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 난 마음의 수리법

17화 후회하지 않는다는 거짓말

by 와이즈

중학교 시절, 교실은 늘 시끄러웠다.
쉬는 시간만 되면 아이들은 책상을 두드리며 농담을 주고받았고, 공기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하지만 그 웃음이 언제든 날카로운 침묵으로 바뀔 수 있다는 걸, 우리는 모두 알고 있었다.
한 아이의 말, 단 한 번의 손가락질이면 분위기는 순식간에 달라졌다.

그날도 그랬다.
목소리가 큰 아이가 교실 한쪽에 앉아 있던, 늘 조용하던 친구를 가리켰다.
“야, 쟤 아무도 말 걸지 마.”
순간 교실은 정적에 휩싸였다.
누구도 웃지 않았지만, 누구도 반박하지도 않았다.
대신 공포가 조용히 퍼져나갔다.

나는 그때 눈을 피했다.
괜히 그 아이와 눈이 마주치면, 나까지 표적이 될까 두려웠다.
몇몇 아이들은 억지로 웃었고, 몇몇은 고개를 떨궜다.
그 아이는 그대로 투명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점심시간에도 마찬가지였다.
식판을 들고 자리에 앉으려던 그 아이는, 아무도 옆자리를 내주지 않자 끝자리에 혼자 앉았다.
밥을 뜨는 손이 서툴게 떨렸고, 수저가 그릇에 닿을 때마다 작은 소리가 교실에 울려 퍼졌다.
그 소리가 왜 그리 크게 들렸는지,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하지만 나는 그 옆에 가서 앉지 못했다.
나 하나쯤 옆에 앉아 준다고 세상이 무너지지 않았을 텐데, 나는 두려워서 고개를 돌렸다.

그 아이의 표정은 잊히지 않는다.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굳은 얼굴과 축 처진 어깨는 모든 걸 말하고 있었다.
나는 그 옆에서 “같이 먹자”는 말 한마디도 꺼내지 못했다.
내 침묵은 그 아이를 더 철저히 고립시켰다.
그 순간 나는 가해자가 아니라고 믿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것은 거짓이다.
침묵도 동조였다.


직접적인 폭력보다 더 잔인한 건, 아무도 웃지 않고 지켜보는 정적 속에서 강제로 우두커니 서 있게 하는 모멸감.


급식 줄에서 밀어내고, 체육 시간에 일부러 패스를 주지 않는 것처럼 공식적인 자리에 들어갈 수 없게 만드는 장치. 그 아이가 배제되었다는 걸 모두가 목격하게 만들면서 ‘너는 이 무리의 일부가 아니다’라는 문신을 새긴다.

세월이 흘러, 우리는 모두 어른이 되었다.
그 아이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내가 중학생이던 그날, 누군가의 삶에 깊은 흉터를 남겼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후회하지 않아. 그땐 어렸으니까.”
하지만 나는 후회한다.
그때 손을 내밀지 못한 것을, 두려움에 침묵을 택한 것을.
그리고 그 침묵이 얼마나 잔인했는지를.

후회는 시간이 지나도 희미해지지 않는다.
내가 시험을 망친 일보다, 연애에 실패한 기억보다,
그때 그 아이의 굳은 표정이 훨씬 더 오래 내 마음을 괴롭힌다.
나는 그 순간으로 돌아갈 수 없지만,
적어도 지금의 나는 더 이상 침묵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누군가가 밀려날 때, 그 곁에 서겠다고,
그 후회를 다시 반복하지 않겠다고.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후회한다.”
그 고백은 나를 부끄럽게 하지만, 동시에 나를 살아 있게 만든다.
후회하지 않는다는 거짓말 대신, 후회한다는 솔직한 고백으로,
어제보다 조금은 나은 어른이 되기 위해.


오랫동안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때 왜 나는 침묵했을까?
왜 그 아이의 곁에 앉지 못했을까?
왜 단 한 마디, “괜찮아, 같이 먹자”라는 말조차 꺼내지 못했을까?

가장 큰 이유는 공포였다.
표적이 되면, 나도 따돌림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두려움.
교실 안은 작지만, 그 공포는 거대한 장벽처럼 우리 사이를 갈라놓았다.
나는 용기보다 안전을 선택했다.
그 순간, 내 안전이 그의 고립보다 중요했다.

두 번째는 이기심이었다.
나 하나쯤은 괜찮겠지.
그렇게 스스로를 속이며 책임을 미뤘다.
그러나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결국, 모두의 이기심이 한 아이를 외롭게 만들었다.

마지막은 무력감이었다.
“내가 뭘 할 수 있겠어?”
내 목소리 하나로 교실의 분위기를 바꿀 수 없다는 체념.
그 체념은 나를 더 깊은 침묵 속에 가둬버렸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바꿀 수 없었을지라도 시도조차 하지 않은 게 진짜 죄였다.

공포와 이기심, 그리고 무력감.
그 셋이 뒤엉켜 내 침묵을 만들었고,
그 침묵은 결국 누군가의 외로움 위에 보태졌다.
나는 가해자가 아니었다고 말하고 싶지만, 그건 거짓이다.
가해의 손짓보다 더 무서운 건, 방관의 침묵이라는 걸.

그 깨달음이 내 안에 후회로 남았다.
나는 돌아갈 수 없지만, 앞으로는 다르길 바란다.
누군가가 밀려나는 순간, 그 곁에 서는 용기를 내길 바란다.
그 다짐만이 내가 그때의 침묵을 조금이라도 덜 부끄럽게 만드는 길일 것이다.


그 아이는 지금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무사히 학창 시절을 지나, 지금은 어엿한 어른이 되었을까.
직장을 다니고, 가족을 꾸리고, 웃을 수 있는 날들을 살고 있을까.
아니면 그때의 상처가 여전히 그림자처럼 따라다니고 있을까.


알 수 없다.
그에게 직접 연락할 수도, 안부를 확인할 수도 없다.
다만 하나는 분명하다.
그 시절의 침묵이,
그 아이의 마음에 어떤 흔적을 남겼을지는 결코 가볍게 말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그 물음은 지금도 내 안에서 되돌아온다.
그 아이는 과연 무사할까.
지금은 어엿한 어른일까.
나는 대답을 얻지 못한다.
하지만 그 물음이야말로 내가 앞으로 살아가면서 외면하지 말아야 할 질문이다.


후회를 고백한다.
조금 더 나은 어른이 되기 위해서, 더는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그 고백조차도 어쩌면 나를 위한 장치일지도 모른다.
“나는 후회한다”라는 말을 입에 올림으로써, 스스로를 죄책감에서 조금은 해방시키려는 시도.
어쩌면 후회한다는 내 고백은, 진정한 반성이 아니라 자기 위로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그 말을 멈출 수 없다.
왜냐하면 후회를 인정하지 않으면, 나는 여전히 그날의 교실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나를 부끄럽게 하는 건 후회가 아니라, 후회조차 외면하는 태도다.
그래서 나는 죄책감과 자기 위안 사이에서 흔들리면서도,
끝내 후회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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