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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성 Jun 17. 2022

아버지에게 가는 길


아버지에게 가는 길

스무 살 되던 해, 나는 아버지 곁을 떠났다. 엄마가 당신의 삶을 살기 위해 우리를 버렸듯, 나는 나의 삶을 살기 위해 아버지를 버렸다. 그때 아버지 곁에는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오빠와 남동생은 일찍이 집이 싫다며 나간 터였다. 아버지는 가족들에게 철저히 버림받았다. 나는 혼자 남겨져 버린 아버지가 불쌍하지 않았다. 오히려 묘한 통쾌함을 느꼈다. 엄마가 집을 떠난 후, 꼼짝달싹하지 못하게 이중구속시켜 버린 아버지에게 벌을 내리고 싶었다.


아버지는 늘 화가 나 있었다. 하루가 멀다고 술을 드셨고, 세상을 향해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 댔다. 집은 심장을 후벼 파는 소리로 가득했다. 세간살이가 바닥에 내동댕이치는 소리, 우리 형제를 때리는 소리, 그런 아버지에게 잘못했다고 싹싹 비는 소리 그리고 술 취한 아버지 목소리였다. 성인이 된 내가 작은 소리에도 깜짝깜짝 놀라는 것은 이상할 일이 아니다.


아버지라는 단어가 낯설기만 한 내가, '아버지에게 갔었어'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책장을 한 장씩 넘기면서 눈물을 흘렸고 어느샌가 책 속의 아버지를 응원하고 있었다. 책 속의 아버지는 어린 나이에 역병으로 부모님을 모두 잃었고,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사람을 죽이고 죽여만 했던 시절, 죽음의 문턱 한가운데에서 살아남았다. 자신을 위해 살지 못했던 아버지는 젊은 나이에 가장이 되었다. 당신이 겪었던 아픔과 고통을 자식들이 겪지 않기를 바라면서, 아버지는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묵묵히 주어진 삶을 살아내셨다. 하지만 그런 아버지가 현실에도 존재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밭일로 늦게 집에 오는 엄마를 위해 넷째가 저녁밥을 해놓는 구절이 있었다. 아버지는 그런 딸을 칭찬하기는커녕 버럭 화를 내셨다. 당신의 누이가 어렸을 적부터 밥을 했던 것을 안타깝게 여기셨고, 자신의 딸은 일찍부터 살림을 살게 하고 싶지 않았다. 반면 나의 아버지는 내가 집안일을 하길 원했다. 엄마가 집을 나간 후, 나는 학교를 마치면 곧장 집에 와야 했다. 청소와 빨래를 하고, 밥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살아냈어야, 용케도 너희들 덕분에 살아냈어야.” 지난한 세월을 살아내신 책 속의 아버지는 언젠가부터 눈물을 흘리셨다. 그 눈물의 의미는 무엇일까? 한때 다른 여자와 살림을 차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야만 했던 그때, 마지막 인사를 하지 못한 회한의 눈물인가. 아니면 동료를 위험한 순간으로 내몰게 만들고, 구역질 나는 썩은 시체 속에서 살아남은 기구한 당신의 삶 때문인가. 그 눈물 속에서 언젠가 내 앞에서 눈물을 흘리셨던 나의 아버지가 떠올랐다. 한없이 무서웠던 존재인 아버지가 눈물을 흘리시다니. 하얗게 세어진 머리와 축 늘어진 어깨. 호랑이 같았던 아버지도 세월을 비켜 가지는 못했다. 언제까지나 희번덕거리는 눈빛과 날카로운 목소리로 세상을 살아갈 것 같았던 아버지. 20년이 지난 지금, 칼날은 무뎌졌고 어느새 노쇠한 아버지가 내 앞에 있다. 그 눈물 앞에서, 나는 혼란스러움을 느꼈다. 나의 이성은 아버지를 미워해야만 했고, 측은지심 같은 마음이 당신을 향해 일어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마지막 책장을 덮은 후, 꽁꽁 얼어 붙어있던 나의 감정에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 책은 단 한 번도 내 아버지의 삶을 생각해 본 적 없던 나에게 어떤 소리를 내는 듯했다. 아버지에게도 아버지이기 이전에 사랑받고 돌봄을 받아야 하는 어린 시절이 있었으며, 꿈으로 설레었던 찬란한 청춘이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렇다. 아버지에게도 호기심 어린 눈으로 세상을 바라봤던 순수했던 어린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이 연약하고 순수한 아이를 폭력적이고 자기 파괴적인 사람으로 성장시켰나? 아버지의 삶이 궁금해 졌다. 어떤 아픔을 간직하고 있기에, 사랑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자신까지도 파멸적으로 만들었는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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