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건너의 두 남편

1편

by 오늘도 안녕

A는 현재 노년기를 막 맞이한 여성입니다.


젊은 시절 미국으로 건너가 계속하여 미국에 거주하였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 들수록 한국이 그리워졌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최근 A의 남편이 은퇴를 하게 되었고 부부는 새로운 제2의 인생을 꾸려나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A는 남편과의 논의 하에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생활하기로 하고, 친정 식구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 지역이 어떤 지 알아보기 위해 한국으로 들어왔습니다.


부동산계약을 하는 과정에서 각종 증명서류가 필요하다는 말을 들은 A는 설레는 마음으로 관공서를 찾았습니다. 그러나 A는 곧 충격에 빠졌습니다. 가족관계증명서에 현재의 남편이 아닌, 이혼한 전 남편이 기재되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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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20대 초반의 A는 평범한 회사원이었습니다. 집안 형편상 대학은 가지 못했습니다. 일을 하며 야간고등학교를 마치게 해준 것도 감사해야 하는 분위기였습니다. 문학소녀였던 A에게 현실은 너무나도 혹독했습니다. 홀로서기도 쉽지 않은 와중에 대학에 다니는 오빠의 학비를 도와야 했습니다. 일을 시작하며 집을 나와서 살기는 하였으나 가족의 끈이란 너무나도 질겼습니다. 부모님이 오빠가 졸업해서 좋은 직장을 잡으면 그 직장 동료를 A에게 소개해 줄 테니 그 남자와 결혼하라는 이야기를 대놓고 하는 것도 일종의 속박처럼 느껴졌습니다. A의 마음속에는 소설이나 영화에 등장하는 외국에 대한 동경이 가득했습니다.


특히 영화에 등장하는 미국의 모습은 그야말로 별천지였습니다. 서울에서도 보기 힘든 엄청난 빌딩들이 즐비했고, 멋진 옷을 입고 어두운 바에서 칵테일을 마시며 화려한 파티를 즐기는 모습들은 A에게 꼭 한 번 경험해보고 싶은 것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일반인들의 해외여행이 전면 자유화되기 이전이었습니다. 그리고 A의 월급으로는 생활비를 쓰고 오빠의 학비를 돕는 것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언제쯤 비행기를 타볼 수 있을까 상상만 하는 것만으로도 갈증이 밀려왔습니다.


A의 유일한 해방구는 아껴둔 돈을 들고 한 달에 한번 정도 친구들과 이태원에 놀러가는 것이었습니다. 가서 미국에서 온 청바지, 화장품 등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영어로 가득한 간판과 영화에서 보아왔던 미국의 모습이 오버랩 되면서 A를 몹시 들뜨게 했습니다. 가끔씩 음식을 주문해서 먹어보기도 했습니다. 영어를 잘 못했고, 외국음식이라고는 피자, 햄버거, 스테이크 정도로만 알고 있었기에 전혀 엉뚱한 음식이 나오는 경우가 많았고 입맛에 맞지 않아 억지로 꾸역꾸역 먹곤 했으나 그나마도 즐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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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시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혹시나 아는 사람을 만나 문란한 여자로 소문날까 무서워서 밤이 되기 전에 급하게 돌아오는 날들이었습니다. 그래도 A는 친구들과 이태원에 가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와 둘이 이태원에 온 날이었습니다. 날이 어두워지기 전 귀가할 생각이었던 A에게 친구가 은밀히 속삭였습니다.


“얘, 우리도 이태원까지 매번 와서 빵이나 고기만 먹고 돌아가지 말고 양키바나 한번 가보자.”

“너 남자친구 있잖아.”

“헤어졌다.”

“응? 잘 만나다가 갑자기 왜?”

“여대생하고 양다리 걸치고 있더라. 못생긴 걸 대졸사원이라고 만나줬더니.”


친구는 화가 잔뜩 나 있었습니다.


“그래도, 그런 데는 좀 위험하지 않을까? 무섭기도 하고...누가 보면 어떡해.”


“어휴, 우리 아는 사람들이 이태원 갈 일도 없을 거구 별일이야 있겠니? 우리도 영화에서처럼 칵테일이나 한잔씩 마시고, 춤이나 조금 추다가 돌아와서 입 싹 씻으면 되지. 우리 둘이서만 가는데 소문날 일이 뭐가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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