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정인 Sep 10. 2023

만추 / 조정인

내 사랑 더, 더, 더, 무모해질 테다

덩치 큰 산짐승들이 내려와 인간의 살림을 뒤질 것이다

그리운 곳으로부터 바람은 불고

기꺼이 마음을 앓겠다는 각서라도 써야할 것이다


이 사랑은 무모하고 무용하다 그래서 아름답다 

아름다운 것들엔 이유가 없다

밤의 검은 창문을 두드리는 이 무국적 바람은

어딘지 기시감이 있다


그날

습한 바람은 히스클리프 히스클리프 낮고 느리게 울며

발목을 감았지


그것은 지표면의 것이 아닌

지구 내부 맨틀로부터 뛰쳐나온 거대한 짐승의

미친 열정이 내뱉는 신음 같은 것


지독한 번민의 날들을 부러 게으르게 지나고 있다


나의 사랑 더, 더, 더 쓸모없어질 테다


여름이 응집된 열매들은 만추의 빛을 입고

자정 너머에서 부스럭거리고      

작가의 이전글 매우 가벼운 왕관 외 6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