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는 ‘들어가기 전’(서문)이 될지도 모를
검도 일기를 열심히 쓰던 때가 있었다. 처음 도장에서 운동을 시작한 날부터 한 3달 동안이었지 싶다.
왜였지?
그날 배운 것들, 새로 알게 된 것들을 기억하고 싶어서였던 것 같다. 그때는 파지법(죽도를 쥐는 방법), 발걸음의 종류, 타격할 때 칼의 궤적, 타격점, 모든 것이 낯설었다. 유단자 새내기가 된 지금에서야 털어놓는다. 그땐 관장님께서 이것저것 설명해 주셔도 무슨 소리인지 몰랐다. 한 귀로 들으면 다른 한 귀로 설명이 줄줄 흘러 나갔다. 그 와중에 몸은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도 설명을 듣고 생각하느라 나비처럼 날아서 탁! 쏘기는커녕 잠자는 굼벵이가 되곤 했다. 다른 말로는 몸치라 한다.
그래도 기억하고 싶었다. 그땐 그랬다. 그래서 도장에 다녀온 날마다 한 줄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왼쪽에는 날짜를 위에서부터 아래로 쓰고, 그 옆에 그날 배운 것과 느낀 점을 한 줄로 요약해서 적었다. 한 줄, 한 줄이 모여 하루가 되고, 한 주가 되고, 한 달 치 일기가 됐다. 시간이 지나 다시 읽어보면 이런 것도 배웠구나, 그때 내가 이런 생각도 했구나, 하고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관장님께 가끔씩 보여드리면, 관장님도 신기해하셨다.
“내가 이런 얘기도 했었어?”
하시면서. 그리고 알았다. 관장님도 승단심사를 준비할 때 수련일지를 쓰셨다는 걸. 잘 되지 않았던 동작과 그 이유, 고쳐야 할 점 등을 쓰면서 연습하셨다고 한다.
그러다 무슨 생각을 했는지, 검도로 에세이를 써 보겠다고 혼자서 끄적인 적도 있었다. 그림도 넣어가며 목차를 연도별로 구상했다. 지금 다시 보니 오글이 토글이 오징어다. ‘칼은 몸으로 닦고 마음으로 베는 것이다’라는 말도 책에서 찾아서 썼네. 다른 건… 그저 웃는다. 이때엔 검도 관련 에세이도 알라딘에서 검색하고 주문해서 읽어보기도 했다. 주욱- 읽어보니 생각보다 많은 일들이 있었고, 많은 것을 배웠다.
어느 날, 그날 배운 걸 기억하고 싶어서 한 줄씩 썼던 것이 글이 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작년부터는 시간이 지날수록 머릿속 장면이 희미해지는 속도도 조금씩 빨라진단 느낌이 든다. 그래서 누군가는 사진으로, 또 누군가는 그림으로, 저마다의 방식으로 기록한다. 작년 말부터 글쓰기 모임으로 하루에 한 편씩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이것도 어느덧 꽤 쌓였다. 글이란 것을 쓰다 보니, 내 일기가 에세이가 될 수 있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그렇게 이번 한 달 동안 좀 더 긴 호흡으로 글쓰기에 도전했고, 나다운 글쓰기를 몸으로 고민했다.
‘답은 없지만 답을 찾는 것이 바둑’이라고 했다. 검도와 글쓰기, 그림도 마찬가지이다. 지금도 답이 없지만 나만의 답을 찾아 헤매는 중이다. 점이 모여 선이 되고, 선이 모여 도형이 되고, 도형이 모여 그림이 된다. 내일도, 다음 달에도 답이 없는 답을 찾아 죽도를 잡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