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경험이라 말할 수 있는 이유
여행의 본질은 무엇인가?
인간이란 본래 한 지역에 정착하고 뿌리내리는 것이 본성이거늘 왜 물리적으로 멀고 불편한 다른 곳을 향하고 싶어 할까?
기질과 성향 차이일까? 진취적이고 역동적인 사람만이 여행을 떠날까. 그것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여행은 시차로 피곤하고 낯설어서 긴장되는 순간이 많아 다시는 떠나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또다시 항공권을 예약하는 아이러니함이다.
기필코 반드시 떠나야 하는 그 마음.
말로 형용할 수 없지만 낭비냐 경험이냐 선택하자면 필자는 경험이라 말하겠다.
인류애(여행자에게 베푸는 친절)
프랑스에서 스위스로 넘어가는 기차가 연착되어 예상보다 꽤 늦은 시간에 종착역에 내렸다. 가로등 불빛조차 없는 어두운 길을 구글맵으로 찾아보며 하염없이 헤매었다. 불현듯 부모님과의 효도여행이 불효가 될 것 같은 미안함이 엄습해 왔다. 그 생각이 머리를 스치는 찰나에 현지인 가족들이 차에서 내려 어디까지 가느냐고 물었다. 그들은 어두워서 걸어가기 힘들 거라며 우리의 짐을 트렁크에 싣고 호텔까지 데려다주었다. 너무나 친절하고 다정했던 스위스사람들. 대략 10년 전 일이지만 아직도 부모님은 그 일을 회상하며 참 고마운 사람들이었다며 입모아 말씀하신다.
이뿐이랴. 물경 30시간에 거쳐 남미에 도착했을 때 가장 고통스러웠던 것은 시차보다도 고산병이었다. 페루 리마에서 쿠스코로 넘어가는데 깨질듯한 두통과 울렁거림, 조금만 걸어도 헐떡대는 숨 막힘이 나를 지배했다. 처음 경험해 보는 생경한 고통이었다.
아 어쩌지? 내일이면 새벽부터 일어나 버스와 기차를 타고 마추픽추로 가야 하는데.. 이런 노파심과 지독한 통증으로 제대로 잠도 청하지 못하고 승합차에 몸을 실었다.
모르는 사람들과 삼삼오오 모여 차로 이동하는데 내가 고산병으로 힘들어하는 것을 눈치챘는지 옆에 앉아있던 현지인여행자가 고산병에 좋은 민트향소독제를 휴지에 적셔 건넸다. 본인도 머리 아플 때 쓰려고 직접 만들어왔다는 것이다. 훨씬 두통이 완화되는 기분이었고 멀미 비슷한 메스꺼움이 점차 나아졌다.
산중턱 지점에서 점심식사를 할 때 나는 거의 먹지 못하고 식당 밖에 주저앉아있었다. 그때 같이 차에 탔었던 백인여성이 초콜릿쿠키를 주며 달콤한 것을 먹어야 고산병이 조금 나아질 거라고 조언해 주었다. 그 작은 승합차에 함께 탑승하여 같은 행선지를 향해 간다는 이유만으로도 우리의 유대감은 깊고 단단했다. 짧은 순간들에서 나를 지나치지 않고 도움을 주는 사람들의 선의는 투박하지만 진심이었다.
여행자들의 결속력, 그 여행자가 건강하고 안온하길 바라는 현지인들의 마음.. 이조합은 다시 내가 떠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이 때문에 나는 안락함을 뒤로하고 또다시 가방을 싸고 여행을 시작하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