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할머니가 아니라고 소리친다

손녀는 할머니라고 소리친다.

by 배초향

마지막 한 해가 넘어가고 있다. 가는 해는 뭔가 정리하고, 또 새로운 해는 어떤 계획을 세우고 어떤 희망을 소망하게도 된다. 세월이 그냥 늘어져 끊기지 않는 실처럼 되어 있다면 어떻겠는가? 그래도 현명한 사람들이 년, 월 등의 단위로 나눠둬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 해의 끝자락이 되다 보니 정리해야 할 것이 많은 것 같아 괜히 맘이 바빠 온다. 그렇다고 하루사이에 세상이 바뀐 것도 하나 없는데 말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12월이 되면 끝나간다는 느낌이 없었다. 신바람 나는 크리스마스와 연말 분위기가 있어 들뜬 계절이었다. 언제나 거리는 캐럴송으로 북적거렸고, 집집마다 츄리를 만들고, 장식을 붙이며 집안을 꾸미곤 했다. 거리의 나무와 아파트 입구 나무들은 반짝반짝 등불을 밝히느라 고생하곤 했다. 뜨거운 전깃불을 등에 붙잡고 온종일 고역을 치르는 나무들의 고통을 누군가 얘기하기 시작하더니 요즘은 전깃줄을 나무에 찡찡 감는 행위는 많이 줄어든 것 같아 다행이다. 동물복지뿐만 아니라 식물복지도 신경 써야 하지 않을까 한다. 도심의 휘황찬란한 불빛으로 인해 동물뿐만 아니라 식물들도 휴식을 취하지 못해 철을 모르고 살아간다.


올 한 해는 내 삶에 커다란 분기점이 되지 않았나 싶다. 25년 前 집을 박차고 직장에 나갔을 때, 숲해설가가 되었을 때, 그리고 작가가 되겠다고 책을 출판 한 올해, 내 삶은 한차례 씩 큰 변곡점을 지나갔다. 이게 마지막 종착역이 되지 않을까 싶다. 아직은 직장도 다니고, 자연을 찾아다녀야 하고, 작가가 되겠다고 의지를 다지고 있으니 욕심이 덕지덕지 붙은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이러다 이것저것 다 놓치지 않을까 싶기도 하지만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낮에는 직장에서 일하고, 주말에는 자연과 함께하고, 밤에는 글을 쓰겠다고 하니 시간을 효과적으로 쓰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밤에 글을 쓰는 일이 가장 힘든 것 같다. 아직은 부엌에서 할 일이 많아 시간내기가 쉽지를 않다. 다음날 일하려면 잠도 충분히 자야 한다. 주말에 자연과 함께하는 것은 내가 쉴 수 있는 가장 좋은 공간이니 포기할 수는 없다. 어두커니 서있는 것 같은 나무들이지만 하루도 같은 모습이 아닌 매일 변화하는 모습을 보면 나무만큼 믿음직스러운 것도 없다. 낮에 스트레스받는 일이 있으면 난 나무를 찾아 공원을 간다. 다행히 가까운 곳에 공원이 있어 너무 좋다. 걸으며 그들을 쳐다보며 얘기하다 보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올해 11월에 책을 출간하기 위해서 1년을 너무 바쁘게 살아왔던 것 같다. 그래서 12월 달에는 내 삶을 다시 한번 돌아보고 정리해 보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2023년은 새로운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길 바랐다. 근데 한 달이 지나도 뾰쪽한 뭔가가 보이지는 않고 새해를 맞이할 것 같다. 나이가 있으니 인제 건강도 챙겨야 할 것 같다. 그리고 글 쓰는 일에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브런치에 손색없는 작가가 돼보고 싶은 생각도 크다. 아직 2개월짜리가 누구한테 명함을 내밀겠느냐마는. 아직 하나도 놓치고 싶은 것이 없으니 욕심이 많기는 하다.


백화점에 가서 예쁜 옷도 사 입고, 맛있는 것 먹고, 편히 쉬면서 살지 뭐 하려고 그리 복잡하게 이것저것 하냐고 말하는 친구들도 많다. 이 나이까지 일하고 언제 놀 거냐고 구박하는 친구들도 있다. 또 어떤 이는 그래도 나이 상관없이 일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한창 짧은 치마 입고, 높은 하이힐 신고 다니던 때와 비교하면 내가 우습기는 하다. 두툽 한 긴 외투는 무릎까지 내려오고, 무릎 추울까 봐 솜바지를 입는다. 넘어질까 봐 굽도 없는 커다란 부추를 신는다. 완전 할머니표다. 우리 손녀가 할머니의 구분을 머리로 하는 것을 봤다. 짧은 머리를 뽀글이로 하면 할머니라고 한다. 난 아직 할머니가 되기 싫어 뽀글이는 안 해봤다. 지공녀이지만 가끔은 역직원에게 붙들려 주민등록 점검도 받으니 아직 할머니가 아니라고 소리친다.

손녀가 따라 소리친다 “할머니야”라고.

난 아직은 뭐든지 할 수 있는 능력 있는 직장인이라고 속으로 소리 친다.



가끔은 생각한다. 뭐가 가장 잘 사는 것일까?

남의 시선이 아닌 내 시선으로 나를 드려다 보려고 노력하며 새해를 맞이해야겠다.

모처럼 소복히 눈이 내렸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코로나에 걸렸다는데...