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추억은 편집된 필름
기억은 늘 완전하지 않다.
우리는 모든 순간을 다 기억하지 못한다.
시간이 흐르면, 어떤 장면은 또렷해지고, 어떤 장면은 흐려진다.
마치 오래된 필름처럼, 빛이 바래고 색이 겹치며 남는다.
가끔 친구들과 예전 얘기를 하면 놀랄 때가 있다.
내가 기억하는 그날과, 친구가 기억하는 그날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분명히 여름이라고 믿었는데, 그는 겨울이었다고 말한다.
나는 웃고 있었다고 기억하는데, 그는 내가 울고 있었다고 말한다.
누구의 기억이 틀린 걸까.
아니면 기억 자체가 원래부터 불완전한 걸까.
추억은 편집된 필름이다.
우리는 그 편집을 의식하지 못한다.
하지만 매 순간, 뇌는 불필요한 장면을 지우고, 필요한 장면만 남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필요하다 믿는 장면만 남긴다.
그래서 추억은 진실이 아니라, 해석에 가깝다.
나는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언제나 같은 장면부터 시작한다.
세상 제일 인자하고 따뜻한 미소로, 개구쟁이의 물음에 대답하던 어머니.
“엄마, 나 몇 살이야?”
“막둥이는 세 살!”
짧은 대화였지만,
그때의 공기와 햇빛, 어머니의 웃음까지 또렷하다.
그 장면은 내 기억 속에서 늘 첫머리에 놓인다.
어쩌면 그 순간이, 내 삶이란 필름에서 가장 밝게 빛나는 장면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모든 추억이 그렇게 다정하게 편집되는 건 아니다.
어떤 기억은 반대로, 상처만 남긴다.
야밤에 비명이 마을에 울려 퍼진다.
옷장에 걸린 쇠 박힌 벨트가 채찍이 되고, 효자손은 부딪히다 못해, 부러져 꼬챙이가 되어 머리에 박힌다.
운전하는 이가 조수석에 앉은 어머니의 머리를 패대기치고, 뒷좌석 아이들은 콧물을 흘리며 엉엉 운다.
그 어떤 장면은 끊임없이 반복 재생된다.
편집된 필름은 우리를 위로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끝없이 괴롭히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추억 속에 머문다.
불완전하다는 걸 알면서도, 그 필름을 돌려보길 멈추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 편집된 필름이야말로 내가 누구였는지를 알려주는 유일한 증거이기 때문이다.
나는 종종 생각한다.
혹시 미래의 내가 지금을 떠올릴 때, 어떤 장면을 편집해 남길까.
오늘의 피로가 남을까, 아니면 누군가와 나눈 짧은 웃음이 남을까.
추억은 결국 지금 이 순간이 어떻게 기록될지를 결정하는 재생 버튼이다.
우리는 늘 기억을 잃으면서 살아간다.
그리고 그 잃음 속에서 남겨진 파편이 바로, 추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