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시계와의 작별
만약, 그때.
과거를 회상하거나, 현실과 반대로 가정할 때 쓰는 모래시계다. 서른을 앞두고 한 3년 전까지, 머리로 이걸 많이 돌렸다. 한동안 임용고사를 준비하면서 1차 시험을 보고 나온 날부터 합격자 발표가 나는 연말까지, 습관처럼 이 모래시계를 돌렸다. 시험장에 가는 길에는 만약 시간이 더 있었더라면, 시험장에 들어가기 전에도 만약 조금만 덜 잤더라면, 이 한 줄만 더 봤더라면, 이 책 한쪽만 더 봤더라면, 이 개념 한 번만 더 읽었더라면. 시험장을 나오고 나선 한 줄만 더 썼더라면, 이것만 더 자세히 썼더라면- 하고 시계를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고, 멈추고, 다시 돌렸다.
해마다 합격자 발표가 나면 누군가는 다음 관문을 향해 수업시연과 면접을 준비했다. 누군가는 다시 1차 시험을 준비하거나, 여행으로 잠시 숨을 고르러 갔다. 누군가는 길을 틀어 시험을 접고 취업을 준비하기도 했다. 그중 한 명으로 애매하게 몇 년이 흘렀고, 장수생이 됐다. 다들 어떻게든 앞으로 나가는 것 같은데, 애매하게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남들이 앞으로 나갈 때, 나만 뒤처지는 것 같았다. 다음 시험은 어떻게 될까, 이번 시험도 떨어지면 어떡하지, 그때 원서를 다른 지역으로 썼다면 합격했을 텐데. 그때 시계 속 모래는 잿빛이었다.
마지막으로 준비했던 시험을 내려놓고, 다시 일을 시작했을 때도 종종 모래시계를 돌리던 때가 있었다. 그때 여기로 원서를 넣었더라면, 그때 자는 대신 책을 조금만 더 봤더라면, 그때 이것만 좀 더 썼더라면. 한 번 모래시계를 돌리면, 그 흔적이 오래 남았다. 그걸로 수험생 시절을 조용히, 폴짝, 어떤 때에는 풀쩍 넘나들었다. 자고 일어나면 몸은 출근하기 위해 앞으로 움직이고 있건만, 머리는 과거와 지금 사이에 갇혀 있었다. 때론 머리가 몸을 이겨서 후회와 자책을 반복하며 축 늘어지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이 모래시계를 멀리하게 된 건 죽도를 잡으면서부터였다. 몸도 마음도 너무 지쳐서 시계를 들 힘도 사라져 가던 때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죽도를 쥐고 있는 동안에는 ‘지금’만 봐야 했다. 그래야 맞지 않기 때문이었다. 1초라도 멍하니 서 있거나 다른 생각을 했다간 나도 모르는 사이에 머리든, 허리든, 손목이든 맞았다. 때로는 상대의 죽도가 흰 점으로 훅 들어와서 목을 찔렀다.
“집중하라고!!!!!”
관장님의 고함과 함께 죽도로 머리를 쾅! 맞던 것도 나도 모르게 이 모래시계를 돌리고 있을 때였다. 죽도를 쥔 채 조금이라도 집중이 흐트러지거나 다른 생각을 하고 있으면 관장님께선 귀신같이 알아채셨다. 생각이 많으면 몸이 둔해진다는 말도 함께. 그러는 동안 언젠가부터 나는 ‘지금’과 ‘조금만 더 앞’을 바라보게 됐다. 미래까지 보기에는 벅찼다. 그래서 과거로 시계를 돌릴 때도 있었지만 일을 점검할 때와 검도일기를 쓸 때, 결혼을 앞두고 나를 돌아볼 때였다. 도덕적, 윤리적 문제를 제외하고 삶에는 정답이 없단 걸 몸으로 느끼기 시작한 때이기도 하다. 그렇게 순간, 순간에 집중하면서 나를 갉아먹던 잿빛 ‘만약, 그때’와 조금씩 멀어졌다. 시간이 흘러 다시 ‘만약, 그때’란 모래시계를 돌린다면, 그때는 시계 속 모래가 따듯한 색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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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에 써서 저장해 둔 글인데, 다시 열어보니 그때 기억이 되살아난다. 수험생 시절도 어느덧 몇 년 전이 됐다. 그때는 넘어지면 그걸로 끝인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이때엔 나를 마주하기 싫어서 스터디 플래너 외에는 기록을 따로 남기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기억이 좀 희미해졌다. 다만, 남은 것이 있다면 어떻게든 지나간다는 것이다. 그 사이에 넘어져서 다치기도 하고, 죽을 것도 같았다가, 나을 수 있을까 방황하기도 하지만 그 와중에도 시간은 지나간다. 그리고 어느 날 문득 뒤를 돌아보면 한결 나아진 걸 발견하기도 한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어제의 나를 넘어서고 싶다는 마음이 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