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에 걸렸다는데...

고드름 봤던 것으로 만족한다

by 배초향

정말 3년 만에 처음으로 친구들과 박달재휴양림으로 휴가를 떠났다. 코로나로 인하여 놀러 다니는 것이 익숙하지 않게 되어버렸다. 회사에 근무를 하며 휴가를 낸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월말 빼고, 초순 빼고, 제사여서 안 되고, 생일이어서 안되고 하다 보면 친구들과의 시간 맞추는 것도 놀러 가는 일정 못지않게 어렵다. 식구들과도 코로나 이후 휴가다운 휴가를 맞추기 어려웠는데 친구의 강권에 못 이겨 3일이나 휴가를 냈다. 제천의 이곳저곳 눈 쌓인 곳을 다니며 겨울을 만끽했다. 의림지의 늘어진 버드나무와 솔숲, 솔밭공원 소나무의 구부러진 멋진 모습이 안면송과 비슷한 것도 같았는데 주변에 쭉 늘어선 모습이 보기 좋았다. 제천교동의 민화마을에 들려 한가하게 담벼락구경도 실컷했다.


며칠 전 눈이 온 뒷날에 고드름이 혹시 달려 있나 싶어 공원이랑 골목길을 돌아다봤지만 찾을 수 없었다. 요즘 도시에서는 고드름이 달릴 수 있는 날씨가 이어지지 못하다 보니 고드름 열리는 걸 볼 수 없었다. 아쉽다는 생각을 수없이 하고 있었는데 휴양림 근처 산속의 리솜에 갔더니 고드름이 주렁주렁 집집마다 달려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수정 고드름이 긴 칼날을 늘어뜨리고 매달려 있는 모습을 보니 옛 어린 시절 집이 생각났다. 겨울 햇살이 쨍쨍 나는 날이면 처마 밑에 고드름이 달려있고 그것을 잘라 칼싸움하던 남자애들이 있었다. 처마밑에서 따뜻한 햇살을 쬐고 있었던 기억이 왜 갑자기 나는지. 겨울의 가장 평온한 모습이었던 것 같다. 산속 기와집 처마에 고드름이 달려 조금 아쉽다는 생각을 하며 배론성지로 향했는데 어쩜 그곳에 거짓말처럼 초가집 처마에 고드름이 주렁주렁 달려있는지. 내가 생각하는 대로 눈앞에 다 나타나버린 동화얘기처럼 신기했다. 최양업 신부님이 공부하시며 기거하시던 초가집의 처마에 고드름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휴가를 보낸 마지막 날 친구가 몸이 감기 기운이 있는 것 같다고 해서 준비한 상비약을 먹고 제천의 민화마을과 약령시장에 들러 제천시의 조용한 일상을 구경하다 돌아왔다. 그리고 약초 넣어서 만든 약초비빔밥도 먹고, 약령시장에 들렸다가 귀가 가벼워 손에 한 가득 들고 왔다.




3일간의 휴가로 인하여 밀린 일을 하느라 정신없이 보내고 있는데 친구한테 연락이 온다. 아무래도 이상하여 병원에 갔더니 코로나라고 한다며 우리한테도 병원에 가보라고 한다. 아무 증상이 없이 멀쩡한데도 증상 없이 코로나에 걸려있을 수도 있고, 전염될 수도 있는 것이 코로나라고 한다더니.

오랫동안 코로나와 함께 생활 하다 보니 두 번씩이나 무슨 친구 찾아오듯이 나한테 또 왔나 보다. 올 초에 코로나에 걸렸을 때에는 엄청난 고열과 목 잠김, 기침에 동반되어 힘들었는데 지금은 목이 약간 잠기는 것 말고는 특이한 증상이 없다. 항체가 조금은 남아 있나 보다. 코로나에 걸렸다고 하니 꼼짝도 못 하고, 밀린 일이 또 밀려 연말을 맞이하게 됐다. 무리한 휴가를 간 톡톡한 대가를 치른듯하다. 그러나 난 이번 휴가에 가서 그토록 찾아다니던 고드름을 실컷 봤으니 손해 본 것은 없다. 한 친구는 연말 약속이 줄줄이 어긋나 버렸다며 펄펄 뛰며 방콕을 하며 있다 한다. 세계 인류에게 엄청난 재앙을 뿌린 코로나로 인하여 나도 잠시 멈춤을 또 해야 한다. 열심히 새벽미사를 다녔는데 정작 성탄에는 성당에도 갈 수 없는 우울한 크리스마스가 되어버렸다.

구청보건소에서 문자가 와서 7일간의 격리를 하라고 한다. 처음 코로나 걸렸을 때에는 보건소에서 하루에 두 번씩 전화 와서 증상을 체크하고, 생필품도 주고, 약도 주고 하더니 지금은 약해져서 인지 그런 관심도 없는 걸 보니 코로나도 서서히 떠나가는 것 같다. 아무 증상이 없는데 7일 동안이나 집안에 박혀 있어야 하다니. 마스크 잘 쓰고 회사에 나가야 하나 이런저런 생각이 든다. 그러다 옆 사람에게 전염시키면 그것 또한 안 될 일이다. 뜻하지 않게 휴가 가서 고드름을 보고 이런 횡재가 어디있냐며 좋아했는데 코로나에 걸려서 집에 오다니 항상 좋은 것만 주지는 않으신 하느님이시다.

우리 인간에게 경종을 울리기 위해 코로나라는 팬데믹이 생겨났다고 한다. 중국의 산업이 멈추니 한국의 하늘이 파란색으로 변했다. 인류 종말이 오기 전에 신의 경종이라고 한다. 코로나가 엔데믹으로 가고 있다고 하는데 빨리 소멸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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