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아무렇지 않아"의 잘못된 역사

자기 침묵

by 뿡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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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초등학교 4학년 때 아주 큰 갈등을 경험했다.
4살 때부터 내가 아껴온 인형 ‘곰순이’가 있었는데, 큼직하고 포근한 리락쿠마 인형을 선물 받았다.

그 인형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좋으면서도 너무 걱정이 됐다.

곰순이가 서운해하지는 않을까?

리락쿠마(당시 1세) / 떠오르는 샛별
곰순이(당시 8세) / 안방마님


낮에는 리락쿠마와 실컷 놀았지만, 자기 전엔 꼭 곰순이를 안고 리락쿠마 모르게 조용히 속삭였다.

“곰순아, 나는 너랑 있던 시간 다 기억하고 있어. 난 사실 네가 제일 좋아.”

그렇게 나는 매일 곰순이의 귀에다 나만의 사과와 변명을 속삭였다.

리락쿠마가 아무리 좋아도 너무 한 인형만 안고 있지 말아야겠다는 다짐도 했었다.

이건 그저 귀여운 유년기의 에피소드일 수도 있다.

하지만 돌아보면,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누군가의 서운함’을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누가 상처받을까 걱정했고, 그 마음을 달래주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갈등이 생길까 봐 불편했고, 그 불편함이 생기지 않도록 미리 나를 조용히 접어두곤 했다.

그때는 몰랐다. 그 침묵이 너무 익숙해져서, 나중엔 진짜 말하고 싶은 순간에도 말할 수 없게 될 줄은.




이런 나의 행동은 심리학에서 ‘자기 침묵(self-silencing)’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 자기 침묵은 관계 속에서 상호작용의 원활함과 유지를 위해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억제하거나 제한하는 행동을 의미한다(Jack, 1991). 즉, 갈등을 피하기 위해 침묵하고, 타인을 배려한다는 명목으로 스스로를 지워버리는 것이다. 이 개념은 애착이론과 관계 속 자기(self-in-relation) 이론을 바탕으로 하며, 특히 여성의 사회화 과정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과거부터 여성들은 관계를 유지하고 조율하는 존재로 여겨져 왔다. 자신의 감정보다는 타인의 기분을 먼저 고려하고, 불편한 감정은 드러내지 않는 것이 '현명한 여성'의 덕목처럼 여겨졌다. 논문에 따르면, 여성들은 종종 자신이 원하는 것보다 타인이 원하는 것을 해주는 것을 위엄 있는 행동으로 인식하며, 그렇지 않으면 이기적인 사람으로 보일까 두려워한다고 한다(Thompson, Whiffen, & Aube, 2001). 그러한 사고방식은 곧 자기 억제와 침묵으로 이어지고, 결국 스스로를 표현하지 못하는 관계 패턴을 만든다.


Thompson 외(2001)는 이를 "일관된 순종(compliant connectedness)"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이는 강박적으로 다른 사람을 돌보고, 상대의 반응에 기뻐하며, 자기표현을 억제하는 성향을 말한다. 이런 행동은 타인을 위한 듯하지만, 실은 사회적으로 승인되는 여성상을 내면화한 결과일 수도 있다. 즉, 여성들은 사회문화적 기대 속에서 진정한 자기를 표현하기보다,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자기 침묵을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이 침묵이 진짜 침묵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Jack(1991)에 따르면, 여성들은 자신의 욕구를 따라 행동하거나, 부정적인 감정을 솔직히 표현하면 관계에서 고립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스스로를 검열하고, 내면의 소리를 감춘다. 그렇게 형성된 자기 침묵은 단순한 성격 문제가 아닌, 인지 도식, 행동 유형, 정서 반응이 복합적으로 얽힌 심리적 패턴으로 자리 잡게 된다. 결국 이 침묵은 친밀감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지만, 오히려 관계의 깊이를 앗아가고 만다(Vazquez, 1998).




나 역시 어느 순간부터 내 감정을 말하는 게 어려워졌다.

그래서 나를 설명하기보다는, 맞춰가는 법만 늘어갔다.

그런데 그렇게 오래 맞추다 보니, 나는 점점 내가 뭘 원하는 사람인지도 모르게 됐다.
말하지 않으면 갈등은 없을 수 있지만, 동시에 나도 없어진다.
그저 누군가의 감정 곁에 조용히 앉아 있는 사람.

편안한 사람, 무난한 사람, 좋은 사람.


하지만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내 마음을 억누르는 삶이 정말 좋은 삶일까?

자기 침묵은 관계를 부드럽게 만들지도 모르지만, 나를 점점 더 흐리게 만든다.

그렇게 흐릿해진 나는 결국 어떤 관계 속에서도 진짜 ‘나’로서 존재하기 어렵게 된다.

상대도 나를 잘 알지 못하고, 나조차도 나를 잘 모르니까.
조용히 잘 지냈지만, 그 안에서 내 감정은 조금 외로웠던 것 같다.


이제는 관계 속에서 내 감정을 ‘말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고 느낀다.

나도 때로는 불편하다고 말할 수 있고, 그 말을 했다고 해서 관계가 완전히 무너지지 않는다는 걸 알아가고 싶다.

침묵이 배려인 줄 알았던 나는, 이제 배려란 나 자신을 남겨두는 것까지 포함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진짜 친밀감은 ‘침묵’이 아니라 ‘표현’에서 시작된다는 걸, 조금씩 믿어보려 한다.


그리고 다행히 요즘은 그 연습이 조금씩 가능해지고 있다.
연애를 하면서, 내 감정을 말해도 괜찮은 사람을 만났다.
내가 불편하다고 말해도, 그 감정을 받아들이려 노력해 주는 사람이 있고, 그 안에서 나도 처음으로 내 마음을 감추지 않고 꺼내는 법을 배우고 있다.


그게 가능한 관계도 있다는 걸,
그리고 나도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걸,

조금은 믿어보게 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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