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가는 비행기 티켓을 끊다.

갈 수 있을까.

by ogi

나의 친동생과 사촌여자동생이 미국에서 산다. 내 사정을 알고 있었던 사촌에게 장례식을 마치고 나서 남편의 사망소식을 전하자, 정리가 되는 대로 미국에 와서 있다가 가라고 했다.


정리가 금방 되겠어? 아직 아무것도 한 게 없어. 사망신고도 아직이야.


아무튼 오라는 것이다. 얼마가 걸리든지 간에 마치는 대로


처음에는 한 10월에나 갈까 생각했는데, 사촌이 다시 말했다. 비행기 티켓이 할인을 한다며 최대한 빨리 오라기에, 역시 급한 성격이다. 그런데 티켓 가격을 보니 차이가 많이 났다. 경제적인 부분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한참을 망설이다 결제하고 나니, 덜컥 겁이 났다. 티켓값을 날리고 못 가지는 않아야 할 텐데.



그러나 아이를 봐서도 가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아이 머릿속도 환기가 필요할 것 같았고, 뭔가 머릿속에 생각을 밝거나 다른 새로운 자극으로 채워주고 싶었다. 잊으라는 것은 아니지만, 저 나이에 맞는 빛과 천진 난만함을 잃을까 봐 겁이 났다.


티켓을 끊은 것 때문에도 더 부지런히 일처리를 해야 했고, 바빠진 덕에 슬픔도 조금은 잊을 수 있었다. 그렇게 따지면 고마운 가족들이다.


나는 사망신고부터 은행, 보험사, 증권사, 관공서를 바쁘게 다니며 상속업무를 처리했다. 그리고 2년 동안 하지 못했던 건강검진도 받았다. 아이에게는 이제 법정 친권자가 나만 남았기에 나의 건강도 챙겨야 했다. 다행히 별다른 이상은 없었다.


다행이었지만 나까지 아팠다면 하늘에 불이라도 지르고 싶었을 것 같았다. 그만큼 남편의 죽음 하나도 어이가 없었기에.


처음에는 눈물 없이 말이 안 나왔는데, 어떤 날은 정말 4군데를 가야 할 정도였다. 그러다 보니 눈물이 말라갔다. 눈물 없이 용건만 얘기할 수 있을 정도가 되니 오히려 상대가 놀라는 눈치였다.


나의 애도는 골방에 박혀서 슬피 울며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틈틈이 찾아오는 슬픔에 빠졌다가 다시 나와 세상을 살아내야 하는 그 과정 자체가 애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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