는 남자(베른하르트 슐링크)

- 지나간 후에야 사랑이었음을 알게 되는 사랑도 있다

by 올리브

살다 보면 잊을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잊을 수 없는 사람, 잊을 수 없는 장소, 그리고 잊혀지지 않는 시간들. 잊지 못함이 꼭 그리움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소설 <책 읽어주는 남자>는 잊을 수 없는 것 중의 하나이다.

15세 소년과 30대 여자의 사랑이야기, 전후 독일의 사회상황을 시대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 두 사람은 우연한 기회에 연인사이가 되어 사랑을 나누고 만날 때마다 여자는 소년에게 책을 읽어달라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여자는 자취를 감추고 8년 후 남자는 나치전범으로 법정에 선 여자를 본다. 유대인수용소에서 화재 시, 수많은 유대인들이 감금되어 나오지 못하고 죽어간 것에 대한 책임을, 당시 수용소 감시원이었다는 여자는 결국 죄를 시인함으로써 무기징역을 선고받는다. 문서작성의 장본인을 가리기 위해 필적감정을 하려고 하자 그것을 피하기 위해 침묵하기로 한다. 왜냐하면 여자는 글을 읽을 줄도 쓸 줄도 몰랐으므로, 또한 자신이 문맹임을 밝히는 것이 죄를 모두 인정해 버리는 것보다 더 치욕스러운 일이었으므로. 8년 전 여자가 갑자기 사라진 이유도 상사가 자신을 전표검침원에서 사무직으로 승진시켜 주겠다는 말을 듣고서였다. 그 8년의 기간 동안 남자는 여전히 여자를 잊지 못하고, 이제 비로소 그녀가 떠난 이유를 알게 되지만, 법정에서 그러나 끝까지 침묵한다. 훗날, 남자는 결혼을 하고 아이도 낳지만 내내 행복하지 못한 삶을 살고, 여자가 18년간의 교도소생활 끝에 사면되어 출소하던 날, 여자는 스스로 목숨을 버린다. 그리고 그녀의 유품에는 남자가 10년 동안 보내준, 책을 녹음한 테이프들과 남자의 졸업식 상장사진 신문스크랩. 여기,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을 떠났다는 아픈 상처를 지닌 채 살아온 남자와 도망쳐야 했던 여자가 있다.


만남

서른여섯 살의 한나 슈미츠와 열다섯 살의 고등학생인 미하엘 베르크와의 만남.

낙제를 코앞에 두고 있던 미하엘이 한나와의 만남 이후 학년진급이라는 작은 성공으로 선생님들의 주목을 끌고, 이로써 소년의 삶은 변화하기 시작한다. 한나는 미하엘에게 안정감을 부여한 사람이다.


쪽지사건

"나는 침대옆의 조그만 탁자에다 그녀를 위해 쪽지를 써서 남겨두었다. '좋은 아침이에요! 아침 식사를 가지고 곧 돌아올게요.'(중략) 내가 다시 돌아와 보니, 그녀는 방안에 서 있었다. 옷은 반만 걸친 채 분노로 떨면서. 얼굴은 백지장처럼 되어있었다."

한나와 여행을 떠났던 어느 날, 아침식사와 장미를 가져다주려고 쪽지를 남기고 다녀왔을 때 쪽지는 사라지고 아무 말도 없이 가버린 줄 알았다며 분노하는 한나를 보며 미하엘은 속수무책이었다.


나의 배반

"그 후 나는 한나를 배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부인(否認)은 배반의 다른 몇 가지 떠들썩한 유형들과 마찬가지로 인간관계의 토대를 앗아가 버린다."

"만약에 나의 인생에서 숨겨두었던 중요한 모든 것들을 친구들에게 말해주는 것처럼 행동하면서 한나에 대해서는 침묵한다면, 그것 역시 한나를 배반하는 일임을 나는 알고 있었다."

이처럼 미하엘은 그 누구에게도 한나의 존재와 그녀와의 비밀을 알리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의 이런 행동이 한나에 대한 '배반'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한나가 사라진 것도 자신이 그녀를 배반하고 부정했기 때문이라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재회

"이윽고 그녀가 말했다. '전문가까지 부를 필요 없습니다. 내가 그 보고서를 썼다는 사실을 시인합니다' "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없는지를 숨기기 위해서 그녀는 늘 싸우고 또 싸워왔다."

"그리고 범죄자를 배반하는 것이 죄가 되지 않으므로 내가 유죄가 아니라고 해도, 나는 범죄자를 사랑한 까닭에 유죄였다."

법정에서 다시 만난 한나를 보며 미하엘은 오래전 쪽지사건이 일어났던 그 숲 속을 떠올렸고 비로소 한나의 비밀을 분명하게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녀의 범죄사실과 그녀가 문맹이라는 사실 사이에서 자신 역시 그녀를 배반했으며 또한 스스로 유죄임을 부인할 수 없었다.


아버지와의 대화

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한다는 한나의 수치심이 법정과 수용소에서 보여준 그녀의 행동에 대한 충분한 근거가 되는지에 대해 고민하던 미하엘은, 그리고 한나의 문맹사실을 알려야 하는가 고민하던 그는, 철학자인 아버지와 의논해 보기로 결정한다.

"우리는 지금 행복이 아니라 품위와 자유에 대해서 말하고 있어. 넌 아주 꼬마였을 때부터 그 차이를 알았잖니. 엄마의 말이 늘 옳은 것이 네겐 별로 마음 편치 않았잖아."

"그 사람 등 뒤에서 다른 사람과 이야기해서는 안 된단다."

미하엘은 아버지의 말을 그 나름대로 받아들였는데, 그것은 즉, 판사하고 의논할 필요는 없다, 판사하고 의논해서는 절대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종종, 내가 좋다고 생각하는 것을 남에게도 똑같이 적용하려 한다. 하지만, 아주 간단히 말해서, 내가 좋다고 생각하는 걸 남도 반드시 좋다고 생각하진 않는다는 것이다. 한나의 행복과 품위, 수치심도 그런 것이었다.


이해와 유죄판결

"나는 한나의 범죄를 이해하고 싶었고 동시에 그에 대해 유죄판결을 내리고 싶었다.(중략) 그녀의 범죄에 유죄판결을 내리려고 하면, 그녀의 범죄를 이해할 수 있는 한 뼘의 공간도 남지 않았다.(중략) 그녀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은 또다시 그녀를 배반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었다."

미하엘은 한나에 대한 "이해와 유죄판결'사이에서 갈등하며 두 가지를 동시에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나의 배반

"나는 단 한 번도 한나에게 편지를 쓰지 않았다."

미하엘이 책을 녹음한 테이프들을 보내준 지 4년째 되던 해에 한나는 짧은 인사말을 직접 써서 보내왔다. 그 후 그녀의 지속적인 편지에도 불구하고 그는 단 한 번도 그녀에게 편지를 쓰지 않는다. 또한 찾아가지도 않는다. 그녀를 위한 책 낭독은 계속하지만...

그는 한나를 자신으로부터 멀리 있게 함으로써 그녀를 과거의 아름다운 상태로 묶어두고 그녀를 사랑한 것이다. 이 역시 한나에 대한 부인이자 배반이며, 현실로부터의 도피인 셈이다. 한나는 아마도 미하엘의 이런 마음을 알아차린 것 같다.


한나의 죽음

"신문에서 오려낸 한 사진은 검은 양복을 입고 악수를 나누고 있는 중년신사와 소년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미하엘은 고등학교 졸업반 학생이며 졸업식장에서 학교장에게 상장을 받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다시 가슴과 목구멍에 눈물이 고여오는 것을 느꼈다."

한나가 미하엘과의 만남 이후 자신에 대한 사랑을 한 번도 내려놓은 적이 없었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다.


이 소설은 아픈 사랑이야기이며 동시에 '나치'라는 슬픈 역사를 지니고 있는 독일의 전후세대와 기성세대의 이야기이다. 소설에서 보여지는 사랑과 배반과 죄의식, 이해와 유죄판결, 품위와 자유와 수치심, 그리고 인간이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행복에 이르기까지, 소설은 우리에게 정작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복잡한 의문을 제시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얘기하고 싶다. 더 늦기 전에 사랑하고, 더 늦기 전에 고백해야 한다고.

왜냐하면, 인생은 한 번뿐이니까.

Do it now!

그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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