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과 미래의 거리를 가늠하다
올봄 날씨는 참 요상하다. 아침에는 초겨울, 점심에는 한여름, 저녁에는 초가을이다. 하루는 해가 쨍 떴다가 다음 달엔 비바람이 몰아친다. 이때 딱 코감기가 겹쳤다. 어찌나 답답하던지 그 주엔 음식에 청양이나 빨간 고춧가루를 자꾸 넣었더랬다. 5월로 넘어오니 어느덧 나뭇가지에 초록이 차오른다. 매화와 벚꽃이 피었던 자리에는 작은 연녹색 나뭇잎들이 올라오고 있다. 소나무에도 솔방울이 하나, 둘씩 열리고 그 주변에 옅은 송홧가루도 보이기 시작한다. 둘러보니 올봄은 오자마자 지나가는 듯하다. 벌써 여름인가. 이러다 아침에 일어나면 어제보다 더 덥다고 할 것 같다.
이런 당장 오늘의 날씨처럼, 지금과 미래의 거리도 가늠하기 어렵다. 생각해 보니, 검도에서 대련할 때 가장 어려운 것도 죽도 끝을 상대의 목 가운데로 겨눈 상태에서 타격 전 상대방과 내 칼 사이의 거리를 재는 것이다. 난 호면을 쓸 때마다 안경도 벗어야 하니까 이게 더 어렵다. 다시 돌아와서, 몇 주 전 아침에는 일과 아예 거리를 두고 싶어 밀리의 서재를 열고 전날 읽던 책을 이어서 봤다.
“길어진 인생, 그에 반해 훌쩍 짧아진 첫 번째 직장생활, 이제는 나 스스로 삶의 무기를 준비해서 살아갈 길을 찾아야 합니다.”
마지막 문구에서 눈길이 멈췄다. 이제는 나 스스로 삶의 무기를 준비해서 살아갈 길을 찾아야 한다. 여기서 생각한다. 내 삶의 무기는 뭘까? 일단 지금까지는 영어로 먹고살고 있으니까, 영어가 무기라면 무기라고 해야 할까. 하지만 결혼한 뒤로는 지속 가능한 삶과 일을 좀 더 고민하게 된다. (여전히) 주입식에 가까운 입시 위주의 영어 교육이 앞으로의 시대의 흐름에 맞는 걸까. 수업하는 동안에는 온전히 학생들에게 집중하려고 노력했지만, 한국 사회에선 다소 느려고 차곡차곡, 뭔가를 꾸준히 쌓아가는 것이 정녕 힘든 걸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이때 또 다른 문구가 눈에 띈다.
“가장 호흡이 느린 콘텐츠, 글쓰기.”
가장 호흡이 느린 콘텐츠라. 일리 있는 말 같다. 글을 쓰는 동안에는 계속 들여다봐야 하기 때문이다. 문장은 어법에 맞게 쓰고 있는지, 단어 선택이 적확한 지, 문장과 문장 간 내용 연결이 매끄러운지 등등. 그 와중에 내가 쓰고 싶은 글은 무엇인지까지도 생각하다 보면, 호흡은 더 느려진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서 뒤를 돌아보면, 나만의 뭔가가 만들어져 있다. 그걸 어제 내 눈으로 확인하고 나니, 계속 쌓아봐야겠단 생각을 하게 된다. 이때 눈에 들어온 문장.
“좋아하고 끌리는 일을 찬찬히 살펴보면 자신이 잘 쓴다고 생각하는 글의 기준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아이패드 옆에 있던 필사 노트를 펼쳐, 그동안 여기저기서 수집한 문장들을 빠르게 훑어본다. 내게 각인된 문장들은 어떤 특징과 공통점이 있을까. 그날 단상을 길게 적었던 문장들을 중심으로 다시 살펴본다.
“읽기 쉽고 간결한 문장, 표현이 적확한 글.”
지금까지 마음에 와닿았던 구절들은 수식어구가 앞뒤로 화려하게 붙지 않았다. 담백하지만 묵직하고, 단어가 이 느낌들을 담아내는 문장이었다. 조훈현 프로 기사가 쓴 책 ‘고수의 생각법’이 그래서 와닿나 보다. 문득, 내가 추구하는 검도와도 비슷하단 것 같다. 화려하지는 않아도,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타격. 내가 쓰고 싶은 글의 방향도 비슷하다.
대련할 때는 여전히 죽도로 상대와의 거리를 가늠하기가 어렵고, 지금과 미래 사이의 거리를 가늠하는 것도 답이 명확하게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부터 무엇을 해야 할지는 보이는 듯하다. 적어도 평일에는 매일 1편씩 글쓰기, 책을 읽으며 기억하고 싶은 또는 나중에 인용할 수 있는 문장 수집하기, 그리고 쓰는 데도 체력이 필요하니까 1주일에 3번은 검도하러 가기. 비범하지 않기 때문에 기록해야 한다고 했다. 답은 없지만 답을 찾는 것이 바둑이고 검도라고 했다. 글쓰기도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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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제목 : 작업중 (working on) (프로크리에이트-수채, 연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