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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초향 Oct 28. 2024

대모산에서 구룡산으로

길치들

하늘이 파랗고 찬바람이 불어오고

바닥에 낙엽들이 한두 개씩 나풀거리기 시작하는 가을 중턱이다.

집에 앉아 싱크대를 들락거리는 건 어쩐지 손해 보는 것 같은 토요일이다.

tv에서는 김수미 씨의 비보를 전하고 있다.

얼마 전부터 피곤에 지쳐 방송하는 모습들이 노출되었는데 그걸 방치했다고 한다.

무슨 일이 그리 바쁜지 나도 매번 시간이 없고 할 일들이 쌓여 있다.

그래도 난 운동도 꾸준히 하고 스트레스받는 일도 없으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몸은 스스로 제일 잘 아니 컨디션 조절은 본인이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번 요일도 산행에 나섰다.


7년 전 산티아고를 같이 갔다 온 남편을 포함한 남자 2명, 여자 4명이 모여 지금까지 매월 한 번씩 산행을 하고 있다

한여름과 한겨울 2개월을 빼면 거의 매월 다녔다.

산티아고에 갔을 적에는 하루 20킬로를 걸었던 사람들이다.

그러니 걷는 것에는 자신이 있는 사람들이라 등산 가다가 피곤하니 그만 가자는 말은 안 한다

그러나 올라가는 산의 높이는 갈수록 낮아지고 요즘은 둘레길로 많이 다닌다.


언제나 남자 두 명이 상의하여 코스를 잡아서 어디로 나오라고 하면 그곳까지만 가면 된다.

난 남편 따라가니 정말 생각 없이 그냥 따라다니기만 한 것 같다

이번 산행은 결혼식  참석이 있어  세 명만 갈 수밖에 없었다. 이번 달에는 그냥 쉬자고 했지만

이렇게 좋은 가을날에 쉬는 것은 가을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한다.

그리고 떠들면서 호기롭게 초등생 손주들을 둔 세 할머니들만 가기로 했다

나 같은 길치 여자들끼리 가는 것은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냥 가보자고 했다

그래서 여러 번 가 봤고 집에서 가까운 대모산을 가기로 했다. 특별한 약속이 없으면 남편과 매번 다니는 산이다. 아홉 시 반에 수서역에서 만나서 산에 오른다. 수서역 6번으로 나오면 대모산 올라가는 입구가 있다. 항상 입구가 지저분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깨끗하게 단장하려는지 임시 등산로 입구를 만들어 줬다.


대모산은 강북 쪽에 있는 유명한 산들과는 달리 흙산으로 동네 속에 있는 낮은 산이라 쉽게 접근하기 좋다. 서울 둘레길을 걸을 때도 한 코스를 담당하고 있는 맨발 걷기의 효시가 된 산이다. 이곳은 신발을 신고 걷는 것이 더 이상할 정도로 맨날로 걷는 사람들이 많다. 일원역 쪽에서 올라오면 야외 학습장도 있고 불국사도 있는 야산이다. 그렇지만 야생화도 없고 특별한 나무도 없는 평범한 잡목들만 있는 산이라 숲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추천하는 산은 아니다. 생강나무 잎은 가을 햇살에 반짝거리고 아직 떨어지지 않고 달려있는 몇 개의 누리장 열매가 말라가는 가을 잎들 사이에 눈에 띈다.

철창이 둘러쳐있는 건 아마  헌능때문이 아닐까 한

철장 너머에 피어있는 등골나물이 어쩐지 창살에  있는 것 같다.

정상가기 전 둘레길로 빠지는 길이 있지만  이정표를 따라 우린 정상으로 향했다.

내가 가장 헐떡 거리며 빈 벤치만을 찾는다. 두 친구들은 쌩쌩히다

대모산은 높이 293m로 산 모양이 늙은 할미와 같다 하여 할미산으로 불렸다. 하지만 태종 이방원과 그의 비인 원경왕후 민 씨의 묘인 헌릉이 이 산 남쪽에 조성되면서 왕명에 의해 大母산으로 바뀌었다고 안내되어 있다


대모산 정상에서 바라다본  모습

대모산까지만 가기로 했지만 어쩐 일인지 구룡산 가는 길로 빠져버렸다. 아무 생각 없이 발길이 움직였을 거다. 서서히 발걸음이 무거워지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한참을 내려가다 올라가니 구룡산 정상이다.

306m라고 한다. 열 마리의 용 중 구룡은 승천하고 한 마리는 물에 빠져 양재천이 되었다 한다.


구룡산 정상에서

하늘로 올라가는  대신 요즘은 빌딩이 올라가고 있나 보다.

땅은 좁고 하늘은 넓게 비어있으니 다들 올라가고 싶어 하는가.  2시가 넘어가다 보니 배도 고프고 다리도 아프다.  배낭에 들어있던 간식과 물도 다 먹고 없는데 집에 가는 길은 멀기만 하다.


양재대로를 가을들이 수놓고 있다


눈앞에 집을 두고도 내려가질 못한 길치들의 눈앞에 강남 명품길이 보인다.  다른 친구들은 아직도 얼마든지 더 갈 수 있을 것 같은 체력인데 난 너무 힘들었다. 명품길이라는 이름이 약간 거부감을 느낀다. 하다 하다 이젠 숲길까지 명품길인가? 명품길이 아니라 고행길을 걷다가 양재천으로 들어섰다. 시간은 4시가 되어간다. 그래도 양재천에 억새들이 가을을 말해주고 있다. 미역취도 있고  미국쑥부쟁이. 미국실새삼. 흰여뀌가 눈에 띈다. 미국실새삼은 벌써 기주식물들을 감아 면적을 넓히고 있다. 실새삼은 뿌리도 없고, 잎도 없는 것이 자라고 있으니 어쩐지 무섭다.


가다 쉬다를 반복하며 거의 7시간을 걸었나 보다. 대모산만 다녀오기로 했던 원래 코스를 너무 넘어나보다. 길치들끼리 떠난 산행은 역시 무리였다.  뒷퉁수만 보고 따라다니는 산행은  우리들을 바보로 만들었나 보다.  이런 삶이 치매로 이어지겠다는 얘기를 한참 하며  반성한다. 가을 단풍은 아직 북녘에서 내려오지 않았지만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질까 벌써부터 아쉬워진다. 담주에는 명륜당 은행나무를 사진 찍으러 가봐야겠다.


ps

5번을 들락거리다가 겨우 글을 마무리합니다. 가을이라서 그럴까요. 시간이 더 짧아진 듯합니다

토요일 산행 여파에 이틀이 지나가는 지금도 종아리가 딱딱해서 걷기도 힘드네요. 


#대모산#구룡산등산#양재천#가을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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