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녀의 사회생활

02. 균형을 잡으려면 겪어봐야 해

by 이달기


사회생활을 하면서 가장 많이 한 고민 중의 하나는 바로 요즘은 당연한 것처럼 말하는 '워라밸'이었어요.


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뜻으로, 일에만 나를 할애하지 않겠다는 다짐이 느껴지는 용어라 초반에는 꼰대들의 발작 버튼이 되기도 했었죠.


지금도 꼰대라 불리고 있는 누군가는 그 단어 자체를 혐오할 거에요.


저는 일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그렇다고 내 삶이 온통 일로 가득 찬 걸 누가 진정으로 좋다 여길까요?


사람은 누구나 내 시간이 필요해요.


1년 365일을 일할 수도, 매일 같이 야근을 할 수도 없죠.


그러다 다 닳아버리면, 번아웃으로 오래 주저 앉게 될 거고요.


저는 번아웃을 겪은 적이 있고, 그 이후에 다시 안정이 됐을 때 참 많은 고민을 했거든요.


번아웃 이전에는 일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는데, 번아웃 이후 참 괜찮은 회사에 들어와서 일이 점점 더 재미있게 느껴졌거든요.


물론, 모든 상황이 다 좋지는 않았죠.


일이 재미있어도 애매한 위치와 상사의 무능 같은 것이 저를 꽤 힘들게 했거든요.


내가 일에 빠져서 야근을 하는 거라서 솔직히 그게 싫지는 않았지만, 가끔은 그런 걱정을 했어요.


평일에도 몇 번씩 약속을 잡아 친구를 만나던 내가, 야근하느라 밤 12시 이전엔 집에 들어가지도 못하면서 과연 오래 버틸 수 있을까?


오래 버티고 싶은데, 오래 일하고 싶은데.


완급 조절이란 저한테 참 어려운 일이었죠.


저는 즐겁기 시작하면 끝도 모르고 빠져드는 타입이라서, 한마디로 절제가 좀 부족해요.


게다가 잠을 그렇게 중요하게 여기지 않아서 가끔 몸 상태가 정말 간당간당해질 때도 있거든요.


아마 사람마다 내리는 결론이 다르겠지만, 저는 제 번아웃의 이유가 즐겁지 않은 일을 많이 하면서 너무 오래 참았기 때문이라고 결론 내렸어요.


굳이 유지할 필요 없는 인간 관계까지 전부 끌어안은 채 고통스럽게 일하며 오랜 시간을 보냈으니 몸도 마음도 지친 거죠.


번아웃 이후에는 오히려 야근을 많이 하더라도, 하루 날 잡아서 정말 깔끔하게 쉬기도 했어요.


그래야 내가 일을 오래 할 거 같아서.


한 번의 번아웃 경험은 제게 생각보다 많은 걸 남겼고, 저는 그게 저를 더 나은 방향으로 향하게 했다고 생각해요.


아마 제가 모자라 그럴 수도 있지만, 균형을 잡는 방법은, 번아웃을 겪어보고 나서야 알겠더라고요.


꺾여봐야 바로 설 수 있는 것처럼, 그래서 스스로의 한계를 시험해보는 것도 방법이긴 할 거 같아요.


다만 사람마다 다시 일어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다르니까... 무턱대고 꺾여봐 이러긴 어렵겠죠.


겪다 보면 어느 순간 몸이 말해요.


나, 아프다.


혹은 기분이 말하죠.


나, 우울하다.


우리는 그런 작은 신호를 무시하고 지나치는 경향이 있어요.


평소보다 내가 예민하다고 느끼거나, 피로가 잘 안 풀린다고 느끼면 그건 신호에요.


그걸 계속 놓치면 번아웃에 세게 맞게 되니, 신호를 틈틈이 살피는 것도 균형을 잡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아무튼 균형이란 건, 스스로를 돌볼 수 있는 힘인 것 같아요.


이후에도 주변에선 저를 많이 걱정했지만, 억지로 버티는 게 아니었기 때문에 괜찮았던 거 같아요.


진심으로 즐겁게 일했으니까.


그래서 즐길 수 있는 일을 찾으라는 소리도 있고, 일이 즐거우면 인생의 반은 성공한 거란 소리도 있나 봐요.

참 감사한 일이긴 하죠.


근데 요즘은 평생 직장이라는 게 거의 없는 시대니까, 이왕이면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그런 환경을 잘 찾는 것도 필요할 것 같아요.


너무 못 버티고 이직하는 건 문제가 되겠지만, 커리어 쌓고, 연봉 올리면서 이직하는 게 뭐 그리 큰 일인가요?

꼬리표처럼은 생각 안 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30대가 되면, 늦었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는 거 같은데, 진짜 그 격차를 극복할 수 있을 만큼 좋아하고, 즐길 수 있는 일이라면 그것도 저는 도전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많은 사람이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찾을 용기를 가지고, 그런 행운을 얻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약간 주책이죠?


저도 꼰대가 되어가나 봐요. 진짜 조심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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