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콜릿과 짜장면

by 올리브

'초콜릿, 아이스크림, 피자, 떡볶이...'

동생이 사춘기 소녀였을 때 일기장에 적었다는 간식메뉴들이다.

'짜장면, 탕수육, 갈비...'

치매에 걸리신 아버지가 콧줄로 유동식만 드실 때 말씀하셨던 음식 이름들이다.


두 사람 모두 나이와 시기와 상황은 다르지만, 두 사람 모두 먹고 싶은 것들을 마음대로 먹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동생은 나와 나이차이가 많이 나서 내가 대학교 2학년일 때 그 아이는 중2였다. 나는 나 자신의 문제와 '어려운 집안형편'이라는 무게를 감당하기도 벅차서 한창 먹을 나이였던 그 애가 그 많은 먹고 싶은 것들을 먹지 못해서 속상했을 기분을 알지 못했다. 아니, 관심조차 두지 않았을지도...

그 시절 맘껏 먹을 수 없어서였을까? 다 자라 성인이 되고 오랜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동생에게 변치 않는 게 있다면, 바로 음식주문을 아주 넉넉히 한다는 것이다. 남을 정도로 많이.

이제는 그때 먹지 못했던 초콜릿, 아이스크림, 피자, 떡볶이를 원하는 만큼 먹을 수 있는데, 사춘기시절에 함께했던 '배고픔'이 아직도 어딘가에 웅크리고 있는 걸까 하고 혼자 생각해 본다.


아버지는 식성이 좋아 가리는 것 없이 잘 드셨었고 그래서 비교적 건강하게 사셨던 분이다. 그러던 분이 어느 날부터인가 음식을 드실 수 없는 상황이 되었는데 다른 아픔과 고통은 접어두고라도 먹고 싶은 음식들을 말씀하시며, 정신없는 와중에도 '오늘은 외식하러 가자'라고 하실 때 해드릴 수 없는 상황이 정말 안타까웠다.

아마도, 인간의 비애란, 가장 기본적이고도 단순한 욕구가 채워지지 못할 때 생겨나는 것인 것 같다.


작은 아이가 군복무 중이던 작년 가을, 성묘를 다녀오던 길에 온 가족이 카페에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문득 작은아이로부터 문자가 왔다.

"오늘 할아버지 산소 다녀왔어요?"

"응, 어떻게 알아?"

"꿈에서, 할아버지가 온 가족이 모여 식사하는 자리에 앉아계셨어요. 기분이 좋아 보였어요"

아! 생전에 드시고 싶었던 짜장면을 드신 걸까? 탕수육이었을까? 아니면 갈비...

뭐라도 좋았다. 그리고 나는 떠올렸다. 자신을 기억하는 사람이 모두 사라질 때까지 이 세상을 완전히 떠나지 않는다는, <백 년 동안의 고독> 속 망자의 이야기를. 어쩌면 아버지는 아직도 우리 곁에 계시면서 우리를 찾아오시는 걸까?


초콜릿을 먹으며, 아이스크림과 피자와 떡볶이, 짜장면을 먹으며,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겠는가?

아마도, 그저 생각 없이 음식에 집중할 것이다.

그런데 나는 한 번씩 가족을 떠올리고, 결핍이 망가뜨리지 않은 우리의 과거와 현재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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