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시간

by 올리브

화를 내는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것이 다름 아닌 '징후'였음을 오랜 시간이 지나고서야 알았다.


어릴 적, 아버지와 안방에서 둘이 잔 기억이 있다. 아마도 엄마가 갓 태어난 동생을 데리고 자면서 나는 아버지와 잤던 것 같다. 내가 조그만 아이였을 때, 나와 연년생이던 남동생이 죽은 후 엄마는 아버지의 '아들타령'에 시달려야 했다. 그리고, 몇 년 후 내게는 두 명의 여동생이 생겼다. 중학생이던 어느 날, 학부모회의에 다녀오신 엄마의 기분 좋은 한 마디, "OO이가 이번에 1등을 했어요." 그러나 이어지는 아버지의 반응은 어린 나의 기를 꺾어놓기에 충분했다. "그럼 뭐 해? 아들이 아닌데." 내가 아들이 아닌 사실이, 내가 책임져야 하는 무슨 문제라도 되는 것처럼, 마음껏 기뻐하고 칭찬받아야 할 순간에 그럴 수 없었다.


한때, 우리 집은 잘 살았다. 주택 안에 작은 분수가 있고 수국과 라일락이 피던 정원도 있었고, 학교에서 돌아오면 미숫가루를 타주시던 엄마, 주말이면 기사 딸린 자동차로 나들이도 갔었다. 그리고 어느 날인가, 빚독촉전화가 시작되고 사람들이 찾아오고 아버지도 엄마도 집을 비우는 시간이 많아지더니, 밤중에 이사를 했다. 누가 쫓아와서가 아니라 동네사람들 보기가 창피해서였을 거라고 짐작한다. 그때 나는 고1이었다. 그리고, 내가 기억하는, 내 인생 가장 가난한 시절이 시작되었다. 밤에 잠을 못 주무시던 엄마는 내 손을 잡고서야 비로소 잠이 드셨다고 한다. 열여섯의 내가 엄마에게 한 줌의 위로가 되었다는 이야기는 나의 기억이라기보다 엄마의 반복된 기억소환 덕분에 기정사실이 되었다.


아버지의 외로움, 고독.

나는 아버지를 얼마나 이해했을까?

아버지는 오랜 시간 외로웠고 고독했을 것이다. 명문고와 좋은 대학, 엘리트라고 자부하던 자신의 인생이 송두리째 뒤집힌 후에 길을 몰라 헤맸을 것이고 마땅히 의논할 사람도 없었을 그 오랜 시간을, 견뎌왔을 고독을,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언제부터였을까? 엄마를 괴롭히던 '아들타령'과 가부장적이던 권위에 화풀이라도 하듯이, 엄마는 아버지에게 퍼부어댔었다.

부모 중 누가 옳다고 말하긴 어렵다. 엄마는 엄마의 고달픔과 경제적 어려움이 아버지 탓이라며 원망했었고, 아버지는 그 원망을 때로 고스란히 받아내다가, 때로 폭발하곤 했으니까.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처럼, 아버지도 과거를 회상하며 얘기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내가 원망하던 시절의 아버지는 없었다. 아버지는 자신이 어려서 공부를 얼마나 잘했는지, 그래서 서울의 명문중학으로 유학을 오게 된 것, S대 정치외교학과에 합격한 자신을 형님(큰아버지)이 '다꾸시(택시)'를 태우고 드라이브시켜 줄 만큼 대견해했던 일(택시가 귀하던 시절의 이야기다), 사관학교를 졸업 후 정말 잘 나갈뻔했던 순간에 정치적 이유로 어그러졌던 일(아버지의 얘기로는, 인생이 이것으로 뭔가 잘못되었다고 한다) 등 수많은 운명의 불청객 탓에 자신의 운이 트이지 못했다는 결론. 그럼에도 엄마를 만나 사랑하고 행복했던 시간만은 후회가 없어 보였다.


그리고, 나도 벌써 이미 오래전에 아버지와 화해했다.

아버지의 '아들타령'은, '남아선호'와 '가부장적 사고'가 사회통념이었기에 내 아버지 또한 보통의 아버지였을 뿐이고.

시대적 감성으로 보아, 집안 경제는 모두 가장의 손에 달려있었으나 엄밀히 말하자면 가정경제는 부부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 그래서 엄마의 오랜 원망의 하나였던 소위 '가장노릇'의 책임을 아버지에게만 넘기는 건 옳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오랜만에 엄마와 함께 우리 집에 오신 아버지가 이상했다. 전에 없이 화를 많이 내셨다. 저녁을 함께 드신 후에 배가 고프다며 화가 나서 라면을 끓여드시는데, 몰랐다. 아마도 시작이었을, '치매'의 징후였음을.

그 후, 수개월이 지난 후에 집안 욕실바닥에 주저앉아계신 것을, 엄마가 발견하고 응급실에서 알게 된 '혈관성 치매', 이미 뇌경색이 진행된 상태라고 했다.


역사에 '가정'이 의미 없듯이 개인의 인생도 마찬가지일 것이긴 하지만, 누구의 잘못이라 할 수 없지만, 왜 몰랐을까? 왜 의심하지 않았을까? 그저, 아버지는 원래 화를 많이 내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인생에 회한이 많아서 그럴 거라고, 내 멋대로 단정했었지. 내 자식은 노심초사 키우면서, 부모에게는 인색한 마음씀이라니. 자식이, 배우자가 몰랐을, 그 고독의 시간을, 다 늦은 지금에사 되뇌어본다. 알아차리지 못해서, 더 눈여겨보아드리지 못해서 죄송하다고.


아버지의 시간,

이 세상에서 아버지와 내가 함께했던 그 시간은 이제 가고 없는데, 그리움은 남아서 내게로 온다.

아버지의 시간으로 나에게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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