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늘 사소하다
시작은, 언제나 사소하다.
검도관에 처음 찾아간 날도 그랬다.
3년 전 한여름으로 향하던 길. 중고등부 기말고사 대비가 한창이었다. 내 몸뚱이는 잿빛을 넘어 하얗게 타고 있었다. 한밤중에도 자다가 몇 번씩 깼고, 겨우 눈을 뜨고 몸을 일으켜 거울을 보면 흰 머리카락이 하나둘씩 소리 없이 인사하고 있었다. 아침부터 커피를 마셔도 피로는 온몸에 껌딱지처럼 짝 달라붙어 있었고, 아침점심, 오후 출근 시간으로 다가올수록 체한 듯 가슴이 무거웠다. 몸은 잠들어 있지만 머리만은 팽팽 돌아가고, 퇴근한 뒤에도 학생들의 시험 점수를 예상하며 불안으로 마음 졸이는 날들이 이어졌다.
몇 년 동안 영어 교사를 목표로 임용고사를 준비했지만 연이어 실패하고, 결국 시험을 포기한 뒤 다시 돌아온 학원가였다. 그때의 나는 너무나도 간당간당했고, 너무나도 위태로웠다. 그동안 지원해 주신 부모님께도 죄송했고, 수험생인 날 응원해 준 남자친구에게도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게 돼 미안했다. 무엇보다도 제일 힘들었던 건 바닥을 칠 대로 쳐버린 자존감과 무기력, 패배의식으로 점철된 나 자신을 마주하는 것이었다. 급기야 어느 순간부터는 왜 살아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나만 없으면 다들 나 때문에 힘들진 않을 텐데, 내가 없으면 다들 더 행복할 텐데,라고도 생각하기 시작했다.
미칠 것 같았다. 살아는 있는데, 살아있는 것이 아닌 이 상태. 이대로 가다간 미쳐 죽을 것 같았다. 어떤 것에서도 의미를 찾을 수 없었다. 대학교에서부터 10년 가까이해 오던 요가도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스트레칭하듯이 팔과 다리를 늘리면서 개운하다고 느끼는 것도 그때뿐이었고, 동작들이 너무 똑같은 것처럼 느껴졌다. 마무리 명상도 지긋지긋했다. 안 그래도 머리가 온갖 생각으로 꽉 차서 아픈데, 운동할 때만은 머리를 싹 비우고 싶었다. 요가는 더 이상 싫다. 아무래도 운동 종목을 바꿔야 할 것 같다. 뭐가 있지?
그러다 문득, 초등학교 4~5학년 때가 생각났다. 운동도 유행이 돌고 도는지, 그때는 검도가 한창 유행이었다. 남자아이들 몇 명이 학교가 끝나면 남색 도복을 입고 죽도를 들고 우르르 몰려다녔다. 그중에는 키가 크고 호리호리해서 여자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은 애도 있었다. 그 친구와는 당시 철천지 원수였지만, 내가 봐도 도복을 입으니까 각 잡힌 것처럼 보여서 좀 멋있긴 했다. 죽도도 길어서 진검 같았고. 시간이 많이 지나서 기억이 희미하지만, 그 모습을 동경했다.
그거야!!! 검도!!!!!
그동안 왜 검도 생각 못 했을까? 그 길로 인터넷으로 집 근처 검도관들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태권도장보다 적다. 여긴 거리가 멀고, 여기도 멀고… 여기저기 찾은 끝에, 다닐 만한 곳이 2군데로 추려졌다. 하나는 집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었다. 다음날 바로 찾아갔지만, 코로나로 이미 문을 닫은 지 오래였다. 아… 여기가 제일 가까운데, 플랜 A가 허무하게 날아갔다. 그러면 플랜 B로 가야지. 집에서 걸어서 15~20분 거리. 옆 동네로 가야 하지만, 그래도 가깝다.
전화해 보자.
손가락을 떨며 전화번호를 누르고 몇 초 뒤, 관장님께서 전화를 받으셨다. 운동 시간과 비용을 여쭤봤더니 자세히 말씀해 주셨다. 그리고 운동하려면 도복과 죽도를 맞춰야 하니 방문하면 된다고도 하셨다. 마침, 화실에 가는 날이었기 때문에 가는 길에 도장에 들르겠다고 말씀드렸고 바로 준비해서 집을 나섰다. 그렇게 검도관이란 곳에 처음 발을 들였다. 도장은 한 눈에 봐도 오래됐단 느낌이 났다. 특히, 벽지과 태극기의 색이 바래져 있었다. 죽도들과 남색과 검정빛 호구들이 곳곳에 가지런하게 놓여 있는 것도 신기한 풍경이었다. 관장님은 키가 크고 마르셨으며, 조용하신 분 같았다. 긴장한 채 관장님과 상담하고, 도복 치수도 잰 뒤 새벽 6시에 운동하기로 했다. 그리고 이틀 뒤, 첫 죽도와 도복을 맞췄다. 이것이 검도과의 첫 만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