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마오리’는 다음 날이 되면, 전 날의 기억을 잃어버린다.
그녀는 사고로부터 기억상실증을 얻은 날부터
꾸준히 일기와 사진을 통해 과거의 본인을 기록한다.
그리고 그 기록을 매일 보며 자신의 기억상실증을 각인하고
하루를 말 그대로, 새롭게 시작한다.
어느 날, ‘카미야 토루’는 ‘히노 마오리’에게 고백을 한다.
사실 ‘토루’가 ‘마오리’에게 고백한 이유는,
반 내의 일진들이 왕따 친구를 괴롭히는 행동을 그만두는 조건으로,
토루로 하여금 마오리에게 고백할 것을 시켰기 때문이다.
서로 초면임에도, 마오리는 토루의 고백을 받아줬다.
둘은 서로,
‘진짜로 좋아하지 말 것’
이라는 규칙을 세우고 연인인 척만 하기로 한다.
이렇게 둘은 연인처럼 데이트를 하지만 순탄치 않다.
공원에서 돗자리를 피고 토루 옆에서 잠들었다가 깬 마오리, 매우 당황한다.
토루에 대한 기억을 잃은 것이다.
본인이 그와 데이트를 한다는 사실도,
연인처럼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는 사실도.
마오리는 토루로부터 도망친다.
그리고 그녀는 친구 ‘이츠미’에게 전화로 얼마나 자신이 공황 상태에 빠졌는지 설명한다.
이츠미는 마오리에게, 토루와의 기억이 담긴 폴더를 보라고 말한다.
마오리는 그제야 본인이 토루와의 데이트를 하고 있는 것을 이해한다.
얼마 후 토루가 마오리를 발견한다.
마오리는 토루에게, 본인의 선행성 기억상실증을 털어놓는다.
이를 들은 토루는 마오리에게
오늘 같은 일들은 안 적으면 되지 않냐고 말한다.
왜냐면 내일 다시 새롭게 시작할 수 있으니까.
내일의 마오리도 즐겁게 해 주겠다고.
마오리의 하루하루를 행복으로 채워주겠다고...
그렇게 토루는 마오리의 하루하루를 행복으로 채워줬다.
어느 날, 마오리는 토루에게 서로 했던 약속,
‘진짜로 좋아하지 말 것’
을 어긴 것 같다고 말한다.
토루는 마오리에게,
“그 약속, 진작에 어겼어.”
라고 말하며,
둘은 사랑을 나눈다.
정말 불행히도 어느 날, 토루는 심장병으로 죽는다.
토루는 심장병으로 죽기 전 이츠미에게,
마오리의 일기랑 휴대폰 등
마오리가 본인을 기억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지워버리라고 부탁한다.
이츠미는 토루의 부탁대로,
토루의 누나와 함께 마오리의 기억을 조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이츠미는 마오리가
죽은 토루의 그림을 여러 장 그리고 있는 것을 본다.
그때, 이츠미는 마오리에게 토루의 기억을 지워내기 위해,
마오리의 기억을 조작하려 한 것을 털어놓는다.
마오리는 이를 듣고 상심에 빠지기보다는, 미술을 통해 토루를 느낀다.
토루를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가슴으로 그의 흔적을 느낀다.
제 아무리 슬픔이라도,
과거의 기억을 잊으라 강요해서도 안 되고,
타인이 그 기억을 지우려 시도해서도 안 된다.
슬픔을 받아들이는 것도, 본인이 감당해야 할 감정이고, 충분히 슬퍼해야 한다.
타인이 어쩌면 ‘함부로’ 마오리의 기억을 빼앗으려 하면 안 되었다.
물론 이츠미, 토루, 토루의 누나는,
마오리가 남자 친구의 사별을 못 견뎌할 것으로 예상하고
그녀가 걱정되었음을
충분히 이해하고, 그들의 선택을 나도 존중한다.
하지만 아픈 과거를 무조건 잊는 것이
마오리, 또 아픔을 겪은 이들을 위한 것은 아니다.
마오리처럼 자신도 모르게
이미 떠난 존재의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처럼,
본인 내면 속 깊이 그 과거는 존재할 것이기에.
그리고 문득...
마오리의 기억을 지우려 했던 등장인물들을 보며,
내게 과거는 잊으라고 말했던 주변인들이 떠올랐다.
나도 영화를 보며,
마오리의 기억을 지우려 했던 사람들 마음에 공감을 느꼈고
그것이 마오리를 위한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마음 아프고 슬펐지만, 마오리를 위해서...
내게 과거는 잊으라 했던 주변인들도 어쩌면 그들과 같지 않았을까.
오히려 날 너무 아꼈기에,
곁에서 고통스러워하는 날 바라보는 게 슬펐기에,
그런 마음으로 내게 과거는 잊고 새로 시작하라고 한 것일까.
마오리를 지켜보며, 어떻게든 그녀가 남자 친구의 부재로 인한
고통을 느끼지 않게끔 해주고 싶다는 나의 마음.
그들도 영화 속 마오리를 지켜보는 내 마음이었을까.
‘그들이 알고 보니 옳았고 내가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혹은
‘그들은 내게 공감하지 못한 채, 내 상처에 대해 함부로 말하며, 섬세하지 못하다’
위처럼 누구의 옳고 그름을 가리려는 의도는 없다.
다만 내게 과거를 잊으라 했던 그들의 입장에서,
내가 마오리를 바라보며 느꼈듯
그들도 나를 바라보며
얼마나 슬픔을 덜어주고 싶었으면
얼마나 안타까웠으면
그리고
얼마나 날 사랑했으면
내게 다 잊으라고 말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