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녀의 사회생활

01. '사회생활'이 다 그런 거야

by 이달기



회사를 다니면서 가장 많이 들은 말 중 하나를 꼽자면, '사회생활'이 다 그런 거야.


그 말이었던 것 같아요.


처음에는 그러려니 했고, 나중에는 짜증이 났지만, 이제는 얼핏 그런 생각도 드네요.


아, 자기도 아는 구나.


이게 부조리라는 걸. 부당하다는 걸. 그래서 저런 말로 뭉뚱그리려 하는 구나.


제가 겪은 많은 일 중에, 어쩌면 여러분이 겪은 일일 수도 있겠죠.


그런 일이 있었어요.


내가 밤을 새고, 먹지 않고, 그저 모든 걸 쏟아 부어 결과물이 잘 나왔던 일.


그런데 그 성과는 내게 오지 않더라고요.


제가 혼자 밤을 샐 때, 칼 같이 퇴근하고, 무언가 조언이나 자료 하나 준 적 없는 직속 상사에게 그 성과의 공적이 가있는 걸 보면서, 현자 타임이라고 하죠?


그게 세게 왔던 때가 있었어요.


그 사람이 하는 건 일이 아니라 아부뿐인데, 역시 사회생활에선 그게 더 중요한 걸까?


나도 일하던 걸 멈추고, 아부에 더 치중해야 하나?


하지만 상사의 일을 거드는 것도, 비위를 맞추는 것도, 내 일을 제대로 해내는 것도.


저는 다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 세 가지를 다 해내려 애쓰고, 스스로의 시간을 뺏고, 즐거움을 다 빼앗으면서 인정받기를 원하던 때였죠.


정말 친한 선배에게 그 회사를 나올 때 뭉뚱거려 이야기 한 적이 있었어요.


선배는 안타깝다는 듯 웃으면서도, "사회생활이 다 그렇지."라고 말했죠.


그 선배랑 지금은 연락하지 않아요.


당시에 그 말이 참 비참했던 것도 있고, 모든 것이, 모든 사회의 사람이 그렇지는 않을 거라고 믿던 때였으니까요.


시간이 지나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모든 사람이 그렇진 않아요.


나의 직급에 관계 없이 나의 노력을 인정해주는 분도 있더라고요.


그런 회사라서 오래 남았고, 하지만 또 윗사람이 그런다고 모든 사람이 그렇게 따라가진 않는 것 같아요.


가장 충격을 받았던 건 제 부사수가 자기 부사수에게 하던 일을 알게 됐을 때였죠.


회의 때마다 그들이 조용했던 건 제 부사수보다 몰라서가 아니라, 눈치를 보던 거였고요.


기강이 잘 잡혀 있다고만 생각했어요, 저도.


그러다 넌지시 건넨 물음에 돌아온 짧고, 직설적이지 않은 대답에 알 수 있었죠.


미주알 고주알 말해주지 않아도, 눈치라는 게 있잖아요.


더욱이 내가 겪었던 일이라면.


화가 많이 났었어요.


당장 부사수를 불러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죠.


하지만 그래서 해결되는 게 뭐가 있을까요?


부사수는 기분이 나쁠 거고, 자존심이 상할 거고, 그 화살은 자기 부사수에게 돌아가겠죠.


그래선 나의 화풀이밖에 되지 않을 거고, 부사수의 부사수는 더더욱 입을 닫고 버티다 어느 순간 미련 없이 돌아설 거고요.


그래서 생각했던 게 의견을 들을 때 회의에서 곧바로 듣는 게 아니라 회사 업무 메신저로 저한테 각각 보내라고 했어요.


그 의견을 취합해서 회의하겠다고.


앉은 자리에서 지금 바로 보내세요.


그러면 부사수랑 저의 자리는 가깝기 때문에 뭐라고 눈치를 줄 수 없게 될 거라 생각했거든요.


확실히 부사수의 부사수가 의견을 내기 시작했고, 저는 모든 걸 업무 성과에 표기했죠.


대놓고 칭찬하지는 않았지만, 인사 고과에는 반드시 반영될 수 있도록.


사실, 그게 당연한 거잖아요.


연차가 아니라, 나이가 아니라, 실력이 우선되어야 하는 거잖아요.


회사는 이익 집단이니까.


그런데서 상사보다 잘한다고 그게 무례가 된다면, 그거야말로 옳지 못한 일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이런 저 역시도 사회에 찌들면서 결국 조금씩 변해가는 것 같아요.


사실 익숙해진 게 제일 크죠.


처음엔 그리 서럽고, 그렇게 억울하던 일에 어느덧 무덤덤해지고, 더 나아가 아무렇지 않게 당연한 일처럼 받아들이는 제가 있었어요.


큰 사건으로 느껴지는 일이 아니면 그냥 대충 모른 척을 하는 거죠.


내 일을 하는 것도 힘드니까.


원래 그런 거잖아? 합리화하면서.


참, 인간이 자기 올챙이 적 생각 못하죠?


그래도 깨달았을 때는 안 그러려고 일을 벌이기는 하는데, 그러다 또 잊어요.


누가 옆에서 잊을 때마다 말해줬으면 싶을 정도로요.


어쩌면 아예 익숙해지지 말았어야 했겠지만, 그게 어디 쉬울까요?


나는 그저 보통 사람이라 흘러가는대로, 그저 튀지 않으려 애쓰며 휩쓸리길 자처했던 시절이 길었는 걸요.


내 자리가 제대로 잡히지 않았다는 핑계로.


그 부조리의 대상이 나를 피해갔다는 이기심으로.


그런 만큼, 어떤 일에서는 방관자이기도 했을 테니 이제 와 나만 피해자라고 우길 마음은 없어요.


그래도 사회생활이라는 게 세대를 거듭하며 조금씩은 나아져 가길 바라요.


일단 나부터 나아지길 바라요.


어쩌면 많이 나아진 거겠지만, 그래도 더.


그치만 결국 나도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거 같기도 해요.


사회생활이 다 그런 거죠.


나만 바뀌었을까요? 어쩌면 모두가 비슷하게 흘러가는 거겠죠.


그래서 조금 끄적여 볼까 싶어요.


조금이라도 올챙이 적을 기억하는 개구리이고 싶어서.


다 지나버린 것 같은 청춘을 기억하며, 그때 그 시절 내가 상처받았던 순간, 주저앉았던 순간, 묘하게 위로받거나 내가 조금 큰 것 같다 느꼈던 내 평범한 회사 생활 이야기를.


서툴 수도 있고, 중구난방일 수도 있겠지만, 이렇게 내 이야기를 써보는 게 처음이니 너그럽게 이해하며 그저 들어주세요.


어쩌면 공감되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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