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너는 내게 헤어지자 말했지.
내가 이유를 묻자, 너는 마지못해 입을 열었어.
내게 빌려준 타자기를 돌려받기 위해 우리 집 앞에 왔던 날을 지금도 기억해.
그날, 그 무거운 타자기를 받아서 가던 너에게 집에 들어오라는 말을 할 수가 없었어.
너는 그게 서운했던 거고.
'나는 너에게 아무것도 아닌 것 같다'는 말과 함께 내게 헤어짐을 통보했지.
우리는 그렇게 이별했고 나는 그냥 순순히 받아들였던 것 같아.
사실, 우리가 만났던 시간은 그다지 오래되지 않았고, 돌아서는 너를 붙잡을 만큼 나의 사랑이 크지 않았을 수도 있어. 다만, 오래전에 나를 오해했던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 '이유는 그게 아니라고.'
집 앞까지 온 너를 집안에 들이지 못한 진짜 이유는 네가 내게 아무것도 아니어서가 아니라 부끄러움 때문이었다고. 그 당시 우리 집은 일반주택도 아닌 상가건물 2층에 세 들어 살고 있었는데, 나는 친구들 누구에게도 차마 보여줄 수가 없었어.
그렇게, 어린 우리는 각자의 자존심 때문에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돌아섰었지.
이제 와서 이런 말을 하는 건, 이 세상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를 너에게 ,
이제 와서 미안하다거나 아쉽다거나 그런 게 아니야.
가을이라 그런가?
그냥 문득, 그 시절의 우리가 생각났어.
아무것도 손에 쥐지 못했지만, 누구보다 풋풋했던 청춘, 그리고 친구들.
가을은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오고,
나는 추억을 먹고사는 몬스터가 되어버린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